하프와 공작새 - 미얀마 현대정치 70년사
장준영 지음 / 눌민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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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불교의 나라 정도로만 알려진 미얀마를 현대 정치사 70여년을 정리한 학술서로 만나고 나니 아슴푸레하게 느껴졌던 미얀마가 훨씬 구체적이고 친숙하게 느껴진다.

 

저자는 미얀마 정치 현상의 보편적 특징을 파벌주의와 종교적 상징주의로 꼽는데, 70여년의 현대사 동안 미얀마에서 군부의 파벌정치와 불교의 영향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이 책은 세개의 축으로 미얀마의 현대 정치사를 훓어본다.

 

첫째는 군부의 발전 경로와 역할을 비교하면서 그 역할과 기능의 변천사를 살펴본다. 영국의 식민 통치에 저항하여 미얀마 독립에 지대한 공을 세웠지만 암살당한 아웅산은 김구 선생과 묘하게 오버랩될 정도다. 흥미로운 점은 반영 투쟁을 하면서 일본과 연계를 했고, 일본의 지원으로 미얀마 군부가 탄생했다는 점이다. 아웅산의 암살 이후 사회적으로 혼란기를 겪으면서 우누 총리가 대표하는 민간 정권이 수립되었으나, 군부는 집정관의 역할을  자처한다. 이후 네윈은 쿠테타를 일으키고 연방의 분열을 방지해야한다는 명확한 목표 아래 독재체제를 구축한다. 민주화와 자유를 열망하는 미얀마 국민들의 시위에 의해 네윈은 자리에서 물러났으나 그의 추종자들이 다시 정권을 잡았고, 아웅산 수지를 가택 연금하는 등 격동의 시간이 흘런간다. 아웅산 수지의 정치 복귀로 민간 정권을 표방하고 있지만, 여전히 군부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미얀마 헌법은 군부의 정치 참여를 보장하고 있고, 여전히 파벌을 통해 막후 정치가 가능한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아웅산 수지 역시 군부 정치의 대리 정치와 유사한 방식을 수용해 현 정권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

 

둘째는 이데올로기의 발전 과정을 살펴본다. 미얀마에서는 정통적 사회주의의 이론적 이데올로기를 수용하기보다는 불교의 교리에 사회주의의 이론적 편린을 맞추어가는 이른마 미얀마식 사회주의를 거쳐 아시아적 가치와 유사한 규율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기조나 이론적 틀로서 분석이 불가한 미얀마의 정치 이데올로기는 미얀마의 의사결정방식, 세계사적 교류 등과 관련해 경로를 예측하기 어렵게 한다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셋째, 정치에서의 종교의 역할을, 불교의 영향력을 근거로 분석한다. 미얀마 불교는 정통 교리 뿐만 아니라 미얀마 토속 신앙인 낫의 영향력이 대단한데, 통치 이념으로써 불교와 낫 신앙은 군부의 통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신정부가 출범하면서 헌법을 통해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었지만, 이교도와 극우불교도의 갈등은 사회적 문제를 넘어서 국제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미얀마의 정치 특성으로 군부가 국가의 산업화보다는 이데올로기에 천착하면서 군부 체제 수립을 지향해왔다는 점, 미얀마의 독특한 정치체제를 구현하려는 목적 하에 현실적인 정책보다는 이상적 이데올로기 구축에 천착해왔다는 점, 불교가 종교적 영역을 넘어서 국가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사회 질서 규범의 확립, 정치 행위를 결정하는 주요 도구가 된 점 등을 꼽는다.

 

시민의 역량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사회에서 몇 몇 특출한 민주화 인사가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미얀마의 현재는 정밀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시사점을 제공한다. 또 로힝야 족과 버마족의 갈등, 아웅산 수치와 로힝야 학살 등의 문제가 단순한 인권의 발로가 아니라, 영국 제국주의의 분할 통치와 미얀마 독립의 저항의 역사에서 기인한 역사적 문제임을 새롭게 각인하면서 역사와 문화, 정치를 관통하는 인식의 필요성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미얀마에서 적폐의 청산은 단순히 군부라는 제도의 청산이 아닌 그들이 자랑스럽게 여겨온 그들만의 특수성의 폐기이다.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민주주의는 그 어떠한 첨가물이나 해석 없이 그 자체로만 존중받고 현실에서 적용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 단순한 논리를 바로 세우고 행하는 일은 그들의 왜곡된 역사만큼이나 쉽지는 않아 보인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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