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 -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진실
팀 켈러 지음, 최종훈 옮김 / 두란노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지만, '믿는다'는 행위나 '믿음'이라는 개념 속에는 논리와 사유 대신 맹신과 침잠의 의미가 더 강하게 내포되어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이런 편견과 오해가 가져오는 가장 큰 불행은 신앙의 본질보다는 표상만 쫓다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조급한 결론을 맺도록 오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팀 켈러 목사님이 신선하게도 믿음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사유 과정을 통해 '이해'하도록 돕는 서간을 출간했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다. 논리와 사유가 믿음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기초가 되어야하지 않을까 싶던 차에 반가운 글들을 만난 셈이다.

 

이 책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이유들과 하나님을 믿는 확실한 근거들로 주제를 나누고 서브 주제로 우리가 흔히 왜곡하고 혼돈하는 질문들을 던져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이런 방식의 구성 방식은 책의 어느 곳을 펼치든 맥락을 떠나서 먼저 읽을 수 있으며 독자의 호기심과 열독의 욕망을 친절하게 수용하는 장점을 보여준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이유로 기독교의 배타성, 악과 고통의 문제, 인간의 자유에 대한 속박, 불의,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심판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점, 과학과 기독교의 역설, 성경의 기적을 그대로 믿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뽑아낸다. 하나님을 믿는 확실한 근거로는 만물에 깃들여 있는 하나나님의 실존에 대한 암시, 하나님을 아는 지식, 죄된 본성, 복음, 십자가, 부활, 영생 등에 대하여 설명한다.

 

각각의 서브 주제들이 기원하게 된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면서, 관련 이론, 사례와 비교하여 질의에 응답하는 방식이다.

 

아무래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더 눈길이 갔다. 그 중에서도 특히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는가라는 주장에는 종교의 분열에 대하는 우리 시대의 세 가지 자세를 통제 또는 금지, 비난, 철저한 개인적 사유화로 들면서 이것이 오히려 종교의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인간이 원래는 선을 행하고 지혜롭게 판단할 수 있다고 믿는 점 자체가 문화적, 종교적 맥락을 떠나 종교적 가치의 중첩성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어느 사회, 어느 문화, 어느 시대에서도 수용될만한 보편적 가치를 믿으면서 기독교만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배타적인 확신 체계가 오히려 개방적이고 인권적 가치를 표방하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본 토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교리의 기초를 이해하기 전에 구원의 배타성이 가진 장점을 설명하면서 일종의 벽을 허물어뜨리는 격이다.

 

결국 핵심은 의심을 의심해야 신앙의 바른 길을 떠날 수 있다는 확신에 찬 주장이다. 의심을 포함하지 않는 신앙은 비극적인 일을 경험하거나 회의주의자들의 탐색 앞에 무방비로 무너진다는 것. 교리를 이해하되, 현실의 언어와 상황으로 해석하는 기독교 변증가가 많아져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다만, 독자로서의 욕심은 교리의 핵심인 사영리 등을 서두에 할애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 죄의 문제와 십자가, 예수님이 오신 의미와 복음의 본질,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부활과 영생의 축복에 대한 이해 없이 단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이해하는 것은 자칫 믿음을 단순한 논리와 사유 안에 갇히게 하지나 않을까 싶은 노파심 때문.

우주는 빅뱅에서 비롯되었다는 결론은 너무도 확고하다. 150억년 전, 작디작은 한 점에서 상상하기조차 어려울만큼 밝은 에너지 섬광이 쏟아져 나오면서 우주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달리보면, 그전까지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나로서는 어떻게 자연이, 여기서는 우주가 저절로 생겨날 수 있었다는 건지 당최 가늠이 가질 않는다. 그리고 기원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어떤 존재가 있어 우주를 출범시켰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자연계 바깥에 있는 존재여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 P2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