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8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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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 특유의 통찰과 위트가 넘치는 단편으로, 제 고유의 맛을 잃지 않은 담백한 일품요리를 먹은 것처럼 개운하다. 연민과 우울이 넘실대는 우리의 삶을 두고, 누군가 마르케스에게 처방을 묻는다면, 그는 주저없이 자신의 저작인 이 책을 건넬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주인공인 대령은 젊은 날 정권에 대항해 싸운 군인으로, 정부가 약속했던 연금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금요일마다 우체국으로 간다. 그러나 56년동안 연금 수금과 관련된 편지는 한번도 받지 못했고, 오직 그는 기다리는 일에 매달린 것으로 묘사된다. 그의 아내는 천식 환자로 가난과 빈곤의 한 복판에 서 있다. 설상가상 노부부의 경제를 책임졌던, 재단사이자 외아들은 투계를 위한 닭만 남기고 군인에게 살해된다. 천식 치료는 커녕 먹을 것도 없는 상황에 연금 소식도 오지 않자 부부에게 닭은 눈엣가시가 된다. 닭을 팔아서 최소한의 품위라도 유지해야한다고 결단한 아내는 대령을 몰아대고 대령은 이재에 밝은 사바스씨에게 닭을 팔기 위해 나선다. 그런데, 우연히 아들의 친구들이 시험 삼아 닭을 가져가고 대령은 적의 공격을 피해 살의를 보이는 아들의 닭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는 마침내 자신의 잃어버린 전의를 되살리고 침체된 마을 사람들의 희망이 된 닭을 팔지 않기로 결심한다. 아내와 심하게 다투면서 이제 무엇을 먹고 사느냐는 아내의 타박에, 75년동안 일각일각을 기다려온, 자신을 무적이라고 느끼며 자신은 더렵혀지지 않았다는 신념에 붙들려 "똥"이라고 답한다.

 

마르케스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독재 정부, 빈곤과 가난에 내몰린 대령 부부, 사적 이익에만 매몰된 사바스씨, 연금 수금 편지가 오지 않았다는 것을 매번 공식적으로 확인해주는 우체국장, 자신의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의사, 자신을 이어 비밀 운동에 연루되어 살해된 외아들, 그리고 제대로 먹지 못해 힘겨워하면서도 막상 투계장에 나서자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수탉을 교차적으로 배치하면서 이 뒤엉킨 삶의 굴레에서 도대체 인간의 존엄성, 삶의 목적, 의미는 무엇이야하는지 되묻는다.

 

또 먹을거리, 입을거리를 핑계삼아 삶의 위대한 경로들을 막아서는 거대한 힘을 앞에두고, 늘상 변비에 시달리던 대령의 입을 빌려, 그것들은 진짜 "똥"일뿐이며 고양된 의지, 선을 위한 항거, 연대와 저항이 진짜 우리의 먹을거리, 입을거리가 되어야한다는 역설을 설파한다.

 

빈한하고 너덜거리는 삶이 된 진짜 이유는 어쩌면 그의 말대로, 그것들이 "똥"인지도 모르면서 "똥"에 천착하느라 보다 높은 차원의 삶의 목표나 생의 의지로 투쟁하지 못하는 비굴함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무도 편지하지 않는 곳에서 75년의 삶을 버텨내며 싸움닭을 통해 다시 생의 의지를 지피는 노 대령의 계시같은 외마디 외침은, 그러므로 더더욱 청량하다.

아내는 절망했다.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먹죠" 아내는 이렇게 물으면서 대령이 입은 티셔츠의 칼라를 움켜쥐고 힘껏 흔들었다. "말해 봐요. 우리는 뭘 먹죠" 대령은 이 순간에 이르는 데 칠십오년의 세월이, 그가 살아온 칠십오 년의 일각일각이 필요했다. 대답하는 순간 자기 자신이 더럽혀지지 않았고 솔직하며 무적이라고 느꼈다 "똥"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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