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교회의 뒷골목 풍경 - 교회사 뒤에 숨겨진 중세인들의 문화와 삶 인문학으로 성경 읽기 시리즈 3
박양규 지음 / 예책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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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문제 의식은 중세를 암흑기로 규정하면서 종교개혁의 기치가 높아질수록 종교개혁의 진의가 오히려 퇴색하는 것은 아닌지 반문하는 데서 출발한다. 중세인가, 근세인가, 현대인가의 중요성을 따지기보다  생존을 위해 언제나 "현재"를 살아내는 개인들의 얽힌 삶을 조망하면서, 시대와 맞닿았던 믿음의 굴곡진 노정을 관통하지 않는다면 누가 현재 중세의 카톨릭 역할을 맡고 있는지 직면할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도 피력한다. 루터나 칼뱅의 종교개혁을 시대의 산물로 이해할 때, 특정 개인에 대한 왜곡된 숭상을 멈추고 우리 믿음의 현주소를 제대로 짚어나갈 수 있다는 확신에 찬 목소리는 결연하기까지 하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박지원의 열하일기 구성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를 배경으로 카톨릭의 권력, 제국의 도약, 성직자와 왕들의 권력 다툼, 독단과 욕망으로 뒤틀린 신앙과 믿음의 배신을 차근차근 풀어가는 데 있다. 또 민중들의 삶을 주로 그린 농민화가였던 피터르 브뤼헐의 그림을 통해 종교와 신앙, 성직자와 민중을 대비시키며 중세의 뒤틀린 사회의 단면을 생생하게 되살려내는 한편, 중세 역사의 주요 무대가 되었던 성당, 궁전 등을 사진으로 수록해 가독성은 물론 이해의 폭을 풍성하게 넓히도록 친절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초서는 <캔터베리 이야기>를 통해 법률가, 기사, 의사 뿐만 아니라 중세의 대표적인 살아있는 권력, 성직자들을 풍자하면서 시대에 저항한 동시에 당시에 멸시당하고 하찮게 여겨졌던 갑남을녀의 이야기들을 옴니버스식으로 구성하면서 상당 부분 지면을 할애하는,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민중을 사랑한, 신앙인으로 표현된다.

 

세상에 대하여 가장 극렬한 분노를 내뿜으며, 신앙의 순결성을 내세워 하나님의 권능을 자신들의 권력으로 둔갑시켜 향유했던 중세 교회가, 슬며시 우리의 부끄러운 좌표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초서처럼 아무 힘도 없는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여 그들과 함께 하고, 잘못된 믿음에 저항할 수 있는, 그것이 진짜 종교 개혁의 정신은 아니었는지 되묻는다.

 

신앙과 믿음의 관점에서 중세를 바라보며 현재를 통렬하게 반성하게 하는, 저자의 성실하고 진지한 시도가 두고두고 감사할 것 같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발생한 갑질의 중심에는 언제나 기독교가 있었다. 사회에서 지탄받는 재벌과 정치인들 가운데 기독교인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런 현상은 교회의 가르침과 무관하지 않다. 교회는 십일조와 예배, 전도와 선교에 혈안이 되어 있지만, 초서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줄 여력이나 마음도 없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강조해야 할 것은 예배보다 사랑이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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