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즘 - 철학.정치 편 - 인간이 남긴 모든 생각
박민영 지음 / 청년사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저자는 이즘을 '세계를 보는 나를 보는 일'이라고 정의내리면서 이즘은 경제, 과학, 예술, 종교 등 지적 영역에서 다루어지고 있지만 분야별로 구분하거나 전공자 내지는 전문가의 명명 형식으로 분류되어 제시되므로, 통합적인 과점에서 이즘을 개괄하기 어렵다는 토로로 이 책의 기획을 설명한다. 특히 서문에서는 이즘에 대하여 철학, 정치 편과 사회, 문화, 종교 편 두 권으로 출간할 계획이었다고 고백하면서 이 책이 첫째 권이라고 소개한다. 책을 읽고 다면 두 번째 권도 읽고 싶어지기 마련인데, 안타깝게도 아직 두 번째 권은 출간 전인 것 같다. 연작의 출간을 기다리게 하는 저자의 풍성한 지적 사유는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이즘이 탄생한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고, 그 영향력과 주요 의미를 사전적으로 설명하는 동시에 자신의 주관적 생각을 덧붙이는 데서 출발한다. 저자의 견해가 제시되므로 독단적이거나 주관적 글쓰기에 갇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독서를 더해가는 동안 오히려 저자와의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어지는 것 같은 능동적 독서의 이점을 충분히 살려낸다.

 

철학 편보다는 정치 편을 더 흥미롭게 읽은 것 같다. 철학 편에 비해 정치 편은 2008년에 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루어지는 사회적 논의에도 예리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눈여겨 본 대목은 사회민주주의와 페이비어니즘인데, 불평등, 격차, 공정성에 대한 회의가 점철된 우리 사회에게 뜨거운 화두를 던지는 이즘.

 

페이비어니즘을 탄생시킨, 페이비언협회가 1884년 영국에서 창설될 때 노동자가 아니라 진보적인 자유주의 지식인의 모임이었으며 자본주의와의 단절을 주장한 마르크스 사회주의와 달리 자본주의를 계승하되, 일그러진 자본주의 체제 안에 사회주의적인 제도를 심어가면서 자본주의를 수정해나가려는 시도로 시작되었다는 점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렌트의 개념은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노력의 대가라고 생각하기 쉬운 개인의 능력이 사실은 그 능력을 갖추도록 한 유리한 가정 환경, 공교육의 혜택 등을 고려해 기회의 렌트를 유추해보야한다는 것이다.

 

실제 능력과는 상관 없이 대중이 상상함으로써 높은 소득을 올리는 상상의 렌트, 부유층끼리의 경쟁으로 얻는 인플레의 렌트, 어떤 특정 지위에 있다는 것만으로 받게 되는 지위의 렌트, 자질이나 신체 조건으로 화폐 소득을 올리게 하는 요령의 렌트, 노력과 상관 없이 수요-공급의 불균형으로 수익을 올리는 수요과 공급 렌트에 주목하면서 통상적인 경제적 임금을 넘어서는 이익은 모두 렌트의 개념으로 치환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토지, 자본, 능력은 오히려 공유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국가가 할 일은 특정 그룹의 렌트 전용을 막으면서 사회적으로 공유시키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본다.

 

저자는 페이비어니즘이 영국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설명하면서 급진적인 사회 변혁 대신 점진적인 변화를 모색한 점이 오히려 사회주의보다는 자본주의의 생명을 연장하는 데 일조했다는 통찰도 제시한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등에 일종의 두려움 내지는 혐오감이 두터운 우리 사회에서도 보다 진전된 사회를 위하여 한번쯤은 함께  생각하며, 토론할 수 있는 이즘이 아닐까 싶다. 동시에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이즘은 당대 사회적 조건과의 관계, 이전 역사와의 관계, 다른 이즘과의 관계 속에서 탄생한다고 했는데, 자본주의의 병폐가 빠르게 심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지식인 층에서는 왜  페이비어니즘과 같은 이즘이 생생한 운동력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인지, 대채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풀죽는 의문도 생겨난다. 남북 대치 상황으로만 문제를 단순화시킬 수 있을까 자문해보면 오히려 암담해지는 그런 의문.

객관적이라는 미명 하에 저자의 관점이 투영되지 않은 책은 오히려 생기 없는 지식을 전달할 뿐이다. 모든 독자가 나의 관점에 동의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저자 고유의 관점이 투영된 책은 독자가 그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에도 중요한 지적 실마리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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