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과 인문학
정과리.이일학 지음 / 강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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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가장 정확하고 효율적인 방법은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일테다. 문제는 빈약한 지식, 빈곤한 시야 탓에 혼자서는 결코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감염병에 대해 문학, 예술, 의학, 역사학 등 다양한 견해를 관통하며 읽어나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기획에 감사하게 된다.

 

위험사회의 가장 큰 위험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는 감염병에 대하여 그간 의학적 관점이 두드러지는 바람에 감염병의 실체를 단순히 질환으로 이해하는 형국이었는데, 이 책은 잠잠히 편벽진 접근법에 미세한 파열음을 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감염병에 대한 반추는 전체 스토리의 모자이크 조각처럼 각각의 장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돋보인다.

 

삼국시대, 고려, 조선, 일제시대를 거쳐 각 시대별 감염병에 대한 대응이 눈에 띈다. 삼국통일 후 도성을 중심으로 대규모 구휼 정책을 펼치는 한편, 전문 집단만 소유했던 의학지식을 정리하고 표준화하여 민간에서도 쉽게 지식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의학서를 편찬하는 등 일종의 보건교육 전략을 구사한 점, 일제 시대 위생경찰을 통해 감염병 통제가 이루어진 역사적 맥락이 이어져 우리의 감염병 정책이 배제와 감시가 주를 이루게 되었겠구나 짐작할 수 있는 점 등이 흥미롭다.  

 

결핵과 문인들의 삶을 고찰하는 장은 생경할 정도로 신선하다. 김유정, 나도향, 이상, 오장환, 이용악 등 문인 등이 보여주는 결핵의 실체, 즉 결핵균과 치료의 과정이 아니라 인간의 몸속에서 실제 결핵균이 질환으로 발현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인간의 정신과  몸에서 인간성을 구현해내고 작동하는지 예리하게 보여준다.

 

드라큐라와 비만의 유행성을 비교 분석한 부분도 눈길을 끈다. 피를 먹고 마시므로 영생하고 연대하는 동시에 한편에서는 파멸과 파괴가 자행되는 드라큐라는 결국 음식 소설이며,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현대사회에서 그렇게 먹고 마실 수 밖에 없도록 작동하는 기제 속에서 비만은 유행하고, 이와 반대로  빈곤이 창궐한다는 분석은,  감염병의 독특한 이면과 유행의 구조적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바이러스와 프리온, 일제시대 문학과 성병, 결핵과 러시아 문학, 에이즈와 인권, 감염병의 공포와 타자화 등에 대한 성찰도 감염병을 이해하는 외연을 넓히도록 하는 데 충분히 일조한다. 독자로서 욕심을 내자면 위험 인식과 대응, 건강불평등과 감염병, 위험 커뮤니케이션 등이 보완되었더라면 더 촘촘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감염병은 인간의 세계의 중심에 선 시대, 즉 근대의 문제이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몇 가지 고민거리를 안겨준다. 그 고민거리는 크게 보아 두 가지 방향으로 갈린다. 우선 감염병과 인간 사이의 관계의 양식에 관한 문제이다. 그리고 감염병에 대한 인간의 대응 양태에 대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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