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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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능수능란한 아름다운 짜깁기이자 재치있는 패러디에 가깝다. '말아먹은' 한 편의 영화를 끝으로 영원히 영화를 찍을 수 없게 된 신용불량자이며 백수인 오감독이 이 글의 주인공이며 나래이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가는 아는 영화가 많아서 중심인물들을 수시로 영화 속 세계로 슬그머니 차원을 이동시키고, 주인공으로 하여금 존경하는 작가 헤밍웨이의 낡은 전집을 백수생활 내내 읽게 하면서, 자신이 아는 모든 영화와 헤밍웨이의 소설들을 뒤죽박죽 섞어서 독특한 자신만의 작품을 한땀한땀 기워 펼쳐보인다.
  월세를 낼 돈도 없어서 칠순 노모의 집으로 얹혀 살러 들어가는 주인공은 비참하게도 마흔 아홉의 나이다. 더 한심하게도 쉰 두살의 나이에 이미 엄마집에 얹혀산 지 오래인 형이 있어서 좁은 빌라에서의 생활은 곤혼스럽기 짝이 없다. 그 곤혹스러운 상황에 이혼을 하고 딸까지 데리고 들어온 여동생이 합해지면서 좁은 빌라는 흡사 세상에 지친 사람들을 위한 쉼터이거나 재활훈련장처럼 여겨진다.
  쉰 두살의 백수형이 건넌방에서 방귀끼는 소리가 들리고, 여동생의 소변보는 소리까지 다 들리는 좁은 빌라에서 어찌할 수 없이 서로의 영역에 마구 파고들고 몸을 비비고 살게되면서 주인공은 자신이 형에 대해, 여동생에 대해, 그리고 심지어는 엄마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삼남매는 어린 자식들을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해먹이던 어머니의 옛 음식들을 다시 먹으며 세상으로 돌아갈 힘들을 비축한다. 이런 비장한 재활의 노력이 진지하게 서술되지 않는 것이 이 책의 재미있는 구성이다. 형제는 조카의 간식을 뺏어먹고, 조카의 용돈을 가로채며 비굴하면서 그저 편한대로 행동하는 백수의 삶을 어머니가 챙겨먹이는 기름진 음식들을 먹으며 누린다. 그러는 가운데 작가가 스스로 말하듯이 막장드라마처럼 출생의 비밀이 끼어들고, 어머니의 불륜사실이 밝혀지고, 여동생의 어두운 과거도 드러난다.
  삼류 영화처럼 미용실 아가씨를 두고 두 형제가 로맨스 경쟁을 벌이고, 어설픈 느와르영화처럼 별이 다섯이나 되는 형이 불법업소의 바지사장 노릇을 하다가 멋진 한방을 날리고 많은 돈과 함께 해외로 잠적한다.

  태양 아래 더이상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는 듯이 아니면 교양있는 독자라면 이 패러디를 눈치챌 것이고, 모른다면 그저 내 이야기로 알겠지 하는 듯이 작가는 아주 뻔뻔하게 수많은 영화와 소설들의 내용을 차용하고 비틀고 혼합하며 즐긴다. 이제 문학에도 팝아트적인 시대가 열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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