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쓴 글씨 - 남아프리카공화국 문학 다림세계문학 34
베키 압테커 지음, 강수정 옮김, 김은경 그림 / 다림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이야기는 삶의 기본조건마저 채울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 생활하는 어린이들의 현실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현실과 달라서 어린이들에게 자신이 누리고 있는 삶의 조건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문화적, 경제적 현실에 대해 알 수 있게 해준다. 

  너무 배가 고파서 학교에 걸어갈 수도 없다면, 자신이 굶어서 죽을 수도 있다면 많이 가진 자의 음식을 훔치는 것은 죄가 될까? 되지 않을까? 이 책의 주인공 노엘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항상 말하던 정직을 지켜내기에는 너무나 배가 고파서 절망한다. 먹을 것을 훔쳐내기 위해 폭력조직에 들어간 형이 가져온 음식 앞에서 허기져 먹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이 원망스럽다. 그러나 고고하게 정직을 이야기하기에는 소년은 너무 배가 고프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모두 돌아가시고, 자신의 보호자가 된 형이 어머니와 똑같은 결핵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소년은 더욱 슬프고 조급해진다. 형마저 없으면 자신이 어떻게될지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소년은 다행히 도서관을 찾게 된다. 작문숙제의 주제인‘삶이 가치있는 이유’는 소년이 진정으로 답을 찾고 싶은 문제였다.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던 그날, 노엘은 가난한 흑인들이 많이 사는 알렉산드라를 물결쳐 흐르는, 아니 간신히 졸졸 흘러가는 더러운 욕스케이 강가에 배를 대고 누워 있었다. 한 손으로는 턱을 받치고 한 손은 흘러가는 물 위에 금세 사라져 버릴 글씨를 쓰며 몇 시간 동안 누워 있었다.

  밀리……. 엄마의 이름이었다. 노엘은 그 이름을 물 위에 쓰고 또 썼다. 물에 쓴 글씨는 쓰자마자 사라졌다. 처음부터 아예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엄마처럼……. 엄마의 인생도 그런 걸까? 흐르는 물 위에 손가락으로 쓴 글씨처럼 스르르 사라진 걸까? 루카스 형의 인생도 그렇게 될까? 그리고 나도?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전부 물에 쓴 글씨 같은 걸까?(p.105)

  도서관에서 소년은 시를 알게 된다. 신기하게도 잠시 배고픔을 잊게 하고 마음을 평온하게 하며 희망을 갖게 해주는 시에 소년은 매혹된다. 그리고 자신처럼 어린 시절에 고아가 되었다는 아저씨를 만나 사람들이 겪게되는 슬픔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긍정적인 해답을 듣게 된다.:

  “예를 들면 이런 거야. 어떤 아름다운 것을 보거나 행복한 일이 생기면 전에 느꼈던 슬픔 때문에 그게 더 아름답게 보이고, 더 행복하게 느껴지는 거지. 그 아름다움과 행복이 더 소중해지는 거야. 슬픔은 마음을 깍아 내서 행복이든 슬픔이든 기쁨이든 넉넉하게 담을 수 있게 큰 그릇으로 만들어 주거든. 내가 슬픔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건 그게 내 행복의 일부이기 때문이야. 많이 슬플수록 더 많이 행복해질 수 있어. 더 나은 삶을 꿈꾸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거야.”(p.158) 

  물질의 풍요와 편리함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데에 익숙해져가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곁에 있는 소중한 가족과 늘상 사용하고 있는 물질들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에게 양심의 문제 같은 철학적 문제, 아직도 지구촌 곳곳에서 문맹과 기아의 늪에 갇혀있는 어린이들의 문제 같은 조금 어려운 주제도 생각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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