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하기’라는 제목만큼 유혹적인 것은 없다. 특히 스케치는 쉽게 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이 제목이 매혹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마다 필력이 다르고 느낌이 다르고, 연습한 만큼 진실되게 나타나는 것이 스케치의 필력이다. 사실 그래서 ‘쉽게 하기’ 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주는 것이 김충원 교수의 책이다. <기초 드로잉>편부터 시작되어 어느새 다섯 번째 편이 되는 이번 책은 <동물드로잉>편이다. 동물 드로잉은 각각의 종의 질감과 표정과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분야다. 특히 생생한 움직임을 잘 그려내기 위해서는 동물의 골격구조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 책은 이러한 모든 선입견을 벗어버리고 편안한 상태에서 스케치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맨처음 저자는 토끼의 두가지 얼굴을 예로 들면서 우리 머리 속에 있는 시각적인 관념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릴 적 만화 책에서 보았던 형태를 잊고 ‘깊이 있는 관찰을 통해 두개골 구조나 근육의 흐름, 혹은 각 부분의 비례 따위를 파악한 다음 그 결과를 손을 이용하여 효과적으로 나타내라’(p.12)고 말한다. ‘쉽게 하기’시리즈의 좋은 점은 그리기 과정을 나누어 각 단계별로 세세하게 보여주고, 각 단계별 유의점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번 <동물 드로잉>편에서도 예외없이 단계별 설명이 아주 잘 되어있다. 그림을 배울 때 선생님의 손놀림에 열중하다보면 유의사항 설명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나중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가 많은데, 이 책의 단계별 설명은 그런 단점을 보완해주고도 남을 만하다. 보조선을 사용하는 기초에서부터 차근차근 설명하는 것도 좋지만, 동물드로잉에서 특히 중요한 각각의 동물의 털의 질감, 골격에 따른 리듬감, 근육의 볼륨감 등등에 대한 설명은 오래 스케치를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노하우를 공개하는 것으로 아주 값진 것이다. 작품 설명 중에 나오는 작가의 스케치에 얽힌 일화나 각각의 동물에 대한 작가의 감성은 작품에 기교만이 아니라 감정도 깃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사물의 보는 예술가의 특별한 눈에 감탄스럽기도 하다. 저자는 특히 작품의 완성도에 연연하지 말고 드로잉에 대한 열정과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강조한다. 책 뒤편에는 이번에도 드로잉 연습장이 있다. 연한 보조선이 있는 그림을 따라 그리다 보면 정말 금새 실력이 느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완성’이라는 개념이 무의미한 드로잉에서는 오직 ‘과정’만이 존재합니다. 단순한 선과 선이 물이 흐르듯 부드럽게 어우러져 만들어진 형태가 어딘가 부족해 보이더라도 내 손으로 창조해 낸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드로잉의 매력에 빠져들고 맙니다.(p.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