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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타는 아이 어름삐리 ㅣ 우리나라 그림동화 6
신지은 글, 정지윤 그림 / 대교출판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쾌지나 칭칭 나네~
첫 장을 넘기면 벌써 왁자한 마당놀이판이 벌어져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모인 구경꾼들은 다들 오랜만에 구경하는 마당놀이에 입이 떡 벌여져 있고, 장구, 꽹과리, 소고를 든 사람들이 사람들의 흥을 한껏 돋우고 있다. 그런데 이 놀이판을 보는 것이 사람들만이 아니다. 봇짐 속에 있는 인형들도 얼굴을 내밀고 구경하기 시작한다. 인형들의 관심을 끄는 가장 예쁜 아이, 그러나 가장 눈물이 많은 아이, 어름삐리는 줄타기를 배우는 초보자 아이다.
대잡이들이 인형을 잡고 흔드는 대로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대로 하는 수 밖에 없는 인형들은 다같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자신의 뜻대로 하지 못하기는 어름삐리도 마찬가지다. 오늘 몸이 안좋은 어름삐리는 어름광대에게 부탁하지만 우두머리인 꼭두쇠의 명에 하는 수 없이 줄을 탄다. 결국 어름삐리는 줄에서 떨어져 피투성이가 되지만, 삐리가 멍석에 실려나간 마당판에는 다시 광대들이 나와 탈놀이를 하고 사람들은 까르르 웃으며 탈놀이에 빠져든다.
다음은 인형놀이 차례. 대잡이 광대에 붙들려 모두 무대에 세워진 인형들. 그런데 박첨지 인형이 소리를 지른다. ‘우리 어름 삐리를 데리고 여기서 탈출하자!’ 마당놀이판이 현실을 뛰어넘어 바닥을 박차고 상상 가득한 세계로 도약한다.
평양감사인형의 어깨에 있던 매가 날아가서 고양이의 삼치뼈를 낚아채와서 용이 되지 못한 이시미 인형에게 돛을 달아준다.
“자, 모두 올라타라.
우리 마음대로 움직이고
우리 마음대로 말할 수 있는 세상으로 가자!”
어름삐리를 태우고 인형들을 태우고 용이 되어 아득한 창공으로 날아오른다.
흥겨운 한바탕 놀이마당을 구경한 듯도 하고, 한편의 판타지 영화를 본 듯도 하다. 흥겹고 신기한 것들이 가득한 구경을 했는데 마음이 얼얼한 것이 흥겨운 구경과는 정반대이다. 화려함 색들이 가득한 그림책을 보았는데, 다음 한 켠이 어둡다.
화려하고 흥이 나는 동작을 한껏 뽐내며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자신들의 슬픔을 안으로 삭였을 남사당패의 삶을 볼 수 있다. 남사당놀이의 여섯마당을 순서대로 충실히 재현해낸 한국적인 색감을 잘 살린 그림도 일품이다.
슬픔을 흥겨운 축제로 승화하는 우리 전통 놀이판의 감성을 잘 살린 훌륭한 그림책이다. 이 그림책이 인형극으로 만들어 진다니, 이 흥겨움과 화려함, 그 뒤에 숨은 슬픔을 다 표현할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