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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바다
예룬 판 하엘러 지음, 사비엔 클레멘트 그림, 이병진 옮김 / 세용출판 / 2008년 1월
평점 :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자. 세상이 무척 고요할 것이다. 사람들의 동작의 크고 작음만 보일 뿐 그들의 목소리의 높고 낮음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바다도 그렇다. 파도의 모습만 보일 뿐 고요할 것이다. 이 책의 제목 ‘고요한 바다’는 청각장애를 갖고 태어난 에밀리오의 세계를 나타낸다.
에밀리오는 태어나면서부터 청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이러한 에밀리오를 부끄러워했고, 결국은 가족의 곁을 떠나고 만다. 더구나 에밀리오의 동생 라우라가 태어난 후 에밀리오의 엄마는 라우라를 키우는데에 열중하면서 아버지의 떠남을 잊으려 한다. 에밀리오는 자주 옆집에 사는 하비에르 아저씨와 함께 있게 된다.
하비에르 아저씨를 통해서 에미리오는 세상의 소리들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하비에르 아저씨가 에밀리오에게 들려준 이야기 중에서 가장 이상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바다가 소리를 낸다고 하는 것이다.
아저씨는 언젠가 바다가 “쏴아쏴아거린다”고 하면서 마치 누구에게 뽀뽀라도 하려는 듯이 입술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나는 그 소리가 어떤지 잘 몰랐지만 아저씨는 수천 개의 물방울이 바람을 따라 춤추면 바다가 “쏴아쏴아거린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P.23)
하비에르아저씨는 아저씨의 사랑이야기도 해주면서 세상에 대해 알려준다. 그러나 여전히 에밀리오는 세상의 모든 사물이 소리를 낸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의 막힌 귀를 뜷어보려한 위험한 시도로 에밀리오는 병원에 가게 되고 거기에서 세뇨라 안나를 만난다. 그녀는 그에게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해주고 입술모양을 이용해 말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안타깝게도 하비에르아저씨도 엄마도 세상을 떠나고 에밀리오는 세뇨라 안나와 함께 생활하게 된다.
이 모든 슬픔들에도 에밀리오는 행복하게도 자신의 고요한 바다가 춤추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생에 찾아왔던 모든 슬픔을 바다가 내는 ‘쏴아쏴아’소리에 씻어버리고 에밀리오가 춤을 춘다. 행복한 결말인데 자꾸 눈물이 난다.
바닷물이 뒤로 물러나면서 모든 것이 고요해지는 듯하다. 아니, 그렇게 보이는 것 뿐이다. 한바탕 시끄럽게 소란을 피운 뒤에 들려오는 아주 작은 소음은 고요함과 비슷하다. 그러나 바다는 절대로 침묵하지 않는다. 바다는 쏴아쏴아거린다. 마치 수천 개의 물방울이 바람을 따라 춤을 추듯이.
“세뇨라 안나?”
“에밀리오, 왜그러니?”
“당신과 함께 춤춰도 될까요?”
“여기엔 음악도 없잖아.”
“ 아뇨, 세뇨라, 있어요. 바다에 귀를 기울여봐요, 쏴아쏴아거리잖아요.”(P.78)
고요한 바다의 일렁임들이 감동으로 변하면서 어느새 눈물이 차오르는 작품이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에밀리오의 눈으로 본 세상은 고요하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놓치기 싫은 에밀리오의 다른 감각들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에게 세상을 보는 다른 눈을 가져보라고 말한다. 책을 보는 내내, 에밀리오의 슬픔이 바다처럼 쏴아쏴아 내 마음에 밀려오는 듯 했다.
어린이들에게 장애를 보는 다른 눈을, 마음을 심어줄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굳이 어린이들을 위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넘어서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