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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양산
마쓰다 마사타카 지음, 송선호 옮김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이 연극은 너무도 조용하고 지루하게, 그리고 너무나 일상적으로 시작된다. 손톱을 깍고 있는 요지 그는 이 연극의 남자주인공이다. 이어서 장바구니를 들고 돌아오는 나오코, 그녀는 요지의 아내이다. 그녀가 돌아와서 하는 말은 ‘뭐라도 깔고 하지 않구요’이다. 과장된 몸짓이나 연극적 톤이 없이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그들이 연극 속의 주인공들이라는 것도 잠시 망각하고 우리의 이웃처럼 착각할 정도다.
이 조용하고 지루한 일상의 리듬 속에서 하나씩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이야기들이 일상을 가장하고 하나씩 드러난다. 삼개월의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나오코, 직장을 그만둔 요지, 밀린 집세, 그 와중에 요지의 외도까지.
그리하여 떠나야하는 아내의 남편에 대한 미안감과 마지막 바램, 실직한 주인공의 아내에 대한 미안감, 서로가 짐짓 모른 채하고 있는 외도에 대한 미묘한 감정들. 이 모든 것들이 얽혀 연극은 미묘한 무게를 더해간다.
그러나 정작 그들 사이를 오가는 것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절제된 대사들 뿐이다. 그래서 그들을 바라보는 독자이며 관객은 마음이 편치 않다. 그들 사이의 짧은 대사 뒤에 남겨지는 말줄임표들이 숨막히게 안타깝다. 그들의 대사 사이에 자꾸만 끼어드는 잠깐 동안의 침묵이 반복되면 될수록, 관객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된 밀물이 목젖께까지 차올라와 어찌할 바 모르고 서성인다. 그들이 짧은 대사를 하고 침묵할 때 관객은 그 침묵을 독해하느라 버겁다.
연극은 끝까지 아주 무관심하고 느슨한 일상적인 대사의 형식을 고수한다. 그들 사이의 대사가 서로에게 향하지 못하고 자꾸만 어긋나면서 지켜보는 관객은 더욱더 그들이 안쓰럽다.
나오코는 그녀의 마지막 소원인 바다로의 여행을 하지 못한 채 떠나고 만다. 장례식 또한 우리의 일상 중의 하나가 아니던가! 집주인 부부는 밀린 집세를 걱정하고, 잡지사직원은 외도의 상대였던 다다의 소식을 전하고, 그렇게 치루어진다.
이제 모두가 돌아가고 혼자 남겨진 요지가 문득 밥을 말아먹다가 내리는 눈을 보고 늘 그렇듯이 일상적으로 중얼거린다.
‘이봐, …눈 내린다.…’
역시 지극히 일상적인 듯하다.
그러나… 생각하면 할수록 더 이상 일상적일 수 없는 슬픔의 해일이 그 한마디 속에 숨어있다.
안쓰러운 마음으로 책을 덮으면 왠일인지 시야가 흐려지고 마음 한켠이 써늘하게 추워온다. 내 마음에도 눈이 내리는 듯…
* 이 책의 인상깊은 마지막 장면:
요시오카, 나간다. 요지, 배웅하고 잠시 후 들어와서 혼자 앉는다. 넥타이를 풀어 바닥에 던진다. 그리고 양복을 벗고 옷걸이를 가지고 와서 벽에 건다. 마당으로 향한 문을 추운 듯 닫으러 갔다가 부엌으로 간다. 그리고 탁상을 내온다. 다시 부엌으로 가서 저녁밥을 가지고 온다.
앉아서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요지 잘 먹겠습니다.
그러나 좀처럼 먹히질 않는다. …
다시 부엌으로 가서 … 찻주전자를 가져와 탁상에 놓는다.
밥에 차를 붓고…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그것을 본 요지, 엉겁결에
요지 이봐, …눈 내린다.…
그러나 누구도 대답할 리 없고, 요지는 밥을 후루룩거리며 먹는다.
눈 내리는 밤, 그리고 사에키 요지.
음악.
암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