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돌리드 논쟁
징 클로드 카이에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샘터사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아메리카대륙이 '신대륙'이라는 이름으로 유럽인들에게 불리우던 1500년대에 있었던 하나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누구에게 신대륙이라는 말인가? 신대륙이라는 말 자체가 그들, 정복자들의 편견이 숨어있다. 아즈텍족과 잉카족들에게는 수년간 살아온 자신들의 터전이었다. 다만 유럽인들의 지도에 없었던 것 뿐이었다.

  자신들과 전혀 다른 언어와 관습 속에서 생활하는 순수하기만한 사람들 앞에 유럽인들의 탐욕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온갖 만행이 자행되자, 이제 자정의 한 장치로 그들의 존엄성에 대한 토론의 장이 마련된다.

  인간들이 똑같은 생명체이며, 똑같이 사고능력을 가지고 있는 또다른 존재들을 놓고서 그들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는 이 상황 자체가 아이러니이지만, 우리네 인간의 역사 속에서는 심심찮게 일어났던 일이라는 점이 또한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1550년 철학자 세풀베다와 수사 라스카사스가 에스파냐국왕의 궁전이 있는 바야돌리드에서 역사적인 논쟁으로 5일을 보낸다. 이 논쟁은 에스파냐가 정복한 신대륙의 인디오들을 자신들과 같은 인간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시작한다.

  하나님께 어느 것 하나 감출 수가 없는 강직한 도미니크회 수사 라스카사스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디오들에게 자행된 모든 비열한 박해들을 열거한다. 라스카사스 신부의 울분에 찬 논지는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되고, 그러기에 반박을 그럴싸하게 해대는 세풀베다의 논지 또한 흥미롭기 그지 없다.

  인디오들을 기독교인으로 만들고 싶다는 의지는 양편 모두에게 똑같이 정당한 의지이다. 우상숭배를 하고, 인신공양을 하는 '미개한' 종족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기 위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잔혹해질 수 있다고 설파하는 철학자의 말도, 신대륙의 사정을 잘 모르는 청중들에게는 그럴 듯해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을 호소하는 라스카사스의 논지는 에스파냐인들의 잔혹성만을 강조하게 되어 청중들의 호응을 얻어내지 못한다. 결국, 그들은 바른 결정을 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에스파냐가 정말 저주받은 종족을 해방시킨 훌륭한 나라로 영원히 찬사를 받고 있는가?

  책을 읽는 내내, 정말 뻔한 이야기를 놓고 이렇게 진지하게 양심을 저버리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인간들 자체에 환멸이 느껴졌다.

  그만큼이나 쓸쓸한 마지막 장면. 그들은 자신들이 인도적인 결정을 했다고 자랑스러워하며 자리를 뜬다. 그러나, 그들이 떠난 수도원을 비질하는 것은 아프리카에서 온 일꾼이다. 그러하니...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단 말인가? 

* 책 속의 한 구절

  추기경이 좌중을 보면서 말을 잇는다. "교황께서 이렇게 나를 여러분에게 보내시면서 한 가지 분명한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을 받아, 그 원주민들이 모든 것을 고루 갖춘 인간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바로 그 임무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들이 하느님의 피조물이고 아담의 피를 받은 우리들의 형제들인지, 아니면 혹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와 다른 범주에 속하는 존대들이거나 악마제국의 신민들인지를 가려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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