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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이데올로기 ㅣ 최인훈 전집 12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12월
평점 :
김현이 지적했던 바와 같이, 최인훈 문학에 있어 제갈공명은 대단히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공명에게서 시인의 이데아(희망)를 보고, 우울한 근대 지식인의 초상인 이순신을 떠올리며, 근대의 어떤 불가능성을 예감한다. 사태는 이렇다.
문학과 이데올로기에 수록되어 있는 에세이 「공명」은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시작된다. 최인훈은 꿈속에서 제갈공명을 본다. 그는 수레를 타고 길을 지나가고 있으며, 최인훈 자신은 먼 발치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 잠에서 깬다. 멀리서 공명이 타고 가던 수레 소리 같은 것이 들려오고 최인훈은 그에 대한 글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최인훈이 (역시)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이는 것은 공명의 ‘책읽기’이다. 의심할 것도 없이, 공명이 읽었을 책의 대부분은 병서(兵書)인데, 그것은 생활의 경험이 반성과 사색을 거쳐 책의 형태로 나온 것이다. 이를테면 그것은 ‘순수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최인훈의 생각으로는, 중국은 광활한 영토와 풍부한 인구를 기반으로 중국-천하-세계라는 보편주가 생리화 되어 있다. 이는 공명과 같은 당대 지식인들에게 보편-특수 사이의 조화 감각을 가져다 주는데, 달리 말하면 세계와 자기에 대한 인식이 합일되어 있음을 뜻한다. 이러한 세계에서는 책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일치되어 있으며, 병서(와 그 밖의 책들)는 여기서 완전한 정신을 단련시키는 하나의 세계로 기능한다. 책으로의 망명(도피)은 여기서 일어나지 않는다. 산속에서 책만 읽는다 하더라도, 정신속에서 세계는 이미 완전히 독해가능한 것이 된다.
그런데 귀 큰 것 빼곤 아무것도 내새울 것이 없는 유비가 공명을 찾아와 책 밖으로 나올 것을 권유한다. 정치적 결단을 요구한 것이다. 공명은 거절한다. 이미 그의 ‘정신적 시력’은 완성되어 있으며, 현실에서 더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런데도 공명이 결국 유비의 제안을 수락한 이유는 무엇인가. 최인훈의 질문은 이렇다. “공명의 순수하고 완전한 삶을 현실에서도 허락할 것인가? 현실을 시처럼 살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을 이렇게 바꿔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은 현실이 될 수 있는가?, 정치는 시가 될 수 있는가?, 삶이 책이 될 수 있는가?’ 대답은 -적어도 공명에게 있어서만은- 그렇다.
공명이 책에서 나와 군담소설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 삼국지의 서사의 성질은 완전히 변화된다. 공명은 슈퍼맨이고, 초인이며, 프리즘이 되어 현실의 불투명함을 명료하게 바꾼다. 그의 등장 이전에 사실주의적이며 예측할 수 없는 냉혹한 현실을 반영하던 삼국지는 그의 등장 이후로 게임의 양상이 뚜렷해지며, 관념화·심리화의 길을 걷게된다. 책처럼 정치를, 전쟁을, 그리하여 책처럼 인생을 사는 공명에게 경국(經國)은 ‘순수행위이며 후회없는 앙가주망’이다. 공명의 출사표는 글인 동시에 현실이며, 행동 그 자체다. 그는 현실의 인간이면서 시 자체이고, 자신의 능력으로 시가 되고 있는 인간이다.
요컨대, 공명의 삶에는 순수행위의 3가지 형태가 있다. 1. 책읽기의 끝(행동의 시작), 2. 행동의 끝(허구의 시작), 3. 허구의 끝(세계의 변화). 1. 책읽기가 끝난 후, 현실에서 그는 늘 이긴다. “이 비범한 인간을 매개로 하여 현실은 마침내 심리화되고 관념화되고 상징화된다.” 이를테면, 현실과 상징의 일치. 2. 행동의 끝, 즉 공명은 죽는다. 그러나 몸을 잃어버린 후에도 그의 마음은 ‘행동’을 만들어낸다. 공명은 자신이 행동하거나, 병기를 이용하거나, 사람을 이용하지 않고, 돌들(자연)을 행동시킨다. “돌들에게 미리 뜻을 주어 숨겨두었다가 그들의 디데이에 그대로 행동하도록 돌들을 정확히 짜놓은 것이다.” 육체를 잃었을 때, 순수행위는 더 완벽해진다. 이를테면, 자연사를 통한 인간사의 변화. 3. 허구도 끝난다. 공명이 등장했던 역사의 시간은 끝나지만, 그는 시가 된다.
그러나 공명처럼 사는 것, 다시 말해 시가 되는 지식인이란 불가능하다. 전 군대를 움직이고, 그리하여 창업지신(創業之臣)이 되어, 자신의 삶을 역사에 일치시키는 그런 삶이란 애초에 근대적 지식인에게 주어져 있지 않다. 기껏해야 ‘신문지 한 장으로 국내의 정세를 더듬어야 하는’ 우울한 근대 지식인에게, 공명의 삶은 꿈에서나 간신히 구경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꿈이다.
해서 최인훈은 꿈깨기 작업으로 이순신을 떠올린다. 초인적인 능력, 인품의 공명정대함, 비마키아벨리스트로서의 면목은 이순신과 공명의 공통점이지만, 자신의 직접적 행동을 통해 역사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근대 지식인에게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공명의 비극은 ‘하늘의 비극’이지만, 이순신의 비극은 ‘인간의 비극’이다. 그리하여 공명의 정치적 행동은 적에 대한 ‘갤런트리’로 나타나지만, 이순신의 경우에는 ‘순교’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최인훈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의 말을 빌리자면, ‘신통한 행동 하나 없는 삶’이다. 그러나 최인훈은 그 ‘꿈’을 꿈 만으로 남겨두지는 않는 것 같다. 꿈 - 공명 - 이순신 - 꿈깨기로 이어진 이 글은 다시 꿈을 꾸는 것으로 끝난다. 그는 다시 공명이 남기고 간 수레바퀴 자국을 떠올린다.
그러나 인제야 졸음이 참을 수 없이 밀려온다. 생각을 지탱할 수 없이. 옳다. 거기서. 거기 가서 생각해보자. 그 들판에서. 좀 전의. 수레 자국이. 남아 있을. 그. (p. 173)
최인훈 끝.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려온다.
책표지가 절묘하다.
책 속에 책이 있다. 책 속의 책 안에서 전쟁이 일어난다. 불기둥은 책 속의 책을 뚫고 나오지만 책 밖으로 나오지는 못한다. 여전히 불꽃을 보기 어렵다. 완전연소 되어버렸거나, 걷잡을 수 없어 외면해버리는 화염들이 있을 뿐.
걸어나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