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 구운몽 ㅣ 최인훈 전집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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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를 단번에 읽어낼 방법은 존재하는가. 더욱이 그것이 한 사람 안에서 인지되고 체험되는 시간과 장소가 아니라면? 제각기 다른 표정·생각·판단 하에 한 장소 안에 모인 군중, 그리고 그들의 시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흐릿하게나마 공통된 목적. 아마도 그것이 한 사람에 의해 단숨에 그려지기 위해서는 그 속의 있었던 한 인물의 내면을 읽고·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리라. 하지만 그들과 그 시간 전체를 동일한 것으로 가정하는 방법 또한 만족스럽지 않다. 그렇다면 ‘황폐성’과 ‘무질서성’으로 가득한 이 유물과 마주한 ‘고고학자’의 과제란 어떤 것인가. 이 폐허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나의 영화이기도 하면서, 꿈이기도 한, 하지만 일어난 사건의 토대 위에 서 있는 이 소설은 ‘미궁 속에 빠진 몽유병자’인 독고민이라는 인물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황해도 출신으로 포목상 아버지 밑에서 자라나, 한국전쟁 때 남하하여 2년간의 군 복무 후에, 넥타이·군복·고구마·무연탄 장사를 거쳐 미군부대의 ‘궁정화가’가 되었다가, 지금은 ‘간판가게 점원’인 이 말 없는 인간의 꿈은 ‘숙’과의 재회를 위한 목적 속에서 순환한다. 애초에 죽은 인물로 등장하는 이 사람에게 표정이란 없다. 그는 장소와 인물들을 건너 뛰어가며, 여러 사람의 인생을 사는 ‘얼굴 없는 화자’이며, ‘A이면서 A가 아닌’자이다. 이와 같은 서술자의 꿈 속에서는 그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떤 기시감 속에서 서술된다. 독고민이 사랑한 ‘최초의 여자’의 얼굴처럼 ‘왼쪽 뺨에 까만 점’을 가진 여성이 9명 등장하고, 말 없는 ‘사팔뜨기’ 여성이 2번, ‘빨간 넥타이’를 찬 남성이 최소한 2번 등장한다. 무엇보다 ‘독고민’의 삶은 ‘김용길’ 박사의 삶과 겹쳐지고, ‘간호부장’의 죽은 아들의 얼굴과 겹친다. 여기서 김용길 박사는 「라울전」에서 나타난 바 있는, ‘보지 않고 믿는 것’과 ‘보아야 믿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토끼, 말, 코끼리의 우화 속에서 현대 주체 분열의 현상을 발견해내고, 그것이 현대사회에 와서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재현되는 것에 대해서, “처음부터 가라앉지 않도록 뜰 주머니를 주고, 분열하지 않도록 코르셋을 주”어 해결하려는 ‘도마의 형제’로 묘사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비동일성의 사유를 밀어붙여 보자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독고민’의 존재는 김용길 박사의 페르소나이기도 하면서 그 비동일성을 재현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개체로 존재하되 개체가 아닌 자, 인류의 기억의 두께가 잠재되어 있는 자로서 독고민은 그 자체로 구원을 예비하기 위한 존재로 그려지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흔히 ‘5.16에 대한 소설적 대응’이라고 설명되어 온 󰡔구운몽󰡕에서 최인훈이 구상했던 것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혁명군과 정부군의 대립 속에서 쫒기는 독고민은 혁명의 가능성의 조건이자, 혁명의 공통 기억을 재현하는 자이다. 결단에의 요구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이 인물은 끝내 이렇다 할 말을 하지는 않지만, 고고학 입문 필름을 보고 나와 크리스마스 거리를 걷는 연인에게까지 이어지는 ‘사랑’의 추구자라는 면에서, 저 황폐성과 무질서성으로 가득 찬 역사의 증거로 여겨지는 그는, 혁명의 실패 이후에도 이어지는 공통감각을 드러내는 존재로 나타나 있는 것은 아닌가. 
 

 

 

그 어느 때보다도 소설을 많이 읽고 있다. 그 대신 읽지 못하는 책도 늘어난다. 아이디어를 내고, 구조를 찾아, 문제를 조직한 후, 답을 내는 과정은 여전히 버겁다. 소설 분석에는 '이 쯤이면...'이 없다. 계속 부족하고, 그런한에서 말해져야 할 것들은 많지만, 그 모든 것을 기억해내고 배치하는 것은 참으로 지난한 작업이 아닌가. 어쨋든 써야한다. 폭풍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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