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통신

 

1. 학교에 갈까말까, 밍기적밍기적 거리다가 주말은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덕분에 KTX 예매, 신용카드 개통, 아버지 스마트폰의 어플 추가와 같은 사소한 일들을 처리했다. 소요된 시간은 대략 1시간 남짓. 나머지 시간은 자고, 먹고, 보다가, 자고, 자고, 자고..가 반복. 당연한 일이지만 책은 아주 멀리했다. 집에 있으면 왠지 그렇게 된다.

 

2. 한동안 끊었던 영화를 몇 편 봤다. TV를 보고, 게임을 했다.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세포들이 꿈틀대고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럴리가 있겠는가. 언제든 2~3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 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두려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이 기억하는 관성화된 행동을 이성이 이기진 못한다.

 

3. 1. 혹성탈출(2011), 2. 마셰티(2010), 3. 컨테이젼(2011). 테크놀로지와 문명 속의 불안, 코스모폴리스 자연화 혹은 월경(越境)의 일상화에 따른 전지구적 공포라는 측면에서 1과 3이 묶이고, 드림팀을 데려다가 재미못봤다는 점에서 2와 3이 묶인다. (하지만 그 쯤은 감독도 배우도 알고있지 않았을까? 오히려 말하는 로봇들의 지구수호전이나 목소리 빼곤 모든 것을 가지고 있고 할 수 있는 괴/동물, 말 잘듣는 버추얼 침팬지들의 습격이 ‘돈’이 되는 헐..리우드가 아닌가) 어쨌든 연관없는 세 영화를 보다보니 드는 생각은 이런 것이다. 현대인의 공포(의 스펙터클화)는 절멸(1, 3)에 대한 상상으로 나타나거나, 계급/인종/자본적(2, 3) 차이의 인식(cognition)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 절멸에 대한 공포는 전지구적인 것이지만 멸의 선후순위나 위생권력의 편중성은 그 공포 속에서 보다 선명해진다(3). 테크네 묵시록과 어설픈 생태주의, 혹은 문명의 원환구조(1). 제국의 구조와 정치적 복마전을 주변부(B급영화, 멕시코, 국경)에서 바라보기(2). 그런면에서 한국의 국경 블록버스터(예컨대 놈놈놈, 황해, 풍산개 등)는 어디까지 말하고/말할수 있는가. 해묵은 그래서 어려운(장률의 영화를 봐야겠다).

 

3-1. 세 영화중 단연 최고는 마셰티. 1. 현실/영화를 상호지시하는 ‘대인배’ 린제이 로한에게 박수를. 2. 일본도를 든 스티븐 시걸의 ‘할복’과 마체테를 든 대니 트레조의 ‘마술적 리얼리즘’. 3. 어째서 대다수의 영화에서 목사님은 등장하질 않는겐가.

 

 

 

토정비결

 

토정비결 어플이 공짜로 나왔길래 받아서 (난생처음)운세를 봤다. 일년신수, 월별운, 연애/건강운, 직장/소망운 순으로 '자세(?)'하게 자기 운명을 들여다 볼 수 있는데, 다른건 그렇다치고 '건강운'이 가관이다. 이렇게 되어있다.

 

무절제한 생활과 무리로 인해 건강이 나빠질 수 있으나 매사 자중하고 꾸준히 운동을 하면 매우 건강하게 한 해를 보내게 됩니다.

음주나 철야작업등으로 인하여 건강을 해칠 수 있으니 절대 무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환절기에는 기관지를 조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런 운세라면야 나도 백가지는 만들 수 있겠다. 가령,

 

무절제한 흡연으로 인해 건강이 나빠질 수 있으나, 매사 신중히 생각하여 흡연하고 꾸준히 조깅을 하면 건강하게 한 해를 보내게 됩니다. 끊는다면 더할나위 없겠습니다.

책을 너무 많이 보면 시력이 나빠질 수 있으니 적당히 보아야 합니다.

겨울철에는 감기를 조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식사는 삼시세끼 챙겨먹는 것이 좋겠습니다.

등등

 

매일 엄마가 하는말이 아닌가.

그나저나 언제부터 토정비결이 '환절기', '재태크', '직장이동', '입시' 등을 예측해 주었는지 궁금하긴 하다.

본래 4언시구(四言詩句)로 자구를 해석하여 괘를 판단하는 것이 <토정비결>의 묘미(?)일텐데,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해줘서야 맛도, 신뢰도 떨어진다.

(여기다 들이대긴 좀 이상하긴 하지만)아감벤에 따르면, 점성술, 연금술 등은 '경험' 이 축적된 결과물이다. 여기서 '경험'은 신적 지식과 인간적 지식 사이의 차이를 가르는 '경계에 대한 경험'이다. 헌데 근대과학+테크놀로지+인간언어의 복합체인 이 '어플'은 신적 지식과 인간적 지식의 구분을 알지 못한 채, 양자를 인간의 지식안으로 구겨넣는다. 이래서는 신-자연의 '지식'를 '경험'한다는 토정비결의 근원적 의도(?)을 (공짜)어플에서 찾기란 꽤나 난망한 일이 아닐수 없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이냐?'

라고 묻는다면 '받아서 해보라'라고 대답할 도리밖에 없다.

 

올해 내 운세는 전반적으로다가 좋댄다...잠룡득주 변화무궁이래나 뭐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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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씨가 떠나고, 한나라당에서는 '20대 하버드 출신' 이준석씨가 뜨는 모양이다. 두 사람의 연관은 찾을래야 찾아 볼 수도 없고, 내가 알고있는 정보래봐야 기사 한 두편이지만, (정치, 대학, 국가, 대중에 대한 인식 측면에서)여러모로 흥미로운 비교대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나 자신도 양자 사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김근태가 ‘민주화-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1967년 김근태는 대통령 선거 부정에 항의하는 교내 시위에 참가했다가 군에 강제로 끌려가면서”라고 한다. 대학교 3학년 때였다. 이준석은 “2004년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실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다 한다. 7년 전이니까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이 후 김근태는 강제징집-수배-노동운동-고문-인권운동-구속-(비주류)제도권 정치 입문의 길을 걸었다. 반면 이준석은 “고등학교 때만 해도 정치도 참 재미있을 것 같은 분야였는데 국회에서 인턴 할 때 보좌관 한 명이 ‘나중에 뭘 해도 생계형 정치인은 되면 안 돼’ 라고 말했다”면서 “그 때 들은 말 덕분에 정치에는 관심을 싹 끊었다”한다. 이준석은 이후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하버드-무료 과외 봉사단체-창업-(주류)제도권 정치 입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두 사람의 삶 중에서, 아마, 내가 이해가능한 것은 아무래도 이준석 쪽일 것 같다. 서울과학고(!)나, 하버드(!!!)나, 무료(?) 과외나, 창업(!!!!!), 의원(!!!!!!!) 따위를 삶의 지평안에서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어도 그렇다. 오히려 국가내란 음모 사건이 되는 학생운동, 수배-도망, “알몸으로 바닥을 기며 살려달라고 빌던” 대공분실의 분위기, 결사체 조직 등등등의 삶의 궤적은 도무지 상상도 되지 않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부모 세대의 가난-자수성가 신화(‘해봐서 아는데’(?)), (잘 되지도 않는)영어공부(미국인-외국인 위화감(?)), 정치 불신(돈되는 정치(?)) 같은 것은 20대 상당수의 공통감각 같은게 아닐까. 그리고, 되려 그런면에서, 이준석의 ‘삶’은 전혀 새롭지도, 신선하지도, 부럽지도 않은 것이 아닐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의 발언들이 충분히 이해가능하고, 수긍할만한 것이라는 건 아니다. 또한 트위터의 언급이 정치적 성향이나 인식구조, 삶의 궤적을 충분히 설명해주는 것도 아니다.)

 

아마, 이준석의 등장이 한나라당의 쇄신을 가져다주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누가와도 마찬가지다.) 생각이나 정치적 입장이 ‘26살짜리’ 따위라서가 아니라, 그의 삶이 아무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재미’로서의 정치와 ‘생계형 정치인’에 대한 혐오(?), 가치중립으로서의 과학과 학문에는 결단-행동-정치의 가능성은 이미 차단되어 있다. 성공신화, 봉사활동, CEO 경험이 그것을 보충해주지도 않는다. (‘나꼼수’=민간인 발언은 꽤 영리했지만.)

 

저 50~70년대의, 아니 훨씬 더 오래된 계보들을 숨기고 있을, 소위 ‘민주화 투사’들이 이 땅을 뜨고 있다. 시간이, 투사들의 역사보다 긴 ‘그것’이, 그렇게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투사’의 칭호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면에서 이 정부의 근시안과 무식은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 오로지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 김근태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이라 한다.

 

이리저리 마지막 부분에 대해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지만, 제대로 마무리가 되질 않는다. 자기반성, 분노와 비난, 다짐과 희망 모두 마땅치 않다. 이렇게 하자.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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