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시인 저자행사에 다녀왔다. 예상했던 것보다 덜 장엄했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제법 유쾌한 구석까지 있었다. 분쟁 지역을 떠돌다 온 시인의 이력이 무색하게도. 물론 그 이야기가 가벼웠던 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지만 '허각'도 아닌데 보러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시인의 말과, 이 시집 정말 좋은데... 직접 말로 할 수도 없고... 유의 위트 사이사이 날 선 분노와 고독한 의지 같은... 날카로운 말이 있어, 자꾸 마음이 불편해졌다.

 

  생활은 빠르고, 편리하다. 휴대 전화를 이용해 시인의 인터뷰 기사를 검색해 읽고, 트위터에 실시간으로 글을 남기며 시인과 독자의 대화를 들었다. 그러면서 '시집답지 않게' 1면부터 한 글자씩 읽어보았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은 시집이었다. 이 시집은 확실히 서사였다.

 

저기요, 한번 만져봐도 되나요 
스윽슥 손가락 하나로 세계의 속옷이 벗겨지고 
나는 지금 광대한 지구의 달리는 한 점에 앉아 
국경 너머 누구와도 한순간에 접속되어 
우린 팔로우 팔로우 빛의 파랑새로 지저귀고 
내 작은 손바닥 안에 거대한 지구마을이 들어선다 (중략) 

나는 눈을 감고 스윽슥 
아이폰 모니터를 벗기고 들어간다 
공돌이로 살아온 내 기억의 속살을 
아이폰을 생산하는 수많은 하청 노동 현장을   (중략)

우리 시대의 영웅이자 구루인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의 뒷면에서  
보이지 않는 살인자들의 세계화를 본다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 아이폰의 뒷면 中>

 

그러다 발견한 이 시에 순간 아팠다. 박노해의 시를 읽고 아프다면 아직 살아있는 것이라던가. 이 시에 대한 생각은 곧 김점용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내가 살아남은 데도 다 이유가 있다. 이 문장은 2010년의 펀치라인이 될 것이다. 이토록 절망적인 통찰을 적어도 올해엔 경험한 적이 없는 듯하다. 촌각을 다투는 업무에도 불구, 잠시 숨을 멈추고 입술을 깨물어야 했을 정도로 막막하고 미안하고 서러웠다. 소설과 밥벌이의 현장은 분명 백만 광년 쯤은 떨어져 있음에도... '숨을 멈추고', '입술을 깨물고', '무릎이 꺾이는 듯한 충격' 등의 소설적 형용이 얼마나 쑥스러운지... 파도 같은 일렁임이 현실이 되어 다가왔을 때, 어찌나 당혹스럽던지... 웹상에서 검색되는 글과는 시어 일부가 달라졌기에, 전문을 적는다.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따뜻한 절벽, 한 둥지 안에 독수리 형제가 나란히 있다. 부모가 먹잇감인 바위너구리를 들고 나타나자 형은 날카로운 부리로 동생의 살을 쪼아 헤집어 먹이를 쳐다보지도 못하게 한다. 그렇게 하루나 이틀이 지나는 사이 동생은 서서히 죽어간다. 부화한 지 3일 만에 동생이 죽기까지 형은 부리로 1,569번을 쪼았다. 

   뱀상어는 몸속에 알을 낳는다. 그 안에서 부화한 새끼들은 자유롭게 헤엄치며 서로를 잡아먹는다. 새끼들은 이빨이 자라고 몸집이 커진다. 이들은 더 작은 새끼들을 잡아먹는다. 최후로 한 마리가 남을 때까지 이 과정은 반복된다. 그사이 어미는 1만 7천여 개의 알을 낳아 계속해서 먹이를 제공한다. 

   내가 살아남은 데도 다 이유가 있다. 

<김점용 / 메롱메롱 은주 / 생명이 밉다 전문>

  

 

  

  사적이고 소소하고 구체적이고 감정적인 영역에서, 김애란은 특히 빛을 발한다. 전 지구적, 전 생태계적으로 뻗어가는 미안함을 개인적 영역으로 끌어오기 위해 김애란의 소설을 인용해본다. 아직 소설집이 되어 나오지 않은 이 소설에서, 짝사랑의 아픔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슬픔으로 화한다.  

   나의 '생활'을 발견해줬던 선배의 남루한 현실이 나를 비참하게 한다. 아주 어렸을 적 기억속의 남자애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듣고 고향으로 향하려던 나는, 고향에 가는 대신 여름의 뜨거움에 몸을 맡기고 어둡고 습한 나의 자취방에서 어린 시절의 그 남자애를 떠올린다. 그 애는 물에 빠진 나를 구해주었다. 그 순간 발휘되었던 '나'의 폭력성을 나는 기억한다.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그 아찔함에 그 애의 손목이 다 긁혀 피가 나도록 꽉 붙잡았던 나의 우악스러움. 남자와 여자에 대한 얘기를 하며 그 애의 목소리는 얼마나 높고 어수선했는지. '나'를 구했다는 사실에 조금은 우쭐해하며 열띤 목소리로 수다를 떠는 그 애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 마음도,그 아픔도. 때론 이렇게, 풋풋하고 오래된 마음마저도 상대방에선 그저 미안하기만 한 일이 되지 않는지. 아! 얼마나 아팠을까, 그녀는 그제야 생각한다. 이십 여 년도 훌쩍 지나서... 

 

 갑자기 목울대에 뜨거운 것이 치밀어올랐다. 사막에서 만난 폭우처럼 난데없는 감정이었다. 그처럼 쉬운 생각을 그동안 전혀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당혹스러웠다. 그러자 불현듯, 내가 살아있어, 혹은 사는 동안, 어디선가 누군가 많이 아팠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곳에서, 내가 아는, 혹은 모르는 누군가 많이 아팠을 거라고. 그리고 견뎠을 거라고.
  

<문학동네 59호 / 김애란 / 너의 여름은 어떠니 中>

  

 

  S전자의 처녀들에 관한 박노해의 시를 읽고, S사 노트북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수많은 고유명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소비하게 될 것이다. 최소한의 죄책감도 없이. 내 '컨비니언트'한 삶을 위해 누군가는 불합리한 노동을 감내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내 쾌적한 심리를 위해 누군가는 여전히 아파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십년 후 깨달을 수 있을까. 그때 그 사람이 얼마나 아팠을지. 불현듯. 무심코. 갑작스레.  

  김훈은 인간은 치사하고 비루하고 던적스럽다고 했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 던적스러움을 기억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미안했다는 사실까지는 인지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가슴이 아닌 머리로라도. 처절하지 않은 지루한 생활인인 나, 처절해질 의지조차 없는 평온한 생활인인 나는, 그대만은 사라지지 말라는 시를 암송하며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만 '투사' 시인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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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0-11-03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 살아남은데는 다 이유가 있고, 그러니 그대는 사라지지 말아야 하는데.

참 좋은 시예요. 잘 읽었습니다.

한국소설/시/예술MD 2010-11-04 10:58   좋아요 0 | URL
아... 저의 비관돋는 글을 명리플로 순식간에 긍정적으로 치환해주시네요. 세상엔 좋은 글이 참 많네요. 매일 반성은 하는데, 행동의 개선은 없는 요즈음입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