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알아야 할 것을 모두 유치원에서 모두 배운다. 가장 중요한 대원칙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거짓말하지 마라." 그러나 아는 대로 행할 수 있는 군자가 세상에 어디 있으랴. 그래서 우리는 거짓말을 하고 산다. 내가 지금 하는 말은 정말 거짓말이 아니라는 거짓말을 추가하며.
픽션이란 본디 거짓말이다. 그러나 소설가의 거짓말에 대해선 아무도 책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거짓말이 더 능청스러울수록 독자는 찬사를 보낸다. 태곳적부터 간직해 온, 거짓말을 하고 싶은 음습한 욕망을 충족시키면서도, 동시에 fame and fortune을 모두 얻을 수 있는 소설가란 직업은 얼마나 호사스러운가. 이제 첫 소설집을 발표한 <퀴르발 남작의 성>의 작가 최제훈은 그 호사를 몹시도 즐거이 누리고 있는 듯하다.
눙치듯 건네는 이야기는 듣는 사람의 상식을 교란한다. 표제작은 <퀴르발 남작의 성>이라는 영화의 카니발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짧은 컷으로 교차시킨다. 이야기를 이야기가 감싼다.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영화는 몰락한 여배우의 영웅담이 되기도 하고, 어느 강의실의 페미니즘 교재가 되기도 하며, 매카시즘에 반하는 고도의 메타포가 되기도 한다. 모두 거짓말이다. 그러나 그 거짓말을 너무도 능청스럽고 치밀하다.
문장 너머의 작가는 숨가쁘지도 않을까. 작가의 거짓말은 점차 대담해진다. 아이를 잡아먹고 살며 젊음을 유지한다는 남작 얘기를 하다, 창조자에 대응하는 탐정 셜록홈즈 이야기를 건네다 다시 중세 마녀 사냥에서 프랑켄슈타인을 거쳐 자신이 벌여놓은 모든 거짓말을 한 자리에 모아 자신의 거짓말을 충돌시킨다. 그야말로 거짓말의 향연. 유치원 이후, 하나의 관념으로 굳어졌던 "거짓말 하지 마라" 그 금기를 넘어선 이야기는 점차 신명이 난다. 이쯤 되면 거짓과 현실은 더 이상 구분이 되지 않는다. 다만 속을 뿐이다. 아주 오래된 금기를 넘어선, 거짓말의 세계는 그만큼 환상적이니까.
자신이 만든 환상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침몰한 도일 경과 자신을 매혹시킬 현실에 목말라 환각제에 의지한 나. 이 양극단의 고뇌는 어딘가 닮아 있지 않나? (중략) 나의 사소한 재주는 역시 사물을 관찰하고 추리하는 것뿐이지. 덕분에 나는 지금 인간의 상상력이 감히 미치지 못하는 속도로 무한히 재창조되는 현실 속에서 다시금 자유를 느낀다네.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 中
소설을 읽으며 내내 이장욱의 단편집을 떠올렸다. 잿빛으로 점철된 음습하고 능청스러운 거짓말의 기록. 어쩐지 기분 나쁜, 음습한 누군가가 털어놓는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약간의 구취와 해묵은 옷에서 나는 탈취제 냄새가 동반된 쾨쾨한 냄새와 함께, 지난 계절의 곰팡내와 죽은 세포가 들러붙은, 각질이 일어난 입술을 움직여서, 억양 없이, 별스럽지 않다는 듯한 말투로, 자그만 목소리로, 작은 눈을 슬쩍 치켜뜨며, 속사포처럼. 우아한 여동기의 임신과 한 가정의 몰락, 50대 아줌마와의 성경험을 털어놓던. 그의 이야기를 믿고 싶지 않지만, 마력처럼 끌리는 그의 목소리. 거짓말이라 웃어 넘기고 싶지만 어쩐지 돌아서, 홀로 현실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되는 목소리. 이야기란 본디 이토록 음습한 것. 그래서 더욱 탐독하게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