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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1 -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
한비야 지음 / 금토 / 1996년 6월
평점 :
절판
입문계 고등학교 대다수의 학생들이 수능을 본다. 19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이 때론 그 한 순간으로 결정이 난다고 믿기도 할 만큼, 수능과 대학은 큰 짐이고 부푼 기대였다.
그리고, 수능을 보고 나서는 잘봤든 못봤든 어느 샌가 제자리를 찾아서는 갑자기 찾아오는 여유에 기뻐하기도 하고 허무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 때, 수능이라는 모든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큰 일을 치르고 난 후, 잠시동안의 여유라는 시간동안에 나는 그녀를 만났다. 학교에서 주선한 특별 강좌에서 나는 '오지 탐함가'라는 거창한 이름의 '한비야'라는 독특한 사람을 만났다.
몇 년전의 이 일이 아직도 뚜렷이 기억에 남는 것은, 그 자리에서 들었던 말때문이었다. 그 분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그것이 몇몇 친구들이 말했던 것처럼 자만이나 오만으로 보일 지라도, 우리들에게 말했다.
"내가 책을 쓰고, TV에서 스포트 라이트를 받으며, 유명세를 떨칠 수 있어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내가 행복하고 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버려도 좋을 수 있는 단 한가지의 일만 찾는다면 성공하는 것도, 행복한 것도 모두 가능합니다."
전율이 느껴질만큼, 그 용기있고 대담한 발언이 부러웠다. 알고 있는 것과 아는 데로 사는 것은 차이가 있다. 용기와 성실로 그 길을 닦는다 하더라도 때론 발목을 잡는 일들이 있는 법인데, 그 약간의 운마저 놓치지 않고 붙잡았던 한비야씨의 여행기는 나에게 부러움이었다.
중동이든, 러시아든, 아프리카든, 백인이건, 흑인이건, 황인종이건.. 그녀가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고 느낄 순 없었지만 적어도 모든 사람을 '일대일로 만나려고'했던 것만은 분명하다고 느낀다. 자질구레한 만남들.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 냄새를 맡으며, 그 사람들 생활에 동참하며, 때로는 견딜 수 없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섞이길 원했던 한비야씨는. 분명 '여행가'로서의 첫째 조건이 갖추어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평등하며, 사람사는 곳은 어디든 똑같다'라는 말은 그저 교과서속에 있는 말이라고 믿고 사는 사람은 비단 나뿐이 아닐 것이다. 옳든, 그르든 감정의 연결 고리는 '좋고 싫고'를 어김없이 가려내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산속에서 한 가족과 살을 부비며 그들에게 애정을 느꼈던 한비야씨의 마음이 정말 예쁘다고 생각한다.
위험한 여행지를 오히려 더 선호하고, 그 말에 자신의 여행의지를 꺾지 않았던 모습도 '안전하게 바라 볼 수 있는 입장에 놓인 나'에게는 '여행의 낭만'을 느끼게 한다. 그로 인해, 그 뒤의 길을 가야 하는 다른 사람에게 하나의 길을 알려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고나 할까?
이 책은, 서점에 즐비하게 꽂힌 여행책 중에 하나다.
유명해질대로 유명해져버린,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것도 벌써 오래전인,
이제 젊지만은 않은 하지만 그 마음만은 패기만은 아직도 자라고 있는 한 여행가의 '사람 이야기'다. 여행정보지와 가볼 곳과 맛있는 음식들을 코스별로 소개해서 우리를 그 곳으로 이끄는 것이 목적이 아닌, 자신이 만난 사람들과의 경험담을 적어놓은 일기장같다.
개인의 이야기이므로, 동감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수도, 마음에 들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아직도 이 분의 '용기'만은 존중하고 싶다.
목숨을 걸 만한 일을 찾았다고 말하는, 한 사람의 당당한 목소리는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다. 그 부러움을 통해 난 잠시 나의 장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나의 미래에 대해 꿈꿔보는 것도, 내일에 대해 준비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에베레스트 산에 오른 어떤 사람이 말했단다. 첫 등정에서 실패하고 다시 오르려는 그를 보며 의아하게 보던 사람들은 실해할 것이 두렵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말했다.
"두렵지 않습니다. 에베레스트 산은 이미 다 자랐지만, 내 꿈은 아직도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꿈은 아름답다. 그리고, 누구나 키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