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1 (양장) - 심장을 적출하는 나가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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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라자를 읽은 지도 벌써 7년이 되어가는가? 처음 드래곤 라자를 접했을때, 당시는 판타지 소설이 뭔지도 몰랐기에 그 새로운 세계의 무한한 상상력에 놀랐었다.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어가 마지막 장을 덮을 때에는 허망함이 느껴질 정도로 나는 그 책과 함께 더운 여름을 보냈었다.

독특한 유머와 입심, 유려한 이야기와 인물들의 매력. 이런 것들과 더불어 이영도 작가의 작품의 중심에는 늘 '인간'이 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든, 아니든 그가 만들어낸 세계 속에서 우리는 다른 모습으로 또는 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해버리곤 한다.

이번 작품은 작품보다는 평을 먼저 접한 작품이다. 워낙 작가가 유명하다 보니 자연스레 여기저기서 평을 접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귀를 닫고 책을 읽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작가라면 모를까, 난 내가 알고 있는 작가에 대한 세간의 평을 쉽게 받아 들이지는 않는다. 그것이 유명한 작가라면 더욱 그렇다. 그에 대한 호의와 비난에 대한 주관으로 써내려간 평이 많기 때문이라고 해도 좋고 단순히 책 읽기 전에 기분을 깨고 싶지 않아서라고 해도 좋다.

어쨌든, 아무 생각없이 하지만 기대를 가지고 시작한 책 읽기의 마지막 여행의 끝자락에 난 이 글을 쓰고 있다.

상상을 하면 오히려 마음이 불편해지는 네 종족들의 겉모습이나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얽혀있는 선 악의 모호함, 죽음의 방관을 놓칠 수 없는 재미의 하나라고 본다. 난쟁이와 호빗, 요정과 오크 족들만 상대하던 우리들에게 도깨비와 레콘, 나가족의 등장은 말 그래도 '신세계'이지 않은가? 혹시 또 모르지..시간을 뛰어 넘어 미국의 어떤 작가가 도깨비에 대해서 쓰고 있을지 말이다.

아무런 배경 설명없이 3m의 거대한 몸집에 닭 벼슬을 흔들어 대고 있는 레콘이나 딱정 벌레를 타고 다니며 마음대로 불을 휘두르는 도깨비라든가,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운 미성을 가진 나가에 대한 생각은 온전히 나의 상상만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은 지루함을 만들 틈을 주지 않는다.

한 장, 한 장 장식하고 있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책의 한 구절을 따온' 글귀들은 그 책을 읽고 싶게 만들만큼 흥미로우며.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인물들이 확고한 개성을 만들어 가며 엄청난 사건들을 벌이는 것을 보는 것은 '짜맞추기'의 재미를 던져준다.

재미있었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분명히 이영도라는 작가의 입담은 드래곤 라자에서 보여준 것처럼 아직은 건재하다. 다소 식상한 농담을 보여주었던 전작의 모습을 다 벗어버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난 역시나 그의 팬인가 보다. 무척 즐겁게 웃어버리는 내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말이다.

드래곤 라자에서처럼 쉽게 '인간'을 이야기하며 철학적이라는 평을 들을 만큼의 대화들을 엿볼 수는 없지만, 이 책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그 만큼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것이 죽고 죽이며 생존을 쟁취하려는 정당성의 유무에서 일 수도 있고, 한 사람의 가치관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서 찾을 수도 있겠고, 이질적인 사회를 보면서 찾게 되는 '내가 가진 문화의 우월함'의 진실. 등이 그럴 것이다.

나는, 여기 한 남자, 사람이라 부르기엔 조금 곤란하고 다른 종족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사람 같은 한 남자를 보고 깊은 절망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것이 절망인지 아닌지, 다 알 순 없지만 -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정리조차 안되지만- 모순속에서 살고 있는 그의 모습은 절망이고 아픔이다.

책을 읽다보면 유달리 마음을 끄는 사람이란게 있는 법이고, 여기 우울하기 그지 없지만 잔인하기 이룰 말 할수 없지만, 때론 그 관대함과 배려에 놀라버리기도 하고 박식함과 용맹함이 경이롭기 까지 하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닥까지 떨어져 버린 절망을 안고 사는 케이건이란 한 남자를 나는, 마음 깊이 느낀다.

이 책을 덮을 때까지 계속될 이 절망의 파장이, 나는 이 감정의 움직임이 작가의 두 번째 브랜드 가치라고 생각한다.

탁월한 이야기꾼, 그리고 감정의 전달자.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지만, 당분간의 그의 이름으로 또 다른 책이 출간된다면 나는 역시나 한 번쯤은 그 책을 살피고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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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를 꿈꾸는 4 2004-03-21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체가 바뀐건지, 아니면 서평을 쓰는 책들에 영향을 받은건지는 몰라도 글이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다고 할까...? 예전의 부드러운 글의 모습이 조금씩 사라지는듯 해보인다. 뭐 나쁘다는 뜻은 아니야. 이나름대로 읽을 맛이 나니깐.. 점점 혜진양의 문체가 보이는듯 해서 코멘트를 남긴다. 그리고 오랜만에 찾아왔는데도 꾸준히 쓰고 있는 걸보니 상품권이 생기지 않았나요?? 나 책 한권만 사줘~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