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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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택가. 주택이 밀집된 지역을 부르는 말. 개발의 흔적이 지나간 우리 동네는 주택가다. 주황색 벽돌과 은색 창틀, 혹은 흰색 벽돌에 검정 창틀을 가진 2,3층 다세대 주택들이 마주보고 서있는 좁은 골목을 가진 이 곳에서 나는 살고 있다.

이 곳을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친다. 하지만, 나에게 ‘아침 햇살이 들 때, 가장 빛이 잘 드는 집은 어디냐’고 묻는 다면 대답할 수 없다. ‘뒷산에서 보았을 때, 가장 보기 좋은 집은 어느 집이더냐’고 물어도 대답할 수 없다. 내게 있어, 나의 앞집과 옆집들은 ‘지나치는 곳’일 뿐 ‘감상할 만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멋진 건축물?

그런 것은 문화유산 목록에서나 찾을 수 있는 것 아닌가? 노트르담, 성가족 성당, 베르사이유 궁전, 런던 브릿지..이런 것을 보는 것 외에 우리 일상에서도 우리가 ‘볼 수 있는’ 건축이 있다는 말인가?

이것이 나만이 가진 무지는 아닐 것이다. ‘보는 건축’과 ‘사는 건물’은 엄연히 분리되어 살아온 ‘건축 무지자’였던 나는 그저, 유명한 예쁜 건축물이나 구경하자는 맘으로 이 책을 펼쳤다.


에? 점, 선, 면, 공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 기초적인 개념들을 이해하는 것이 이 책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다. 그리고, 그 개념들에 대해서 받아들이는 순간의 흥미로움이 나의 책 읽기의 시작이었다. 흔히 알고 있는, 아니 알고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이런 개념들은 ‘건축’이라는 한정된 범위 안에서 새롭게 옷을 입고 우리가 봐야 할 곳을 차분히 짚어나가세 도움을 준다. 아마 벽에 걸린 그림 액자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저 벽의 저 위치에 저 그림이 걸려도 좋은 걸까?’라며, 아직 채 한 권도 읽지 못한 채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이다.

이렇게 시작된 건축의 이해는, 건축을 구성하는 재료부터 주변 환경과 요구되어지는 조건과의 어울림, 더 나아가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는 도시까지 아우르며 조목조목 파고 있다. 이 짜임새 있는 구성과 호흡은 ‘초보자’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내 걸음걸이에 적당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더불어 한 계단씩 올라가는 기분을 맛보게 한다.

 

물론 조금 가파른 계단도 있었음은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마스터 하고 말거야란 욕심은 조금 미뤄두는 것이 책을 더 즐겁게 읽는 방법이다. 어떤 종류의 책이건 그 책에서 단 한 가지의 즐거움을 찾아 내지 못하겠다면 읽지 않는 편이 좋다. 삶의 흔적을 돌아보는 기쁨도 좋고, 앎의 흥분을 느끼는 기쁨도 좋고, 감정의 고리를 찾아내는 기쁨도 좋고, 혹은 어렵지만 지식에의 사투에서 비롯되는 기쁨도 좋다. 단, 지루함만을 반복시키는 시간만은 피하는 것이 나의 책읽기의 지론이다. 그런 면에서 인문 서적이란 거창한 이름의 이 책은 2004년 11월의 한 가지 즐거움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아직도 '저 선물은 멋있는 건가요?'라고 물을 수 밖에 없는 건축의 초보자인 내가 얼마나 변했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것을 10초라고 대답하겠다.
10초 동안 건축물 앞에 멈춰서있게 된 나의 발과 나의 눈이 이 책이 나에게 가져다 준 변화라고 말이다. 가을의 진한 풍경이 모두 사라진 스산한 겨울, 도시의 흉물로만 불린 높다란 건물 앞에서 자연스레 숨이 가빠오는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그런 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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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
웬디 베케트 지음, 김현우 옮김, 이주헌 감수 / 예담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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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목적없이 길을 걸어다니며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 좋다. 다리가 아프도록 끈질기게 걸어서 가야 할 곳을 향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겨놓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남들 몰래 마시는 새벽 공기도 좋고 한참 햇빛을 머금은 오후도 좋고, 노을빛이 가득한 공기도 좋다. 그렇게 한껏 숨을 쉬면서, 침묵의 즐거움에 빠져보는 것. 그것이 산책이다.

웬디 수녀님은 꽤 유명한 미술 연구가시다. BBC방송국에서 예술에 관한 방송을 맡아서 친숙하게 이름을 떨친 분이시다. 그 친숙함에 끌려 나도 이 책을 골랐다.

아아..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그림을 보는 즐거운 기분을 유지할 수 있도록, 편안한 길동무가 되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읽었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내 바램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미술사라는 것을 펼쳐 본다면, 굉장히 광범위하다. 세계 미술 흐름의 주를 이루고 있는 유럽 미술사 역시 한도 끝도 없으리라. 당신이 알고 있는 화가는? 당신이 좋아하는 그림은? 아마도, 대답의 90%이상은 유럽의 어느 미술가의 이름을 말하지 않을까? 그만큼, 영향력이 큰 유럽 미술의 매력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놓치지 않기란 정말로 어렵고, 그리고 갑갑할것이다.

웬디 수녀님은 가뿐하게 이런 장벽을 넘어섰다.

선택. 한 도시의 미술관에서 두, 세 명의 화가만을 선택한 후, 그 화가의 한, 두 작품만을 골라내는 과감함으로 내가 느끼는 짐을 가뿐하게 덜어내는 센스에 홀가분해 진다.

그림의 도판과 함께 그림을 이야기하는 웬디 수녀의 목소리가 잔잔하고 유쾌하다. "아! 그렇군."이라며 그림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드는 재주와 그림 속에 얽혀져 있는 사회 상황이나 화가의 심리상태를 전달받을 때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림이 가진 빛깔이나 완벽한 구도, 아름다운 선들과 멋진 인물들과 배경들을 보는 것은 물론 '눈'이다. 그리고 그 눈을 통해 바라본 그림에 '마음'이 흔들린다. 그 마음이 우리에게 기쁨이나 감탄, 슬픔이나 비통함이라는 감정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고, 그 감정에 흠뻑 취해보는 것은 분명 멋진 경험이다. 하지만, 그림을 단순히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렇게 '읽는' 습관을 갖는다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렇게 읽어주는 목소리가 쉽고 분명하게 중심을 잡아 주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도움이 된다.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다른 책이나 자료로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것은 제목에서 밝히는 것처럼 "산책"이다. 가볍게 그림 속을 걸어다니며 기쁘게 그림을 접하는 것으로 좋은,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한 만족을 주는 이 산책이 나는 즐거웠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큼의 매력을 주진 못하지만,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도판에 기울인 노력이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이 분의 설명이 미술학적으로 얼만큼의 평가를 받고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한 그림 한 그림에 대한 애정을 느낄수는 있다. 그 애정으로 그림에 대한 이해를 해내는 웬디 수녀님의 글은, 내가 앞으로도 쭉 이 분의 글을 찾아 보게 될 거라는 작은 확신을 심어 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미술학의 대가가 되는 시작이 될 거다. 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이 책안에 자리하고 있는 그림들이 너무나 보고 싶어 가슴이 뛸거라고는 말 할 수 있다. 가볍고 기분좋게 뒷표지를 덮을 때까 되면 다시 앞 장을 넘겨보고 싶게 만드는, 그런 책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산책이 상당히 유쾌했다고 밝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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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NANA 11
야자와 아이 지음, 박세라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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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모든 재미있는 것을 말할 때, '사랑 이야기'를 빼놓고 시작할 수 있을까? 소위 '신'이라는 자들의 끊임없는 애정행각이 없는 그리스 신화가 무슨 재미가 있을 것이며, 로미오와 줄리엣이 최고의 비즈니스  관계였다면 이렇게 끊임없이 회자될 수 있을까? ... 당연히 아니다. 사랑에 대한 갈증과 집착, 설렘과 아픔..더이상 다양하기 힘들다 싶을 만큼 많은 감정들이 사랑 하나에 담겨 있다. 그래서, 공식화 시킬 수 없는 이 '사랑에 대한 끌림'은 우리 인간에게 너무나 당연하다.

여기, 두 아가씨가 있다. 'NANA' 일본어로 7이라는 뜻의 행운의 숫자를 이름으로 달고 있는 두 아가씨가 있다. 보기만해도 싱그러운 어린 아가씨둘은 참, 다르다.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 비슷한 아이들이 비슷하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보다는 훨씬 극적이고 또 진부해보인다. 하지만, 감히 말하건대 절대로 진부하지 않다. 아마 중반에 잠시 진부함을 느낄지도 모르지만, 10권을 훌쩍 넘어서서도 여전히 긴장감을 잘 살려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두 나나의 사랑 이야기. 한 눈에 보기에도 굉장한 매력을 가진 나나. 무대에서 그녀만큼 멋진 사람들에 둘러싸여 노래를 부르는 이 매력적인 아가씨의 사랑은 지고지순하고 끈질기며, 외롭다. 한 사람을 향해서 변하지 않는 애정을 보여주고, 그리고 그 만큼 외로움에 웅크리고 있는 이 아이는 안아 주고 싶은 마음이 왈칵 들곤 한다. '..나에게 영웅은, 언제나 너였어.'라는 다른 나나의 독백처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하지만 그 근사함만큼이나 외로움에 묻혀사는 그런 영웅의 모습을 가졌다.

또 한 명의 나나는 '나는 사랑만 있으면 충분해요'라는 순진한 얼굴을 하고서는 끊임없이 사랑의 상대가 바뀌어 버리는 인물. 아...어쩌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더럽혀지지 않는 이상한 여자'라는 또 다른 나나의 표현과 같은 신기한 인물. 전형적인 보호본능의 귀여운 소녀로 보여지는 이 아이는 뒤로 갈 수록, '아...사랑하지 않을 수 없네' 라고 생각해 버리게 된다.

하나의 성격을 가진 사람은 없다. 한 가지의 색만으로 이루어진 사람도 없다. 우리가 전형적으로 치부해 버리고 마는 인물의 캐릭터를 이 작품에서는 조금더 현실적으로 바뀌어 버린다.

사랑하고, 사랑받는다. 사랑하지만, 떠나기도 한다. 내 사랑때문에 다른 사람을 상처입히기도 한다. 사랑때문에 죽을 수 있지만, 사실은 죽지 못한다. 내 모든걸 줄 수 있을 것 같지만, 한 가지도 양보 할 수 없기도 하다. ... 이 것이 사랑이다. 하지만, 조금도 퇴색되지 않은 이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운 사랑인 것이다. 이렇게 그들 주변에서, 그리고 이 두 나나가 그려내는 사랑이야기는 아찔하고 아리다.

사랑. 이 것이 이 만화의 첫 번째 매력이라면 두 번째는? 그것은 사람.

사랑이 만들어내는 재미 못지 않게 사람이 보여주는 즐거움도 꽤 쏠쏠하다. 물론, 만화답게 대단히 근사한 사람들이 넘쳐나고 꿈꿔본 이상향들이 여기저기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러니, 그것이 얼마나 멋진가? 이 인물들이 가진 매력은 물론 작가의 머리속에서 만들어 진 것이지만, 작위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상처'를 '삶'위에 새겨놓은 노력때문일게다. 그냥 툭하고 만들어진 상처가 아니라 삶을 살아내며 새겨진, 그래서 깊거나 혹은 그렇지 않은 상처들이 만화 속 인물을 ' 그 사람'으로 지칭하게 만든다.

음.. 이 두 가지 이유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세련된 연출력이나 혹은 일본의 현재라는 한정된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는 재미를 준다는 걸 보태볼까? 꽤, 소문이 자자한 작가의 그림 솜씨와 현실감을 그냥 마음껏 즐겨보라고 권하고 싶다.

과거에 사랑때문에 아팠거나 행복했다면, 지금 사랑때문에 아프고 행복하다면, 앞으로 사랑때문에 아프고 행복할거라면.. 이런 만화 한 편쯤 어때요? 요즘같이 책이 날 부르는 시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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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 2005-02-12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는 좋은데, 본인이 쓴거 맞나요? 전에 다른데서 본거같은데;

기다림으로 2005-02-14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쓴거 맞습니다. 어디서 보셨는지 기억이 나신다면 알려주세요.
남의 글을 옮겨 써올만큼 배짱은 없는 사람입니다.
 
진주 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양선아 옮김 / 강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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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화폭, 빛을 내는 눈동자, 촉촉한 입술, 신비한 두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깊은 진주의 빛깔까지. 너무나 유명한 이 그림의 소녀는 이제 내게는 '그리트'가 되어서 다가온다. 아버지의 실명으로 집안의 생계를 떠맡게 된 그리하여 하녀가 되어서 화가 베르메르의 화실 청소를 하던, 색감이 풍부하고 감정이 예민한 '그리트'가 되어서 나에게 고개를 돌린다.

손바닥만한 작은 크기부터 목을 뻐근하게 만드는 큰 화폭까지, 그림 속에는 세상이 담겨있다. 한 사람의 인생과 인생을 바꾼 찰나를 잡아내는 눈썰미, 가슴 속에 깊이 들어와 박히는 섬광같은 풍경, 신과 인간의 조우의 웅장함.. 이런 세상들을 엿보는 것은 그림이 가진 큰 매력이다. 보이는 것은 가로, 세로 50cm의 그림에 불과하지만 그 그림의 연장선상에 있을 세상을 발견해 내는 것.  그것은 흔히 말하는 화가의 재능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작품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세상을 찾아 내어 하나의 완전한 삶을 만든 '진주 귀고리 소녀'라는 이 작품은.. 작은 증명사진으로 그 사람의 일생을 파악해버리는 마술같은 작가의 솜씨때문에 나는 한동안 가슴 앓이를 해야 했다.

가슴 앓이. 아마도, 정말 이 말만큼 이 글을 읽은 나의 심정을 대신해 줄 수 있는 말은 없으리라.

고단한 하녀의 삶을 살았던 너. 하지만, 닫혀진 화실에서 베르메르의 물감을 만들면서 그림의 일부를 바로잡던 너. 늘 식사 시중을 들며 음식 냄새가 배었을 너의 앞치마에 어느 샌가 스며 들기 시작한 아마인유의 냄새. 푸줏간 아들인 피터의 핏물어린 손톱을 참는 대신 부모님께 고기를 맛보게 하고, 도둑 누명을 감내하며 귀를 뚫는 아픔을 견뎌내며 하얀 진주 귀고리를 너의 귀에 달아 베르메르 앞에 섰던 너.

그리트의 삶은 분명히 말하건대, 하나가 아니었다. 하얀 모자를 눌러 쓴 현실에서의 그리트의 삶과 노란 천을 두르고 캔버스 앞에 선 그리트는 다르다. 어쩌면, 그리트. 그것은 너에게 잠시 허락된 '예술'에 대한 애정이었을 것이다. 베르메르를 사랑했건, 하지 않았건 그것이 어떻게 결말을 지었던 간에, 나는 그 캔버스 앞에서 베르메르에서 고개를 돌리던 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숨막힐 것 같은 두 사람만의 시간속에서 만들어진 궁극의 예술작품과 뚫어질 듯한 두 사람의 눈맞춤을...어떻게 잊어버릴까? 잊어버릴 수나 있을까?

베르메르라는 화가가 그려놓은 35점의 그림들이 이야기가 되어서, 전경이 되어서, 사람이 되어서 내 앞에 다시 서는 그런 기분을 어떻게 놓칠 수 있을까? 그림을 이야기하는 그리트, 혹은 작가의 시선에는 무한한 애정과 그만큼의 상상력, 그리고 그림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이 묻어난다. '진주 귀고리'가 그리트의 귀에 걸리던 그 아슬아슬한 순간의 짜릿함과 동시에 절묘함이라니! 저 그림에서 진주 귀고리를 손으로 가려보아라. 그렇다면 내가 느낀것 같은 생소함을 그림에서 찾을 것이다. 그 하나의 빛깔이 그림을 완성했고, 동시에 그 순간이 소설을 끝맺음한다.

마지막, 이제는 더이상 캔버스 앞의 그리트가 될 수 없는 삶을 사는 네가 진주 귀고리를 판 동전 중 다섯개의 동전을 움켜쥐는 장면에서 나는 울고 말았다. 그 가슴 뻐근한 애정이.. 나를 울려 버린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작품이다. 미술 작품이 하나의 세상을 보여주는 거라면, 이 작품은 그 세상안으로 나를 끌어 들인다. 발 뺄 수 없는 흡입력과 생생함으로 그림 속의 저 소녀의 시선에서 눈돌릴 수 없는. 그래서, 마지막에 책을 덮을 때 그림속을 걸어나오는 그런 기분. 그 강렬함 앞에서, 나는 그리트 너의 삶에서 빠져나올 때 울어야만 했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그 순간을 맞았을 때 나는 힘겹게 고개를 돌렸고, 그리고 그 때 나와 같은 마음으로 이 쪽을 바라보는 너와 눈이 마주쳤어.

응, 어쩌면 정말 너처럼.. 나도 행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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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1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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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듣기에도 풍성한 이 말을 안고 밖으로 나가보자. 어떤가? 보기만해도 젖어들것 같은 푸른 하늘을 보는 감상은? 어느 시인이 말했던 것처럼 긴 여름을 보내고 피어난 국화꽃의 빛깔은? 나는, 그 앞에서 '아름답구나'라는 탄성을 터트린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너는 아름다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데?'라고 묻는 다면 나는 얼버무릴 것이다.

그냥, 보기 좋은게 아닐까? 균형이 맞고 조화로운 상태를 일컫는 말일까? 호감이 가는 두드러진 모습이 맞지 않을까? ... 이렇게 사전적인 정의를 찾고 나서도, 나는 이 정의에 어긋나는 다른 어떤 것 앞에서도 아름답다는 말을 할 수 있다.

왜? ... 왜, 아름다움을 보는 나의 기준은 이렇게 어지러울까?

그것에 대한 대답과 이제까지의 철학적 논의들이 이 책에 담겨있다. 미학 오디세이라는 제목으로 고대부터 거슬러내려오며 '美'에 대한 당시의 사람들의 시선을 쫓아가는 작가의 방식은 논리적이며, 뚜렷한 중심을 잡아내고 있기 때문에 '철학'에 대해 무지한 나같은 보통 사람들도 주저 없이 이 책을 펼쳐도 좋다.

미와 예술, 이 결속력 강한 두 가지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며 '아름다움'에 대한 사람들의 집요한 탐구를 보여주는 이 책은 우선은, 무척 흥미롭다! 그 예를 일일이 찾는 것은 이 책을 읽게 될 당신의 몫이기 때문에 넘어간다. 아~라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알 수 없는 그 그림을 이해하게하는 기회를 즐기는 것도.. 또는 당시의 사람들의 생각에 '좀 어리석지 않나'라는 후대인 특유의 비판을 보태보는 것도 당신의 몫이다. 그럼, 넌 뭘 쓰고 싶은거냐고 묻는 다면, 그것은 ...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에 대해서 집착하는 것은 왜 일까를 생각해보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다. 1년 동안 학교에서 '미학'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 접했던 얘기들을 간단하게(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해보자면, 이 것이다. '현실에 존재하지않는 이상적인 모습을 구현하는 것이 아름다움이냐, 이미 이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름다움이냐' '예술품에 미를 담아낼 수 있느냐, 없느냐'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를 찾을 수 있느냐, 없느냐. 있다면, 모두가 아름답다고 할 때, 왜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생겨나는 것이냐' 등등의 문제들이다. 이런 문제들이 우습게 보일지 몰라도, 이런 생각들이 '시학'이나 건축술, 우리가 탄성을 터트리는 '모나리자' 그림을 만들어 냈던 물음의 시작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나름대로 미학에 빠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어찌됐든, 나는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은 결국 무엇일까를 이 책을 읽고 곰곰이 생각한다. 친구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름다움은 결국 본능이다" 라는 데는 합의한 우리들. 하지만, 본인은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결국 학습일뿐이다. 그것이 어떤 것에서 오는 학습이든간에' 하지만, 친구는 '아름다움에 끌리는 것이 본능이든,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것도 결국은 본능이다'라는 견해를 내세웠다. 글쎄, 끝은 어떻게 났는지 알 수 없다. 생각해보라, 몇 백년을 연구해 온 많은 철학자들도 한데 모으지 못한 그 견해를 고작 20살을 넘어선 어린 여자둘이 어떻게 결과를 낼 것인가?

몇 가지의 굵직한 줄기들이 인류가 지탱해온 '미'에 대한 강박관념들을 설명해 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처럼 다른 질문들을 찾아가게 하는 안내서가 되게는 도와 줄 것이다. 그리고, 무척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깊게 파고 들지 않아서 일지 몰라도, 나에게 이정도의 이야기들은 꽤나 많은 도움을 줬으니까. 그리고 미술작품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작품을 보는 눈을 키우는 기회가 되주기도 하고 말이다.

철학은 딱딱하다는 생각을 버린다면, 아름다움은 하나라는 편견을 버린다면, 이 책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의 철학의 길은 꽤나 기분좋은 시간을 준다는 것은 약속하고 싶다. 참, 뒤죽박죽 엉켜져버린 나의 리뷰가 이 책을 즐기려는 누군가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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