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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NANA 11
야자와 아이 지음, 박세라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세상 모든 재미있는 것을 말할 때, '사랑 이야기'를 빼놓고 시작할 수 있을까? 소위 '신'이라는 자들의 끊임없는 애정행각이 없는 그리스 신화가 무슨 재미가 있을 것이며, 로미오와 줄리엣이 최고의 비즈니스 관계였다면 이렇게 끊임없이 회자될 수 있을까? ... 당연히 아니다. 사랑에 대한 갈증과 집착, 설렘과 아픔..더이상 다양하기 힘들다 싶을 만큼 많은 감정들이 사랑 하나에 담겨 있다. 그래서, 공식화 시킬 수 없는 이 '사랑에 대한 끌림'은 우리 인간에게 너무나 당연하다.
여기, 두 아가씨가 있다. 'NANA' 일본어로 7이라는 뜻의 행운의 숫자를 이름으로 달고 있는 두 아가씨가 있다. 보기만해도 싱그러운 어린 아가씨둘은 참, 다르다.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 비슷한 아이들이 비슷하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보다는 훨씬 극적이고 또 진부해보인다. 하지만, 감히 말하건대 절대로 진부하지 않다. 아마 중반에 잠시 진부함을 느낄지도 모르지만, 10권을 훌쩍 넘어서서도 여전히 긴장감을 잘 살려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두 나나의 사랑 이야기. 한 눈에 보기에도 굉장한 매력을 가진 나나. 무대에서 그녀만큼 멋진 사람들에 둘러싸여 노래를 부르는 이 매력적인 아가씨의 사랑은 지고지순하고 끈질기며, 외롭다. 한 사람을 향해서 변하지 않는 애정을 보여주고, 그리고 그 만큼 외로움에 웅크리고 있는 이 아이는 안아 주고 싶은 마음이 왈칵 들곤 한다. '..나에게 영웅은, 언제나 너였어.'라는 다른 나나의 독백처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하지만 그 근사함만큼이나 외로움에 묻혀사는 그런 영웅의 모습을 가졌다.
또 한 명의 나나는 '나는 사랑만 있으면 충분해요'라는 순진한 얼굴을 하고서는 끊임없이 사랑의 상대가 바뀌어 버리는 인물. 아...어쩌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더럽혀지지 않는 이상한 여자'라는 또 다른 나나의 표현과 같은 신기한 인물. 전형적인 보호본능의 귀여운 소녀로 보여지는 이 아이는 뒤로 갈 수록, '아...사랑하지 않을 수 없네' 라고 생각해 버리게 된다.
하나의 성격을 가진 사람은 없다. 한 가지의 색만으로 이루어진 사람도 없다. 우리가 전형적으로 치부해 버리고 마는 인물의 캐릭터를 이 작품에서는 조금더 현실적으로 바뀌어 버린다.
사랑하고, 사랑받는다. 사랑하지만, 떠나기도 한다. 내 사랑때문에 다른 사람을 상처입히기도 한다. 사랑때문에 죽을 수 있지만, 사실은 죽지 못한다. 내 모든걸 줄 수 있을 것 같지만, 한 가지도 양보 할 수 없기도 하다. ... 이 것이 사랑이다. 하지만, 조금도 퇴색되지 않은 이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운 사랑인 것이다. 이렇게 그들 주변에서, 그리고 이 두 나나가 그려내는 사랑이야기는 아찔하고 아리다.
사랑. 이 것이 이 만화의 첫 번째 매력이라면 두 번째는? 그것은 사람.
사랑이 만들어내는 재미 못지 않게 사람이 보여주는 즐거움도 꽤 쏠쏠하다. 물론, 만화답게 대단히 근사한 사람들이 넘쳐나고 꿈꿔본 이상향들이 여기저기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러니, 그것이 얼마나 멋진가? 이 인물들이 가진 매력은 물론 작가의 머리속에서 만들어 진 것이지만, 작위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상처'를 '삶'위에 새겨놓은 노력때문일게다. 그냥 툭하고 만들어진 상처가 아니라 삶을 살아내며 새겨진, 그래서 깊거나 혹은 그렇지 않은 상처들이 만화 속 인물을 ' 그 사람'으로 지칭하게 만든다.
음.. 이 두 가지 이유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세련된 연출력이나 혹은 일본의 현재라는 한정된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는 재미를 준다는 걸 보태볼까? 꽤, 소문이 자자한 작가의 그림 솜씨와 현실감을 그냥 마음껏 즐겨보라고 권하고 싶다.
과거에 사랑때문에 아팠거나 행복했다면, 지금 사랑때문에 아프고 행복하다면, 앞으로 사랑때문에 아프고 행복할거라면.. 이런 만화 한 편쯤 어때요? 요즘같이 책이 날 부르는 시간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