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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
웬디 베케트 지음, 김현우 옮김, 이주헌 감수 / 예담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가끔은, 목적없이 길을 걸어다니며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 좋다. 다리가 아프도록 끈질기게 걸어서 가야 할 곳을 향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겨놓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남들 몰래 마시는 새벽 공기도 좋고 한참 햇빛을 머금은 오후도 좋고, 노을빛이 가득한 공기도 좋다. 그렇게 한껏 숨을 쉬면서, 침묵의 즐거움에 빠져보는 것. 그것이 산책이다.
웬디 수녀님은 꽤 유명한 미술 연구가시다. BBC방송국에서 예술에 관한 방송을 맡아서 친숙하게 이름을 떨친 분이시다. 그 친숙함에 끌려 나도 이 책을 골랐다.
아아..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그림을 보는 즐거운 기분을 유지할 수 있도록, 편안한 길동무가 되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읽었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내 바램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미술사라는 것을 펼쳐 본다면, 굉장히 광범위하다. 세계 미술 흐름의 주를 이루고 있는 유럽 미술사 역시 한도 끝도 없으리라. 당신이 알고 있는 화가는? 당신이 좋아하는 그림은? 아마도, 대답의 90%이상은 유럽의 어느 미술가의 이름을 말하지 않을까? 그만큼, 영향력이 큰 유럽 미술의 매력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놓치지 않기란 정말로 어렵고, 그리고 갑갑할것이다.
웬디 수녀님은 가뿐하게 이런 장벽을 넘어섰다.
선택. 한 도시의 미술관에서 두, 세 명의 화가만을 선택한 후, 그 화가의 한, 두 작품만을 골라내는 과감함으로 내가 느끼는 짐을 가뿐하게 덜어내는 센스에 홀가분해 진다.
그림의 도판과 함께 그림을 이야기하는 웬디 수녀의 목소리가 잔잔하고 유쾌하다. "아! 그렇군."이라며 그림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드는 재주와 그림 속에 얽혀져 있는 사회 상황이나 화가의 심리상태를 전달받을 때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림이 가진 빛깔이나 완벽한 구도, 아름다운 선들과 멋진 인물들과 배경들을 보는 것은 물론 '눈'이다. 그리고 그 눈을 통해 바라본 그림에 '마음'이 흔들린다. 그 마음이 우리에게 기쁨이나 감탄, 슬픔이나 비통함이라는 감정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고, 그 감정에 흠뻑 취해보는 것은 분명 멋진 경험이다. 하지만, 그림을 단순히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렇게 '읽는' 습관을 갖는다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렇게 읽어주는 목소리가 쉽고 분명하게 중심을 잡아 주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도움이 된다.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다른 책이나 자료로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것은 제목에서 밝히는 것처럼 "산책"이다. 가볍게 그림 속을 걸어다니며 기쁘게 그림을 접하는 것으로 좋은,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한 만족을 주는 이 산책이 나는 즐거웠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큼의 매력을 주진 못하지만,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도판에 기울인 노력이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이 분의 설명이 미술학적으로 얼만큼의 평가를 받고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한 그림 한 그림에 대한 애정을 느낄수는 있다. 그 애정으로 그림에 대한 이해를 해내는 웬디 수녀님의 글은, 내가 앞으로도 쭉 이 분의 글을 찾아 보게 될 거라는 작은 확신을 심어 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미술학의 대가가 되는 시작이 될 거다. 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이 책안에 자리하고 있는 그림들이 너무나 보고 싶어 가슴이 뛸거라고는 말 할 수 있다. 가볍고 기분좋게 뒷표지를 덮을 때까 되면 다시 앞 장을 넘겨보고 싶게 만드는, 그런 책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산책이 상당히 유쾌했다고 밝힐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