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주택가. 주택이 밀집된 지역을 부르는 말. 개발의 흔적이 지나간 우리 동네는 주택가다. 주황색 벽돌과 은색 창틀, 혹은 흰색 벽돌에 검정 창틀을 가진 2,3층 다세대 주택들이 마주보고 서있는 좁은 골목을 가진 이 곳에서 나는 살고 있다.

이 곳을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친다. 하지만, 나에게 ‘아침 햇살이 들 때, 가장 빛이 잘 드는 집은 어디냐’고 묻는 다면 대답할 수 없다. ‘뒷산에서 보았을 때, 가장 보기 좋은 집은 어느 집이더냐’고 물어도 대답할 수 없다. 내게 있어, 나의 앞집과 옆집들은 ‘지나치는 곳’일 뿐 ‘감상할 만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멋진 건축물?

그런 것은 문화유산 목록에서나 찾을 수 있는 것 아닌가? 노트르담, 성가족 성당, 베르사이유 궁전, 런던 브릿지..이런 것을 보는 것 외에 우리 일상에서도 우리가 ‘볼 수 있는’ 건축이 있다는 말인가?

이것이 나만이 가진 무지는 아닐 것이다. ‘보는 건축’과 ‘사는 건물’은 엄연히 분리되어 살아온 ‘건축 무지자’였던 나는 그저, 유명한 예쁜 건축물이나 구경하자는 맘으로 이 책을 펼쳤다.


에? 점, 선, 면, 공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 기초적인 개념들을 이해하는 것이 이 책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다. 그리고, 그 개념들에 대해서 받아들이는 순간의 흥미로움이 나의 책 읽기의 시작이었다. 흔히 알고 있는, 아니 알고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이런 개념들은 ‘건축’이라는 한정된 범위 안에서 새롭게 옷을 입고 우리가 봐야 할 곳을 차분히 짚어나가세 도움을 준다. 아마 벽에 걸린 그림 액자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저 벽의 저 위치에 저 그림이 걸려도 좋은 걸까?’라며, 아직 채 한 권도 읽지 못한 채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이다.

이렇게 시작된 건축의 이해는, 건축을 구성하는 재료부터 주변 환경과 요구되어지는 조건과의 어울림, 더 나아가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는 도시까지 아우르며 조목조목 파고 있다. 이 짜임새 있는 구성과 호흡은 ‘초보자’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내 걸음걸이에 적당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더불어 한 계단씩 올라가는 기분을 맛보게 한다.

 

물론 조금 가파른 계단도 있었음은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마스터 하고 말거야란 욕심은 조금 미뤄두는 것이 책을 더 즐겁게 읽는 방법이다. 어떤 종류의 책이건 그 책에서 단 한 가지의 즐거움을 찾아 내지 못하겠다면 읽지 않는 편이 좋다. 삶의 흔적을 돌아보는 기쁨도 좋고, 앎의 흥분을 느끼는 기쁨도 좋고, 감정의 고리를 찾아내는 기쁨도 좋고, 혹은 어렵지만 지식에의 사투에서 비롯되는 기쁨도 좋다. 단, 지루함만을 반복시키는 시간만은 피하는 것이 나의 책읽기의 지론이다. 그런 면에서 인문 서적이란 거창한 이름의 이 책은 2004년 11월의 한 가지 즐거움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아직도 '저 선물은 멋있는 건가요?'라고 물을 수 밖에 없는 건축의 초보자인 내가 얼마나 변했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것을 10초라고 대답하겠다.
10초 동안 건축물 앞에 멈춰서있게 된 나의 발과 나의 눈이 이 책이 나에게 가져다 준 변화라고 말이다. 가을의 진한 풍경이 모두 사라진 스산한 겨울, 도시의 흉물로만 불린 높다란 건물 앞에서 자연스레 숨이 가빠오는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그런 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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