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공장은 싫어 (책 + DVD 1장) 애니메이션 달팽이 과학동화 3
보리 지음, 마장박 스튜디오 그림 / 보리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편함에 우표가 붙어 있지 않은 편지 한통이 들어 있었다. 수신인은 우리 부부인데, 발신인이 없다. 작은 딸 솜씨였다. 편지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는다.

 

원숭이들아! 안녕?

늑대의 큰 욕심 때문에 공장에서 너희를 내쫒고, 물이 오염 된거야. 우리 마을도 공장이 있어. 우리가 사는 지구도 아파하고 있지. 우리들도 너희 마을처럼 공장이 없으면 좋겠지만, 공장이 없으면 옷, 가방, 신발 등을 만들 수 없단다. 우리가 최대한 열심히 노력할 수밖에. 우리들도 노력을 한다 해도 우리는 지구를 아프게 하고 있는 걸.

나 같아도 늑대가 그런 건 너무 심했어. 나 같아도 그랬을 거야. 자연에서 자란 것이 맛 있지. 공장에서 가짜로 만든 게 맛이 있겠어? 많이 팔려고 하는 욕심이 들어 있는 복숭아와 자연에서 정성 다해 만든 게 맛있겠니? 자연에서 정성 다한 게 맛 있지. 늑대도 정말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 거야. 넓은 마음으로 1번만 용서해 주렴.

그럼 이상 마칠게! 안녕!

- 이런 공장은 싫어 원숭이에게 -

 

긴꼬리 원숭이 납작코 원숭이, 안경 원숭이 들이 함께 모여 복숭아나무를 기르며 살던 산골. 원숭이들은 서로서로 도와 열심히 일을 했고, 이웃 마을 돼지들도 신나서 일을 거들던 곳. 그곳에 늑대가 큰 차를 몰고 나타나면서부터 불행이 시작됩니다. 늑대들은 복숭아를 모두 사들이고 그곳에 통조림 공장을 만듭니다. 원숭이들과 돼지들은 그 공장에서 쉴 사이 없이 일을 해야 했고, '빨리빨리 더 빨리'를 외치던 늑대들은 기계와 약을 사용하면서 그곳에서 일하던 원숭이들은 모두 쫒아냅니다. 뿐만 아니라 공장은 쉴새없이 더러운 물을 쏟아내고 공장 굴뚝은 시커먼 연기를 뿜어냅니다. 물고기들이 죽고 복숭아 나무는 시들시들 말라갑니다. 마침내 원숭이들은 공장으로 몰려가 늑대를 내쫓습니다. 늑대가 쫓겨나고 봄이 오고, 원숭이 마을은 다시 건강해 집니다.

 

공해라는 문제를 앞세우지만 실은 혁명을 소재한 이야기가 '이런 공장은 싫어'다. 평화를 사랑하는 아이들의 눈엔 그러나 혁명도 낯설다. 늑대를 '용서'하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피 패밀리
고종석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니, 제목을 고쳐 말해야겠다. 나 이대 다닌 여자야.

 

그간 감염된 언어, 모국어의 속살 등 고종석의 책을 여럿 읽었(겠)지만 그의 소설을 읽긴 이번이 처음이다. 고종석의 소설만 읽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 얄팍한 독서목록에서 소설이 낄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요사이 고종석의 트위터를 열심히 들여다 보지(는 않았지만, 그가 열심히 트윗을 날리지) 않았더라면 해피패밀리란 소설도 읽진 않았을 것이다.

소설은 빠르게 읽힌다. '날카롭고 서늘하고 우아하다!'는 띠지의 문구에 다 수긍하진 못하더라도, 그가 우리 시대의 문장가란 출판사의 선전(이 아니더라도 그의 글을 접한 이 대부분은 그의 빼어난 글솜씨를 모르고 있을 리 없기)에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만큼 매끄럽게 읽힌다.

 

세상에 금지된 것은 없습니다. 느닷없이 이 문장이 내 입밖으로 중얼중얼 흘러 나왔다.(38쪽)

소설은 바로 금지된 것을 이야기한다. 금지된 것은 우리를 유혹한다. 그러나 뒤돌아 보지 말라는 금기를 어긴 댓가는 얼마나 치명적인가.

 

이 우주에서 이런 일쯤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재벌이나 왕가의 일원이었다면 이 ‘별남’은 오히려 권위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알겠다. 내가 뭇사람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아니 이제 나는 뭇사람조차 아니다. 아빠의 여신이었던 내가! (198~199쪽)

하지만, 그래서 금지란 뭇사람의, 아니 뭇사람조차 아닌 자의 몫이다. 하다못해 재벌이나 왕가의 일원이라면 금지란 것의 의미는 권위로 치장될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소설을 읽으실 분들을 위해 이 어쭙잖은 소개는 서둘러 마쳐야겠다. 다만, 소설을 읽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 대목 하나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작중 인물인 한민형의 장모, 한민형의 아내 서현주의 어머니 강희숙이 화자로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장면.

 

여고 입시를 코앞에 두고 있던 나는 절망에 휩싸였다. 집에서 책을 펼쳐도, 학교 수업시간에도 문고리와 개구리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그것말고는 다른 모든 정보들이 차단되었다.결국 나는 아버지에게 그 일을 의논했고,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담당자는 전문의가 아니라 레지던트였던 것 같은데, 내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 아니, 내 쪽에서 지레 믿음을 갖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는 어쭙잖게 프로이트 흉내를 내며 내 마음을 제멋대로 해부해 제 진료실이라는 표본실에 걸어두고 싶어하는 악마처럼 보였다. 그 의사가 꿈을 일기에 적어 가져와보라고 했을 때, 내가 느낀 가소로움이란...(158쪽)

강희숙은 무척 조숙했던 듯 싶다. 여중 3학년 때 이미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레지던트를 프로이트 흉내를 내는 악마로 보고, 그 악마를 가소롭게 생각하다니 말이다. 그러나 내가 고개를 갸우뚱했던 것은 같은 쪽에 있는 그 다음 대목을 읽고서였다.

병원 다니기를 그만둔 뒤, 강박증은 제멋대로 자리를 옮겨다녔다. 배가 갈린 청개구리에서 목이 잘린 시체로, 부역자로 몰려 총살당한(내가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에게로.(158쪽)

강희숙은 부역자로 몰려 총살당한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강박증에 대해 의논하고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를 찾은 것이다.

여고에 진학해서도 강박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점점 심해졌다. 그리고 양태가 다양해졌다. 그러니 세 해 뒤 이화여대 과학교육과에 간신히 진학한 것 역시 기적이라고밖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결국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혼자 꾸려가시는 집안 형편도 문제였지만, 내 강박신경증이 생물학을 계속 공부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159쪽)

어머니가 혼자 꾸려가는 집안에서 -그것도 이미 총살당해 얼굴도 모르는 - 아버지에게 자신의 강박증을 의논한 강희숙은 강박증이 아니라 분열증을 앓고 있었던 것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오자이거나 작가의 사소한 실수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은 앞서 인용했던 한민희의 말을 그대로 빌리면, '이 우주에서 이런 일쯤 아무것도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석 시 전집 시인백석 4
백석 지음, 송준 엮음 / 흰당나귀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오늘저녁 이 좁다란 방의 힌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힌 바람벽에

희미한 오십촉(十五燭)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낡은 무명샷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일인가

이 힌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씿고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서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사이엔가

이 힌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것으로 호젓한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듯이 나를 울력하는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눌이 이세상을 내일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속에 살도록 만드신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ㆍ쨈 」과 도연명과 「라이넬ㆍ마리아ㆍ릴케」가 그러하듯이

 

- 힌 바람벽이 있어, (전집, 244-245쪽)

맹자를 읽다가, 백석의 시 「힌 바람벽이 있어 」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구절이 있어 옮겨 적는다.

 

孟子曰:「舜發於?畝之中,傅說?於版築之閒,膠??於魚鹽之中,管夷吾?於士,孫叔敖?於海,百里奚?於市。故天將降大任於是人也,必先苦其心志,勞其筋骨,餓其體膚,空乏其身,行拂亂其所?,所以動心忍性,曾益其所不能。人恒過,然後能改;困於心,衡於慮,而後作;徵於色,發於聲,而後?。入則無法家拂士,出則無敵國外患者,國恒亡。然後知生於憂患而死於安樂也。」告子下 35

하눌이 이세상을 내일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속에 살도록 만드신것이다

란 시인의 말은

하느님께서 이 사람들에게 거대한 역사의 임무를 내려주시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에 더없는 고통을 안겨주시고, 그 육신의 근골을 더없이 수고롭게 하시며, 그 몸뚱이를 배고프게 하시며, 그 육신의 삶을 공핍하게 하신다는 것이다.(김용옥, 「맹자 사람의 길 下 」, 통나무, 2012년, 709쪽)는 맹자의 말을 시적으로 변용한 듯 싶은 느낌을 준다.

 

함석헌 선생이 '뜻으로 본 한국 역사'에서 우리의 역사를 두고, '고난의 역사! 한국 역사'라 말하는 이유도 맹자와 성경이 말하는 하느님의 뜻 바로 그것일 것이다.

 

바야흐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있다. 스스로를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라 말하는 한 여성 정치인은 "준비된 미래냐 과거로 회귀냐 싸움"이냐는 선택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 스스로 70년 유신의 딸이란 점을 크게 부정하지 못하는 처지에 '준비된 미래'라는 포장은 너무 과하단 느낌을 준다. '사람이 먼저다'라며 정권 교체를 주장하는 야당의 후보 역시도 내 마음을 크게 흔들진 못한다. 지금도 철탑 위에서 대한문 앞에서 고난의 길을 걷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엔 더욱 그렇다. 유난히 춥게 느껴지는 이 겨울 넘치는 사랑과 슬픔이 그들과 함께 하길 감히 빌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기열전 1 - 개정2판 사기 (민음사)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원중 교수는 지난 2011년, 14년- 세월이 내게 주어진대도 책을 모두 읽어내기도 쉽지 않을 터인데 -에 걸친 대장정 끝에 사기 완역이란 대역사를 이루었다. 본기, 세가, 열전, 표와 서 모두를 혼자 힘으로 유려한 우리말로 옮겨낸 것이다. 크게 박수를 보내기에 마땅한 일이다. 까치 출판사에서 사기 완역본이 나온 적이 있으나, 그것은 정범진 교수 외 20여 명의 학자가 함께 옮긴 것이어서 번역의 일관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내가 처음 읽었던 사기 열전은 남만성 선생이 옮긴 - 을유문화사판 세계사상전집의 하나로 나왔던 - 것이었다. 그러나 옛집 어딘가에 먼지와 함께 놓여 있을 그 책도 물론 꼼꼼하게 다 읽었던 것은 아니었지만(세로쓰기로 조판 되어 책장을 왼쪽으로 넘겨야 했단 기억만 남은 그 책을 꼼꼼하게 읽었다 하더라도 30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읽었다는 기억만이 남아있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할 듯싶지만) 김원중 교수의 이 책도 꼼꼼하게 다 읽어낼 듯싶진 않다. 다행히 열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읽어내야 할 책은 아니어서, 가끔 들춰보기만 해도 얼추 몇십 쪽을 넘길 순 있었다. 그런데 최근 김용옥 선생의 '맹자 사람의 길'을 읽다가 이 사기 열전을 다시금 들추게 되었다. 들춰보다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 대목 둘을 여기서 적어본다.

 

"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는 것은 위에서부터 이것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법에 따라 태자를 처벌하려고 했다. 그러나 군주의 뒤를 이을 태자를 처벌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태자의 태부로 있던 공자 건의 목을 베고 태사(임금을 보좌하는 관직) 공손고의 이마에 글자를 새기는 형벌을 내렸다.(203쪽)

위에서 인용한 부분이 이상한 까닭은 이 뒤에 이어지는 다음과 같은 부분 때문이다.

 

이러한 일을 실시한지 사 년이 지난 어느 날 공자 건이 또 법령을 어겨 의형(코를 베는 형벌)을 받았다.(204쪽)

태자에게 직접 죄를 묻지 못하게 되자 그를 잘못 보필한 공자 건의 목을 베었다고 했는데, 그 뒤에 다시 목이 베인 공자 건이 잘못을 저지르게 되자 코를 베이는 형벌을 받았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원문을 찾아보니,

 

衛鞅曰:「法之不行,自上犯之。」將法太子。太子,君嗣也,不可施刑,刑其傅公子虔,黥其師公孫賈。

라고 되어 있다. 刑其傅公子虔란 벌을 주었던-刑-것이지, 목을 벤 것이 아니다. 따라서, "태부로 있던 공자 건의 목을 베고"란 것은 오역이다.

 

역시나 같은 쪽에 있던 다음과 같은 부분도 조금은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다.

 

도시나 시골 모두 잘 다스려졌다. 진나라 백성 가운데 예전에는 법령이 불편했으나 이제 와서는 편하다고 말하는 자가 있었다. 위앙은 이렇게 말했다.

  "이러한 자는 모두 교화를 어지럽히는 자이다"

그러고는 그들을 모두 변방으로 쫓아 버렸다. (203쪽)

원문은 아래와 같다.

 

鄉邑大治。秦民初言令不便者有來言令便者,衛鞅曰「此皆亂化之民也」,盡遷之於邊城。

예전 법령이 불편했으나 이제는 편하다고 말하는 자들을 왜 쫓아내는가? 이 글의 문맥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앞부분을 읽어야 한다.

 

새로운 법령이 백성에게 시행된 지 일 년 만에 진나라 백성 가운데 도성까지 올라와 새 법령이 불편하다고 호소하는 자가 1000명을 헤아릴 정도였다. (202쪽)

그러니까 진나라 백성 가운데 예전에는 법령이 불편했으나 이제 와서는 편하다고 말하는 자들은 위앙이 새로운 법령을 만들자 도성까지 올라와 불편을 호소했던 자들이었다. 위앙은 처음에 불편하다고 호소하던 자들이 이제와서 말을 바꾸자 그들을 변방으로 내쫓았던 것이다. 그러니 이 부분-秦民初言令不便者有來言令便者-은 "진의 백성으로 앞서 법령이 불편했다고 말했던 자들 가운데 이젠 법령의 편리함을 말하러 온 자들이 있었다." 정도로 옮기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오역은 아니지만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기 때문이다.

흠을 잡긴했지만, 옥의 티일 것이다.

 

지나가는 길에 덧붙이자면 이 책의 띠지에는 "사기열전"의 알기 쉽고 충실한 완역본, "교수신문"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 선정 최고 번역서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9쪽 역자 서문에도 있다. 2005년에는 '교수신문'의 연재 기획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에서 전문가들에 의해 최고의 사기 번역서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알기 쉽게 옮겨 쓰려 노력한 흔적은 책을 대충 읽어본 나로서도 동의할 수 있겠다. 충실한 완역본이란 평가는 나와 같은 문외한이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뭐라 덧붙일 말은 없다. 그런데 찾아보니 '교수신문'이란 권위에 기댄 그다음 문구는 조금 의심스럽다. 김원중 교수의 이 책이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란 기획에 선정된 것은 물론 맞다. 그러데 이은혜 기자가 쓴 '이성규 譯, 완역 아니지만 탁월...남만성 譯, 오역 많고 읽기 힘들어'라는 제목의 그 기사(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김원중의 이 책을 최고의 번역본으로 뽑은 것은 아니었다. 이 기사를 해당 사이트에서 읽진 못했으나, 몇 개의 블로그에서 그 기사를 옮겨놓아 읽어 볼 순 있었다.)를 실제 읽어보니, 최고의 번역본으로 선정된 것은 아니었다. 기자가 의뢰한 12명의 전문가 가운데 6명이 이성규 교수의 '사마천의 사기'를 최고의 번역본으로 꼽았다. 김원중의 이 책 역시 4명의 전문가에게 선택을 받았다. (김원중 교수 자신이 추천교수의 일원이었으므로 자신의 책을 추천하진 못했을 듯 싶긴 하다.) 이성규 역은 완역본이 아니므로, 김원중 교수의 이 역본이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완역본인 셈이긴 하다. 등수를 매기는 일이 무의미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 기사에서 이 책이 최고의 번역서로 손꼽힌 것도 분명 아니다.  이책이 추천받은 이유론

 

4명에게 추천받은 김원중 건양대 교수의 번역은 최근의 것인 만큼 ‘가장 현대적인’ 번역이다.
임병덕 충북대 교수는 “이해하기 쉽고, 문학적인 표현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려 하며, ‘사기’의 원래 의도를 존중해 어감을 살려 번역하려 했다”는 점을 들어 추천한다.
신성곤 교수와 심규호 제주산업대 교수는 “가장 현대적인 표현이며, 의역도 많고, 각 열전의 첫부분마다 해설을 싣고 중간제목을 군데군데 붙여 접근을 용이하게 한다”라며 장점을 꼽는다.

 이 책에 대한 비판적 지적으론

 

신성곤 교수는 김원중 역의 지나친 의역을 경계한다.
가령, 상앙이 좋아했다는 刑名之學에 대해, 남만성 역과 이성규 역은 “刑名의 學”이라 표현했지만, 김원중 역은 “법가의 학문”이라 의역했다.
신 교수는 “형명과 법술이 법가의 학술인 것은 분명하나 당시 법가만의 전유물은 아니었으며, 三晋 지역의 유가에서도 이런 경향은 있어 법가의 학문으로만 보는 건 지나치다”라고 지적한다

라는 대목

임병덕 교수는 “각주가 빈약하고, 특히 해석상의 문제가 될만한 부분을 문학적 수사나 기교로 표현한 곳이 적지 않다”라며 아쉬움을 말한다.
윤재석 경북대 교수의 비판은 좀 더 신랄한데, “‘상군열전’에 나타난 번역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열전 중의 백미로 꼽히는 ‘화식열전’에서의 오역과 이해부족이 나타나며, 번역상 누락된 부분이 약 40군데나 있어 일일이 나열하기 어렵다”라는 의견이다(이 비판은 개정판이 아닌 초판본에 의거한 것이다).

이란 대목도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2011년 1월에 찍어낸 1판 14쇄인데, 아마도 이런 오류가 대부분 수정된 개정판일 것이다. 하지만 刑名之學은 여전히 법가의 학문이라고 옮겨놓고 있다. 김용옥 선생의 '맹자 사람의 길'에 의하면 상앙은 결코 법가로 말할 수 없고, 그때는 아직 '법가'란 개념이 있지도 않을 때였다고 한다.) 정범진 외 공역한 책은 '일부 오역과 독창성이 없다는 점'으로 비판을 받고 있었고, 내가 오래전에 읽었다고만 기억하는 남만성 선생의 책은 '추천할 수 없는 번역'이란 평가도 있었(지만 그렇게 못읽을 책이었나 싶기도 하)다. 아무튼, 이 책이 좋은 번역서일 순 있겠으나, "교수신문"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 선정 최고 번역서란 띠지의 표현은 조금 과장된 광고다. (물론 교수신문의 그 기사가 공정하고 객관적 평가를 담보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는 별도로 따져봐야 할 문제일 수 있다.) 별점 5점을 줄 수 있는 책이겠으나, 이 띠지 때문에 별 하나를 생략하기로 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롱불 2021-04-29 0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성이 와서 상앙이 제정한 법에 대해 왈가왈부하자 그를 멀리 변방으로 추방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읽으면서 의아해서 생각을 해보았는데
법가의 차원에서 볼 때 법이란 하늘이 정한 불변의 이치이므로. 그것에 대해 민이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학교는 불행한가 - 전 거창고 교장 전성은, 대한민국 교육을 말하다 전 거창고 교장 전성은 교육 3부작 시리즈 1
전성은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서울 시장직을 걸고, 빠른 복지/바른 복지라는 낡은 수사법을 앞세워, 오세훈 (전) 서울 시장은 무상급식과 관련한 주민 투표를 강행했다. 그리고 그는 물러났다. 안타까운 일이었으나 놀랍지는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그 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선거에서 후보 단일화를 대가로 돈을 주고 받았다는 검찰의 발표가 이어졌다. 곽 교육감은 며칠 뒤 기자 회견을 열고, 선의에서, 2억이란 돈을 박명기 교수에게 건냈다고 고백했다. 안타깝고 놀라운 일이었다. 

물 만난 고기처럼, 진보나 수구 매체를 가리지 않고, 언론에서는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질타와 공격을 펼쳤다. 전임 공정택 교육감이 가히 비리 백화점이라 할 만한 행태를 보여왔음에도 미적거렸던 것에 비하면 곽 교육감에 대한 언론의 이런, 융단 폭격식 보도 태도는 조금 낯간지럽다. (한겨레 기사 참고)  

피의 사실 유포라는 낡은 레파토리(이것은 범죄 행위라고 한다. 검찰(언론)은 그런데 이런 범죄 행위를 계속하고(부추기고) 있다)가 계속되는 것도 사실 조금 지겹다. '카더라' 통신사 기사를 제목으로 내 건 신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곳에서 '신(新)'이 아니라 '구(舊)' 의 냄새만 맡을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 분노는 쉽사리 이해할 수 있다.

2억이란 돈은 보통 사람들에겐 큰, 아주 큰 돈이다. 곽 교육감(서울시 교육감은 보통 사람이 오르기 힘든 자리)이라 해도 그 돈을 선뜻 내주진 못했겠지만, 선의에서 그런 큰 돈을 주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은 박탈감을 느끼기 충분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박탈감이 '즉각적' '분노'로 터져나오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분노만으로 곽 교육감의 행위가 범죄냐 아니냐는 문제를 결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사실, 곽 교육감이(나 그의 측근이) 후보를 매수했느냐는 문제는 아직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앞으로 법정에서 이 점이 분명하게 밝혀지길 바란다. 

'왜 학교는 불행한가'라는 책 이야기의 서두치고는 너무 이야기가 지저분해졌다. 

전성은 선생이 쓴 이 책의 내용 전부는 전영창 교장선생님, 홍종만 교감선생님, 원경선 이사장님 세 분에게서 듣고 배운 것이라 한다. 

   
 

전영창 교장선생님에게서는 모든 아이들은 평등하다. 어떤 아이도 온 천하보다 귀하지 않은 아이는 없다는 것을 20년 동안 배웠고, 홍종만 교감선생님에게선 자율의 중요성을 10년 동안 배웠다. 그리고 나의 성서 선생님인 원경선 이사장님에게선 평화를 40년 동안 듣고 배웠다. 

여시아문(如是我問 : 불교 경전으로 듣고 본 것을 그대로 믿고 따라 기록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평등, 귀함, 자율, 평화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의 앞머리에, 학교는 국가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학교란 제도는 '도구'이자 '수단'이란 말이다. 그것은 망치나 톱과 같다. 학교의 불행은 바로,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대하는 그 지점에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학교는 불행한가'라는 책의 제목은 누가 붙인 것일까? 책은 어렵지 않게 읽히고, 여러가지 생각거리를 남겨주고 있지만, '왜 학교는 불행한가'라는 제목과는 어울리는 내용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왜 학교는 불행한가'라는 제목은 조금 이상하다. 불행이란 단어와 학교는 어울리지 않는다. 불행한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아주 없지 않을 터이므로 학교와 불행을 연관지어 생각하지 못할 법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를 '행'이나 '불행'의 주어로 쓰기는 어렵다. 학교는 불행하다는 문장은 어색하다. 무정물인 학교란 단어에 행이나 불행이란 정서적 표현을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왜 바위는 불행한가'라는 말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바위'를 '교복'으로 바꾸어도, '학생증'으로 바꾸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긴, '불행의 근거'라 이름붙인 이 리뷰의 엉터리 제목에도 이유가 없긴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