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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트 - 인간의 행동 속에 숨겨진 법칙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 지음, 강병남.김명남 옮김 / 동아시아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2007년 발렌타인 데이였다. 모처럼 올라간 서울 한귀퉁이에서, 지구가 태양을 열 번이나 돌 때까지 만나지 못했던 선배를 만나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책 몇권을 얻어서 내려온 날이. 그 몇 권의 책 가운데에 링크가 있었다. 아마, 링크란 책을 읽지 않았다면, 버스트란 책의 저자 바라바시를 나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그보다, 그 책을 내게 권해 준, 그리고 쥐어준 선배가 아니었다면.
그날, 동아시아란, 출판사 이름으론 떠올리기 어려운 이름의,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선배의 모습은 내 기억 속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쾌하고 자신에 찬 모습이었다. 그 뒤 몇 해가 지나도록, 전화 한 통을 받은 것이, 그뒤 그와 나 사이의 인연의 전부였지만, 가끔 그의 모습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래 이 글을 쓰기 위해 동아시아 홈페이지에 가 보게 되었다.
동아시아 출판사 홈페이지에 그 선배는 우두머리 CEO라고 소개되고 있다. 그중 일부를 가져다 쓰면 다음과 같다.
일본에서 공부했다는데 그의 일본어는 명동에서 일본여자를 꼬시는 데만 쓰인다. 또 그의 일은 술 먹는 일이며 회사의 식구들에게 구박을 당하는 것이 그의 직책이다.-5년전-위의 글이 자극이 되었던 듯.. 남모르는 피나는 노력으로 배는 들어갔고, 손가방 대신 서류가방으로 바뀌었으며, 더이상 사채업자로 보는 이도 없다. 그러나 식구들에게 구박 당하는 것은 여전하다..
여전하다? 그렇다 그는 전과 같은 것이다. 술배가 나왔던 40대에서, 피나는 노력으로 그 배를 감춘(!) 지금이나 그는 내 기억 속에선 다르지 않은 사람인 것이다.
그날, 선배는 내게 알라딘을 이용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어찌 아느냐고 물었다. 각 온라인 서점마다 특징이 있는데, 그가 아는 나의 모습은 알라딘을 주로 이용하는 사람들의 유형과 가장 비슷하다는 것이다. 알라딘 고객의 유형에 관한 정보가 없는 나로선 그의 말을 믿을 수도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아무튼, 용하게도 10년 가까이를 출판사 말아먹지 않고(이야기를 들으니 말아 먹긴 했었더란다. 운이 좋게도 다시금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지만) 지켜낸 내공이 만만치 않은 듯 싶었다.
최근 이 알라딘에서 추천마법사란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했다. 나의 취향을 매일 분석하여 자신 있게 권해드리는 추천 상품!이란다. 흥, 지가 나를 언제 봤다고.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곳 알라딘을 이용한 것이 꽤 오래 전 일이다. 주문 내역을 검색해 보니, 2000년 11월 1일에 처음 구매를 했다. 그리고 10년간 이곳 알라딘에서 책을 가끔씩 샀다. 올해만 계산해 보니 8월말까지 1,474,830원어치의 책을 샀다. 술값에는 훨씬 못미치는 액수겠지만(술값을 계산하는 술꾼이 어디 있으랴!) 적지 않은 돈을 이곳에서 뿌렸다. 그런데 내가 사들인 책의 정보를 분석해, 알라딘 추천 마법사란 서비스가, 나를 잘 아는 것처럼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당혹스럽다.
버스트란 책은 바로 이런 당혹스러움에 관한 책이다. 인간행동에 대한 연구 데이터가 누적되어 있는 지금 인간의 보편적 행동을 예측하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이 책의 전언이다. 그리고 그러한 전언은 당혹스러움과 불편함을 느끼게 만든다. 23장 라이프리니어의 진실이란 장의 이야기는 특히 그런 당혹스러움을 잘 드러내주는 부분이다.
물론 바라바시는 당혹스러움이나 불편함을 건네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발견한(혹은 했다고 믿는) 새로운 사실들을 전하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이 책을 쓴 것이리라. 그 새로운 사실 가운데 하나가 '버스트'다. 인간 행동에는 폭발성이란 패턴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알라딘에서 책을 사는 패턴도 그런 현상과 닮아 있다. 주로 방학 때 몰아서 책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방학 내내 놀다가 방학이 끝날 쯤이 되서야 숙제를 몰아하는 아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대부분이 마감을 앞두고서야 집중력을 발휘하곤 하지 않던가.
우리 속담에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과학 기술의 발전은 천 길 물속에 대한 탐사는 물론 인간의 마음과 행동에 대한 탐사도 가능하도록 만들고 있다. 인간 역학 연구라는 야심찬 계획(물론 이 계획은 팩션이란 형식을 통해 문학적 양식으로 전달된다)을 담고 있는 바라바시의 버스트란 책은 우리의 이런 속담이 늘 옳지만은 않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미래란 언제나 과거의 흔적일 뿐이니...바라바시가 그런 인간 행동의 그런 숨은 패턴을 맨 처음 찾아낸 사람일까? 도올의 논언한글역주를 읽다보니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子張問十世可知也. 子曰, “殷因於夏禮, 所損益, 可知也, 周因於殷禮, 所損益, 可知也. 其或繼周者, 雖百世, 可知也
2.23 자장이 여쭈었다."열 세대의 일을 미리 알 수 있습니까?" 공자왈 "은나라는 하나라의 예를 본받아 덜고 보태고 한 바 있고, 열 세대의 일을 미리 알 수 있다. 주나라는 은나라의 예를 본받아 덜고 보태고 한 바 있어 열세대의 일을 미리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자가 주나라를 계승한다면 백 세대의 일 일지라도 미리 알 수 가 있는 것이다.
도올의 설명에 따르면, 이 장은 주나라에 대한 예찬의 한 표현인데, 우리는 인생에 대해서도 그러하고 세상일이나 역사에 대해서도 항상 미래를 알고 싶어한다. 그러나 미래의 예측은 명백한 상식적 함수만을 가지고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그것을 점쟁이에게 물어보고 상수나 참위로 푼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빤히 망할 짓만 하는 사람이 부지런히 점쟁이를 찾아 다닌다. 그런데 국가의 정치도 매일반이다.
그러니까, 2천년도 훨씬 더 전에, 바라바시에 앞서서 공자께서, 인간 행동의 예측성을 미리 말씀해 두셨던 것이다. 물론 진지한 농담이다.
출판계에는 책에 그래프가 하나 삽입될 때마다 독자가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정리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바라바시는 그의 전작인 링크에 여러번 출몰했던 그래프를 하나도 삽입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용감하게도 트란실바니아 화가 보톤드 레세그흐의 작품 열다섯 장을 책에 실었다. 내 짤막한 독서 경험에 기대면 이것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널리 읽힌 책의 하나인 삼국지와 같은 책에서 흔히 써먹는 오래된 수법이다.
그래프를 하나도 넣지 않은 탓에 이 책이 바라바시의 전작인 링크보다 더, 배나 잘 팔리게 될까? 나는 그것은 잘 모르겠다. 아마도 이 책을 낸 내 선배는 그럴 것이라고 분명하게 믿겠지만 말이다.
버스트란 책은 어렵지 않게 잘 읽혔다. 큰 장점이다. 그러나 '오토만'이란 단어는 이 책에서 출현 빈도가 높은 중요한 단어인데, 낯설다. 이 어휘는 Ottoman Empire란 영어식 발음을 그대로 옮긴 것일 터인데, 우리에겐 오스만 제국이란 널리 알려진 표현이 있다. '오스만'으로 써야 할 것이다.
뱀다리 : 이 엉터리 리뷰를 쓰고서 등록하기 단추를 누르고 보니, 저자가 버스트라고 부른 현상이 이 책의 리뷰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알라딘에 오늘까지 올라온 이 책의 리뷰는 모두 8편인데, 그 가운데 4편이 오늘 올라온 것들이다. 왜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