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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패밀리
고종석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월
평점 :
아니, 제목을 고쳐 말해야겠다. 나 이대 다닌 여자야.
그간 감염된 언어, 모국어의 속살 등 고종석의 책을 여럿 읽었(겠)지만 그의 소설을 읽긴 이번이 처음이다. 고종석의 소설만 읽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 얄팍한 독서목록에서 소설이 낄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요사이 고종석의 트위터를 열심히 들여다 보지(는 않았지만, 그가 열심히 트윗을 날리지) 않았더라면 해피패밀리란 소설도 읽진 않았을 것이다.
소설은 빠르게 읽힌다. '날카롭고 서늘하고 우아하다!'는 띠지의 문구에 다 수긍하진 못하더라도, 그가 우리 시대의 문장가란 출판사의 선전(이 아니더라도 그의 글을 접한 이 대부분은 그의 빼어난 글솜씨를 모르고 있을 리 없기)에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만큼 매끄럽게 읽힌다.
세상에 금지된 것은 없습니다. 느닷없이 이 문장이 내 입밖으로 중얼중얼 흘러 나왔다.(38쪽)
소설은 바로 금지된 것을 이야기한다. 금지된 것은 우리를 유혹한다. 그러나 뒤돌아 보지 말라는 금기를 어긴 댓가는 얼마나 치명적인가.
이 우주에서 이런 일쯤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재벌이나 왕가의 일원이었다면 이 ‘별남’은 오히려 권위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알겠다. 내가 뭇사람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아니 이제 나는 뭇사람조차 아니다. 아빠의 여신이었던 내가! (198~199쪽)
하지만, 그래서 금지란 뭇사람의, 아니 뭇사람조차 아닌 자의 몫이다. 하다못해 재벌이나 왕가의 일원이라면 금지란 것의 의미는 권위로 치장될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소설을 읽으실 분들을 위해 이 어쭙잖은 소개는 서둘러 마쳐야겠다. 다만, 소설을 읽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 대목 하나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작중 인물인 한민형의 장모, 한민형의 아내 서현주의 어머니 강희숙이 화자로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장면.
여고 입시를 코앞에 두고 있던 나는 절망에 휩싸였다. 집에서 책을 펼쳐도, 학교 수업시간에도 문고리와 개구리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그것말고는 다른 모든 정보들이 차단되었다.결국 나는 아버지에게 그 일을 의논했고,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담당자는 전문의가 아니라 레지던트였던 것 같은데, 내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 아니, 내 쪽에서 지레 믿음을 갖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는 어쭙잖게 프로이트 흉내를 내며 내 마음을 제멋대로 해부해 제 진료실이라는 표본실에 걸어두고 싶어하는 악마처럼 보였다. 그 의사가 꿈을 일기에 적어 가져와보라고 했을 때, 내가 느낀 가소로움이란...(158쪽)
강희숙은 무척 조숙했던 듯 싶다. 여중 3학년 때 이미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레지던트를 프로이트 흉내를 내는 악마로 보고, 그 악마를 가소롭게 생각하다니 말이다. 그러나 내가 고개를 갸우뚱했던 것은 같은 쪽에 있는 그 다음 대목을 읽고서였다.
병원 다니기를 그만둔 뒤, 강박증은 제멋대로 자리를 옮겨다녔다. 배가 갈린 청개구리에서 목이 잘린 시체로, 부역자로 몰려 총살당한(내가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에게로.(158쪽)
강희숙은 부역자로 몰려 총살당한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강박증에 대해 의논하고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를 찾은 것이다.
여고에 진학해서도 강박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점점 심해졌다. 그리고 양태가 다양해졌다. 그러니 세 해 뒤 이화여대 과학교육과에 간신히 진학한 것 역시 기적이라고밖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결국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혼자 꾸려가시는 집안 형편도 문제였지만, 내 강박신경증이 생물학을 계속 공부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159쪽)
어머니가 혼자 꾸려가는 집안에서 -그것도 이미 총살당해 얼굴도 모르는 - 아버지에게 자신의 강박증을 의논한 강희숙은 강박증이 아니라 분열증을 앓고 있었던 것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오자이거나 작가의 사소한 실수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은 앞서 인용했던 한민희의 말을 그대로 빌리면, '이 우주에서 이런 일쯤 아무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