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음은 2014년 4월 5일 경향신문에 실린 황현산 선생의 글(인터넷 판은 4월 4일자이다.) '공개 질문'의 일부이다.

한려수도는 한산도에서 여수로 이어지는 뱃길이지만, 진해만도 넓게 보면 그 뱃길에 속한다고 적어도 나에게는 말해야 할 이유가 있다. 내가 읽은 생애의 가장 아름다운 산문은 그 한려수도에 관한 것이었고, 그 글과 똑같이 아름다운 풍경을 진해만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나처럼 1950년대에 초등학교에 다닌 사람들은 6학년 1학기 국어책에 실렸던 그 유창한 글을 기억할 것이다. 그 산문은 글쓴이가 동영이라는 이름의 자기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투의 기행문이었다. 그는 한산도에서 여수로 배를 타고 가며 그 연변의 풍경을 묘사하며 국토의 아름다움을 예찬했다. 책이 귀하던 시절이라 나는 그 글을 스무 번도 더 읽어 오랫동안 외우고 있었는데, 이제는 “유리알을 깔아놓은 듯 잔잔한 바다 위를 배는 망아지처럼 달려간다”는 한 구절이 겨우 기억에 남아 있다.

나는 글쓴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글의 첫 대목에서 그가 조카에게 등불 아래 지도를 펴놓고 남쪽 해안을 살핀 다음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라고 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그는 보들레르의 시를 읽은 사람일 것 같기도 하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끝내는 시 ‘여행’에는 “지도와 판화를 사랑하는 어린이에게 세계는 그의 식욕만큼이나 방대하다”는 구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지 짐작일 뿐이다.

보들레르를 읽지 않았다고 해서 이런 생각을 못할 사람이 있겠는가. 아무튼 나는 그를 알고 싶어 했으나 여태껏 알지 못했다.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언젠가는 알게 될 날이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언젠가가 영원히 오지 않는 날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 만큼 나이가 들었다. 그래서 이 귀중한 난을 단 한 번 사적으로 사용할 결심을 한다. 그 글을 쓴 사람을 알려달라고 지혜로운 자들에게 부탁한다.

지혜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호기심에 그 글을 쓴 사람을 나 역시도 알고 싶었다. 전혀 기억에 없지만, 국민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그 글과 마주치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며칠 서툰 솜씨로 검색도 해보고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삼례 책박물관을 찾아가 보기도 했다. 지혜는 물론이고 열정도 없었기에 그 호기심은 어느새 그해 봄날의 눈이 되었다.

필리버스터라는 말이 새삼 주목받았던 올 2월, 트워터에서 국회와 국회 도서관이란 키워드가 눈에 들어왔다. 그 덕에 국회 전자도서관를 오랜만에 다시 접속하게 되었는데 문득 몇해 전 황현산 선생의 '공개 질문'이 생각났다. 초등 국어 교과서를 뒤져 선생이 오랜 세월 기억하던 글을 읽게 되었다.

'남해에서'란 제목의 그 글은, 선생의 그 기억과 다르게 동영이 아니라, '동명아!'로 시작하고 있었다. 다른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제는 “유리알을 깔아놓은 듯 잔잔한 바다 위를 배는 망아지처럼 달려간다”는 한 구절이 겨우 기억에 남아 있다라고 한 대목도, "지금 아저씨는 유리알처럼 잔잔한 바다 위를 배를 타고 간다. 배는 제 그림자를 물 위에 비추며, 재빠르게 미끄러지 듯 달린다."라고 되어 있었다. 망아지처럼 달려 간다는 표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배도 바다에서는 외로운 모양이다. 섬을 감돌아 지날 때는 "뽀오."하고 기적을 울린다. 당나귀가 우는 듯이 인사라도 하는 듯이......"라는 대목, "지금 아저씨 눈 앞에는 넘실거리는 물굽이가 수백 마리의 말들이 몰려오고, 또한 몰려가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수백 마리의 말을 한 필로 싸안고, 바다는 목장처럼 조용하다."라는 대목이 이어지고 있을 뿐, 망아지는 보이지 않았다.

'남해에서'라는 제목을 찾게되었지만, 아쉽게도 글쓴이는 국어책에는 적혀 있지 않았다. 검색해 보니 그러나, 선생과 비슷한 기억과 관심이 있는 분들이 없지 않았다. 아름다움은 오래 기억된다. 설령 그 기억이 약간의 왜곡 속에 자리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노무사 일을 하시는 성대진이라는 분의 내가 배웠던 '국어교과서 속의 명문들'이란 글 속에서

"'남해에서'라는 단원을 쓴 강소천선생의 기행문은 1학기말에 등장하는데, 남해의 비경을 그림을 그리듯이 그려낸 명문이었다. 강소천선생은 노랫말도 많이 지었는데, '나뭇잎 배', '어린이날 노래' 등 헤아릴 수 없는 뛰어난 노랫말을 지었다."라는 대목을 보자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황현산 선생이 알고 싶어하던 글쓴이가 바로 아동문학가로 이름 높은 '강소천' 선생이었던 것이다.

 

강소천 선생을 기리는 홈페이지도 훌륭했다. 전집과 단행본 모두를 온라인 상으로 열람할 수 있었고, 여러 자료도 알차게 제공되고 있었다. 그곳 게시판에도 "강소천 선생님의'남해에서'란 작품을 찾고 있는데 없네요."라는 제목으로 "'50~60년대 국민학교 국어교과서 6-1에 실린 서간체의 기행문입니다. 동명아, 지도를 펴고~로 시작됩니다.정확한 출전과 전문(全文)을 알고 싶습니다."라고 글을 올린 우보란 분이 있었고, 그 게시물에 문답이 이어졌다.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강소천 선생의 생애와 연보를 보니, 선생은 한국 전쟁 후 문교부 편수관으로 교과서 만드는 일을 하셨고, 명확하게 확인하긴 어렵지만, '남해에서'란 선생의 글도 그 인연으로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것으로 보인다.(강소천 선생이 교과서에 싣기 위해 쓴 글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지만 그 글의 출처는 아직 모르겠다.)

황현산 선생의 그 글이 실린 경향신문 홈페이지에는 아직까지도 아무런 댓글도 달려 있진 않지만, '남해에서'란 작품이 강소천 선생의 글이란 것을 황현산 선생께서는 이미 알고 계실 것이다. 지혜로운 분들, 눈 밝은 분들이 선생 주변엔 아주 많을 것이기에...

 

50년이 넘는 시간 속에서도 보존되는 아름다운 기억이란 얼마나 특별한가. 그러나 어쩌랴, 하루가 다 지나가기 전에도 깜빡거리는 일이 많으니 나는 몇자 적는 것으로 그 기억을 대신할 밖에.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이부동 2018-07-10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현산님의 책을 읽다가 검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