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열전 1 - 개정2판 사기 (민음사)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원중 교수는 지난 2011년, 14년- 세월이 내게 주어진대도 책을 모두 읽어내기도 쉽지 않을 터인데 -에 걸친 대장정 끝에 사기 완역이란 대역사를 이루었다. 본기, 세가, 열전, 표와 서 모두를 혼자 힘으로 유려한 우리말로 옮겨낸 것이다. 크게 박수를 보내기에 마땅한 일이다. 까치 출판사에서 사기 완역본이 나온 적이 있으나, 그것은 정범진 교수 외 20여 명의 학자가 함께 옮긴 것이어서 번역의 일관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내가 처음 읽었던 사기 열전은 남만성 선생이 옮긴 - 을유문화사판 세계사상전집의 하나로 나왔던 - 것이었다. 그러나 옛집 어딘가에 먼지와 함께 놓여 있을 그 책도 물론 꼼꼼하게 다 읽었던 것은 아니었지만(세로쓰기로 조판 되어 책장을 왼쪽으로 넘겨야 했단 기억만 남은 그 책을 꼼꼼하게 읽었다 하더라도 30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읽었다는 기억만이 남아있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할 듯싶지만) 김원중 교수의 이 책도 꼼꼼하게 다 읽어낼 듯싶진 않다. 다행히 열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읽어내야 할 책은 아니어서, 가끔 들춰보기만 해도 얼추 몇십 쪽을 넘길 순 있었다. 그런데 최근 김용옥 선생의 '맹자 사람의 길'을 읽다가 이 사기 열전을 다시금 들추게 되었다. 들춰보다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 대목 둘을 여기서 적어본다.

 

"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는 것은 위에서부터 이것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법에 따라 태자를 처벌하려고 했다. 그러나 군주의 뒤를 이을 태자를 처벌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태자의 태부로 있던 공자 건의 목을 베고 태사(임금을 보좌하는 관직) 공손고의 이마에 글자를 새기는 형벌을 내렸다.(203쪽)

위에서 인용한 부분이 이상한 까닭은 이 뒤에 이어지는 다음과 같은 부분 때문이다.

 

이러한 일을 실시한지 사 년이 지난 어느 날 공자 건이 또 법령을 어겨 의형(코를 베는 형벌)을 받았다.(204쪽)

태자에게 직접 죄를 묻지 못하게 되자 그를 잘못 보필한 공자 건의 목을 베었다고 했는데, 그 뒤에 다시 목이 베인 공자 건이 잘못을 저지르게 되자 코를 베이는 형벌을 받았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원문을 찾아보니,

 

衛鞅曰:「法之不行,自上犯之。」將法太子。太子,君嗣也,不可施刑,刑其傅公子虔,黥其師公孫賈。

라고 되어 있다. 刑其傅公子虔란 벌을 주었던-刑-것이지, 목을 벤 것이 아니다. 따라서, "태부로 있던 공자 건의 목을 베고"란 것은 오역이다.

 

역시나 같은 쪽에 있던 다음과 같은 부분도 조금은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다.

 

도시나 시골 모두 잘 다스려졌다. 진나라 백성 가운데 예전에는 법령이 불편했으나 이제 와서는 편하다고 말하는 자가 있었다. 위앙은 이렇게 말했다.

  "이러한 자는 모두 교화를 어지럽히는 자이다"

그러고는 그들을 모두 변방으로 쫓아 버렸다. (203쪽)

원문은 아래와 같다.

 

鄉邑大治。秦民初言令不便者有來言令便者,衛鞅曰「此皆亂化之民也」,盡遷之於邊城。

예전 법령이 불편했으나 이제는 편하다고 말하는 자들을 왜 쫓아내는가? 이 글의 문맥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앞부분을 읽어야 한다.

 

새로운 법령이 백성에게 시행된 지 일 년 만에 진나라 백성 가운데 도성까지 올라와 새 법령이 불편하다고 호소하는 자가 1000명을 헤아릴 정도였다. (202쪽)

그러니까 진나라 백성 가운데 예전에는 법령이 불편했으나 이제 와서는 편하다고 말하는 자들은 위앙이 새로운 법령을 만들자 도성까지 올라와 불편을 호소했던 자들이었다. 위앙은 처음에 불편하다고 호소하던 자들이 이제와서 말을 바꾸자 그들을 변방으로 내쫓았던 것이다. 그러니 이 부분-秦民初言令不便者有來言令便者-은 "진의 백성으로 앞서 법령이 불편했다고 말했던 자들 가운데 이젠 법령의 편리함을 말하러 온 자들이 있었다." 정도로 옮기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오역은 아니지만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기 때문이다.

흠을 잡긴했지만, 옥의 티일 것이다.

 

지나가는 길에 덧붙이자면 이 책의 띠지에는 "사기열전"의 알기 쉽고 충실한 완역본, "교수신문"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 선정 최고 번역서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9쪽 역자 서문에도 있다. 2005년에는 '교수신문'의 연재 기획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에서 전문가들에 의해 최고의 사기 번역서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알기 쉽게 옮겨 쓰려 노력한 흔적은 책을 대충 읽어본 나로서도 동의할 수 있겠다. 충실한 완역본이란 평가는 나와 같은 문외한이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뭐라 덧붙일 말은 없다. 그런데 찾아보니 '교수신문'이란 권위에 기댄 그다음 문구는 조금 의심스럽다. 김원중 교수의 이 책이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란 기획에 선정된 것은 물론 맞다. 그러데 이은혜 기자가 쓴 '이성규 譯, 완역 아니지만 탁월...남만성 譯, 오역 많고 읽기 힘들어'라는 제목의 그 기사(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김원중의 이 책을 최고의 번역본으로 뽑은 것은 아니었다. 이 기사를 해당 사이트에서 읽진 못했으나, 몇 개의 블로그에서 그 기사를 옮겨놓아 읽어 볼 순 있었다.)를 실제 읽어보니, 최고의 번역본으로 선정된 것은 아니었다. 기자가 의뢰한 12명의 전문가 가운데 6명이 이성규 교수의 '사마천의 사기'를 최고의 번역본으로 꼽았다. 김원중의 이 책 역시 4명의 전문가에게 선택을 받았다. (김원중 교수 자신이 추천교수의 일원이었으므로 자신의 책을 추천하진 못했을 듯 싶긴 하다.) 이성규 역은 완역본이 아니므로, 김원중 교수의 이 역본이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완역본인 셈이긴 하다. 등수를 매기는 일이 무의미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 기사에서 이 책이 최고의 번역서로 손꼽힌 것도 분명 아니다.  이책이 추천받은 이유론

 

4명에게 추천받은 김원중 건양대 교수의 번역은 최근의 것인 만큼 ‘가장 현대적인’ 번역이다.
임병덕 충북대 교수는 “이해하기 쉽고, 문학적인 표현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려 하며, ‘사기’의 원래 의도를 존중해 어감을 살려 번역하려 했다”는 점을 들어 추천한다.
신성곤 교수와 심규호 제주산업대 교수는 “가장 현대적인 표현이며, 의역도 많고, 각 열전의 첫부분마다 해설을 싣고 중간제목을 군데군데 붙여 접근을 용이하게 한다”라며 장점을 꼽는다.

 이 책에 대한 비판적 지적으론

 

신성곤 교수는 김원중 역의 지나친 의역을 경계한다.
가령, 상앙이 좋아했다는 刑名之學에 대해, 남만성 역과 이성규 역은 “刑名의 學”이라 표현했지만, 김원중 역은 “법가의 학문”이라 의역했다.
신 교수는 “형명과 법술이 법가의 학술인 것은 분명하나 당시 법가만의 전유물은 아니었으며, 三晋 지역의 유가에서도 이런 경향은 있어 법가의 학문으로만 보는 건 지나치다”라고 지적한다

라는 대목

임병덕 교수는 “각주가 빈약하고, 특히 해석상의 문제가 될만한 부분을 문학적 수사나 기교로 표현한 곳이 적지 않다”라며 아쉬움을 말한다.
윤재석 경북대 교수의 비판은 좀 더 신랄한데, “‘상군열전’에 나타난 번역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열전 중의 백미로 꼽히는 ‘화식열전’에서의 오역과 이해부족이 나타나며, 번역상 누락된 부분이 약 40군데나 있어 일일이 나열하기 어렵다”라는 의견이다(이 비판은 개정판이 아닌 초판본에 의거한 것이다).

이란 대목도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2011년 1월에 찍어낸 1판 14쇄인데, 아마도 이런 오류가 대부분 수정된 개정판일 것이다. 하지만 刑名之學은 여전히 법가의 학문이라고 옮겨놓고 있다. 김용옥 선생의 '맹자 사람의 길'에 의하면 상앙은 결코 법가로 말할 수 없고, 그때는 아직 '법가'란 개념이 있지도 않을 때였다고 한다.) 정범진 외 공역한 책은 '일부 오역과 독창성이 없다는 점'으로 비판을 받고 있었고, 내가 오래전에 읽었다고만 기억하는 남만성 선생의 책은 '추천할 수 없는 번역'이란 평가도 있었(지만 그렇게 못읽을 책이었나 싶기도 하)다. 아무튼, 이 책이 좋은 번역서일 순 있겠으나, "교수신문"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 선정 최고 번역서란 띠지의 표현은 조금 과장된 광고다. (물론 교수신문의 그 기사가 공정하고 객관적 평가를 담보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는 별도로 따져봐야 할 문제일 수 있다.) 별점 5점을 줄 수 있는 책이겠으나, 이 띠지 때문에 별 하나를 생략하기로 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롱불 2021-04-29 0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성이 와서 상앙이 제정한 법에 대해 왈가왈부하자 그를 멀리 변방으로 추방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읽으면서 의아해서 생각을 해보았는데
법가의 차원에서 볼 때 법이란 하늘이 정한 불변의 이치이므로. 그것에 대해 민이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