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심리학 - 심리학의 잣대로 분석한 도시인의 욕망과 갈등
하지현 지음 / 해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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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남들에게도 추천할 만한 책을 읽었다. 일단 하얗고 깔끔하기만 한 디자인을 벗어난 표지 디자인과 반면에 굉장히 심플한 내부 디자인 너무 마음에 든다.

저번의 <관계의 재구성>보다 훨씬 재미나게 읽었고 지루한 부분이 거의 없었다. 내 인생을 돌아보게 되는 책은 아니지만 적어도 요즘 내가 살아가는 세상과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특히나 더 재미있는 몇 가지 부분에 대해서는, 정신과와 관련없는 (즉, 마시멜로 실험에 대해서 일곱 번쯤 듣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면 아마 나보다도 훨씬 재미있어하고 더 신기해 하며 읽겠구나 싶다. 그냥 지나쳐 가는 사회 현상, 문화 이런 것들에 이런 의미가 있었구나 하게 되는, 결코 가볍지 않은 재미.

특히나 자살을 자기애적 폭력으로 설명하는 부분은 '어떻게 이 이야기를 이렇게 쉽고 부드럽게 표현했을까?' 하게 된다.   

그렇지만 대인관계의 상처가 자존심에 흠집 좀 냈다고, 이를 참지 못해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는 일념이 지나쳐 자기를 파괴하는 상황까지 간 사람은 새로 산 차에 접촉사고가 나고 난 다음부터 여기저기 일부러 긁고 다니면서 새 차에 대한 애착을 아예 절연해 버리는 사람의 마음과 같다.  

외래볼 때의 저혈당 증상으로 인한 irritability에 대해 표현한 부분과 노래방 풍경 부분에서는 너무 공감이 가서 웃게 된다. 그런데, 교수님이 아메리카노를 시켰는데 휘핑 뺀 모카 프라푸치노 시키는 문화는 도대체 어떤 나라의 어떤 녀석들의 문화인가! 공감할 수 없다. 스타벅스 가서 나랑 Y샘이 드립커피 시키면 모두 같은 메뉴, 일탈해봤자 라떼를 시키는 우리 아랫년차들은 너무 착한거였어!! 

책이 생각보다 얇다는 점이 흠이다. 나름대로 여유있게 꼼꼼히 읽는다고 했는데도 2시간이면 다 읽는다. 영화 상영 시간보다도 적은 분량의 책은 비용 대비 어딘가 아쉽다.   

좋은 글을 쓰려면 많이 읽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정신과 의사가 반드시 교육적인 목적이나 치료적인 목적으로 책을 쓰지 않아도, 훨씬 유익한 책이 나올 수가 있다. 뭘 어째라 저째라 하는 책보다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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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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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우리나라 여자 작가의 글을 싫어한다. 너무 감상적이고 그저 일기 같고 독자oriented가 아니라 self-oriented 되어있는 듯한 느낌. 또한 글을 쓰기 위한 자료 수집이나 공부를 거의 안 한 듯한 글이 대부분이다. 결정적으로 그런걸 읽고 있으면 나까지 처량한 여자가 되는 것 같고, 주인공들이 하나같이...'여자라면' 자살 시도 몇번쯤 해주고 성추행의 아픈 기억 있고 직장은 몇 번 쯤 옮겨줘야 한다고 은근히 조금 unstable한 여자의 성격에 대한 옹호랄까. 그래서 우리나라 내노라 하는 여자 소설가들의 글은 절대 읽지 않고 그런거야 말로 불온서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김려령이라는 이 사람, 좀 다르다. 

2
웬지 가벼워 보이는 표지 탓에 후배가 책을 주지 않았더라면 먼저 사서 보지는 않았을텐데. '완득이'를 읽고 있으면 오쿠다 히데오 생각이 나기도 하고 성석제가 떠오르기도 한다. 오쿠다히데오보다는 무겁고, '난쏘공'보다는 가볍다. 청소년들은 정말이지 이런 책을 읽어야 한다. '세상의 끝에서 사랑을 외치다' 속의 웬지 여리여리 청소년들보다는 우리 완득이가 훨씬 낫다.  

3
두께에 비해 술술 빨리 읽힌다. 대화역에서 압구정역까지 왔다 갔다 하면 다 읽는다.  

4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완득이 보다 여기 나온 선생님이 더 좋다. 정말이지 초중고 다니면서 이런 선생님 한 분만 만났더라면, 공교육에 대한 내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을껄.

5
어찌 보면 굉장히 비참하고 구슬프게 흘러갈 수도 있는 이야기를 경쾌한 문체로 진행한다. 눈물이 날 때쯤 웃겨버리는 이 여자, 앞으로 기대된다. 특히 밀레의 '이삭줍기'에 대한 완득이의 해석이나 다같이 폐닭을 먹는 장면은 정말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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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즘의 심리학 - 사랑이라는 이름의 감옥에서 벗어나기
샌디 호치키스 지음, 이세진 옮김 / 교양인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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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처음에는 제목에 속아서 읽게 되었다. 나르시시스트들이 단순히 자기만 잘난 줄 아는 사람이나 잘난 척 하는 사람을 의미하지 않고 뭔가 복잡한 사정이 있다고 여겨 궁금해 하던 중 이 책을 발견한 것이다. '나르시시스트의 심리학'이라길래 자기애적 인격장애에 대한 정신역동학적 보고서 정도? 그리고 우아한 표지를 보아하니 나르시시즘을 보는 관점이 역사적으로 설명되어 있을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은 너무 전문적이지도 않고 결코 독자가 본인이 나르시시즘인지 성찰을 갖게 하거나 학문적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자신도 모르게 주위에 있는 나르시시트들로부터 착취를 당하여 괴롭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ㅋㅋㅋ 그래서 뭔가 재미있었다. 나라면 제목을 이렇게 고상하게 짓지 않고 '나르시시트들로부터 나를 지키는 OO가지 방법' 혹은 '나르시시스트를 벗어나라' 이렇게 지었을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나르시시스트들은 남을 배려하거나 관계를 믿을 제대로 된 자아가 없어 제 멋대로이지만 결코 자신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 줄 모르고 남의 기준에서 산다는 것. 자기애적 인격장애의 양면성을 이렇게 잘 표현하다니! 그렇게 생각하면 불쌍하게 여기고 그들을 이해해야 겠지만 그것보다 당신 자신을 소중히 하라고 말한다. 분노를 제어할 전략을 개발하고 존중하는 척 해주고 자기가 주고싶은 것만 주면서 손해보는 나르시시스트들에게 휘둘리지 말라고. 때로는 피하고 때로는 맞서면서 나르시시스트인 상사, 연인, 부모와 사는 길을 제시해주는 그게 이 책의 매력이다.

무엇보다도, 맨 끝에 자녀를 나르시시스트로 키우지 않는 법에 대해서는 아이를 키우는 분들이 읽어보셔야할 것 같다. 당장 이기적이고 자기 것 잘 챙기고 능력만 뛰어나면 잘 살 것 같지만 결국 행복하게 살지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 뿐만 아니라 대체로 자녀 교육에 대한 지침이란게 쓸모없다는 생각이 자주 드는데, 어차피 자녀를 잘 키울 부모들은 이런 이야기를 안해줘도 잘 키울 것이고 덜 된 부모들은 아무리 이걸 읽어도 "우리 애는 아냐" 혹은 "나는 아냐."라고 단정지을 확률이 너무나 높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미국과 우리 나라의 문화 차이가 있어서 조금 와닿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 조금 아쉽다. 원래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책이지만 뭔가 내 편이 되어서 솔직하고 구체적인 충고를 해주는 친구를 만난 것 같이 기분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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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 아, 사람아!
다이허우잉 지음, 신영복 옮김 / 다섯수레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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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님이 번역하셨다길래 휴머니즘적 요소 이런 설명이 붙은 것 같은데 내 느낌은 전혀 다르다.

처음 읽었을 때에는 시끌벅적해도 조용해도 뭔가 지속적인 부산함이 물결치는 중국의 색채가 강하게 느껴졌는데 살을 깎는 이별을 겪고나서 새로운 사랑을 다시 만나고 나서 읽어보니 느낌이 확 다르다.

이해하기 쉽지는 않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최고로 꼽을 수 있는 연애소설 중에 하나다. 

사랑을 제대로 하려면 나의 생각, 행동 전반이 강하고 부드러워져야할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은 아니다. 나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하는가. 라고 끊임없이 끊임없이 묻게 되는.

 

아, 인간이 되기란 왜 이렇게 어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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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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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베스트'에 현혹되지 말아야겠다. 얼마 전에 황지우 시선집도 샀는데, 무슨 근거로 그 시들을 골라 베스트 앨범을 펴냈는지 몰라도 오히려 정규 시집보다 별로였다. 사실 제대로 베스트 시집의 맛을 보려면 내가 좋아하는 시를 하나 하나 예쁜 노트에 베껴서 가지고 다니면서 읽어야 한다. 아주 먼 옛날, 그 고등학교 때처럼.

이 책도 알랭 드 보통의 괜찮은 수필만 모았고, 버지니아 울프 등의 수필을 낸 무슨 유명한 출판사의 70번째 시리즈가 되었다는데... 난 사실 알랭 드 보통의 다른 책에 비해 그저 그랬다. 일단 내가 미술에 큰 관심이 없다는 점도 그렇고, 취향이 없다기보다는 일반적인 취향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에 관심이 없다는거다 이렇게 얇아서 하루만에 읽히는 8500원짜리(-_-+) 책은 내 취향이 아니다. 얇고 가벼워서 해먹에 누워 보기 좋은 책이다. 그리고, 하루키와 반대로 알랭 드 보통은 한가지 주제로 집요하게 파고 드는게 어울린다.

음.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랑에 의해 취향이 정복당하는 그 장면. 요즘 내 얘기 같기도 하고. 그래서 공감이 갔다.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을 다 덮었을 때, 역시나 보통씨가 더 좋아지고 궁금해지는 까닭은 이 책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일상의 재발견. 나도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글이라는건 새로운 세계를 발명할 수도 있지만, 그래서 톨킨이나 아시모프는 대단하지 언제나 우리 주위에 있었던 세계를 발견할 수 있게만 해도 충분히 괜찮다 생각하기에... 주유소 그림과 클로이와의 식사 이야기를 통해 은근히 그렇게 외치다가, 맨 마지막에 결국 글쓰기의 자세에 대해서 언급하는... 그리고 그 자세를 실천하고 있는 보통씨, 그리고 그의 글이 너무나 좋고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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