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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는 '베스트'에 현혹되지 말아야겠다. 얼마 전에 황지우 시선집도 샀는데, 무슨 근거로 그 시들을 골라 베스트 앨범을 펴냈는지 몰라도 오히려 정규 시집보다 별로였다. 사실 제대로 베스트 시집의 맛을 보려면 내가 좋아하는 시를 하나 하나 예쁜 노트에 베껴서 가지고 다니면서 읽어야 한다. 아주 먼 옛날, 그 고등학교 때처럼.
이 책도 알랭 드 보통의 괜찮은 수필만 모았고, 버지니아 울프 등의 수필을 낸 무슨 유명한 출판사의 70번째 시리즈가 되었다는데... 난 사실 알랭 드 보통의 다른 책에 비해 그저 그랬다. 일단 내가 미술에 큰 관심이 없다는 점도 그렇고, 취향이 없다기보다는 일반적인 취향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에 관심이 없다는거다 이렇게 얇아서 하루만에 읽히는 8500원짜리(-_-+) 책은 내 취향이 아니다. 얇고 가벼워서 해먹에 누워 보기 좋은 책이다. 그리고, 하루키와 반대로 알랭 드 보통은 한가지 주제로 집요하게 파고 드는게 어울린다.
음.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랑에 의해 취향이 정복당하는 그 장면. 요즘 내 얘기 같기도 하고. 그래서 공감이 갔다.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을 다 덮었을 때, 역시나 보통씨가 더 좋아지고 궁금해지는 까닭은 이 책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일상의 재발견. 나도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글이라는건 새로운 세계를 발명할 수도 있지만, 그래서 톨킨이나 아시모프는 대단하지 언제나 우리 주위에 있었던 세계를 발견할 수 있게만 해도 충분히 괜찮다 생각하기에... 주유소 그림과 클로이와의 식사 이야기를 통해 은근히 그렇게 외치다가, 맨 마지막에 결국 글쓰기의 자세에 대해서 언급하는... 그리고 그 자세를 실천하고 있는 보통씨, 그리고 그의 글이 너무나 좋고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