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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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리즈인 '인더풀'을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당.연.히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또 하루만에 다 읽었다.

재미로만 따지면 그쪽이 더 재미있고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지만, '공중그네'에 나오는 에피소드가 훨씬 더 진지하고, 공감이 간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비슷한듯 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이라부의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기 주인공들은 '인더풀'보다 쉽게 낫지 않는다. 앞으로 나을거라는 여지를 남겨두면서 끝을 맺는다. 그래서 더 좋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더 웃기기 위해서 속편을 쓰고 싶었던걸까... 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알아보니 우리나라에는 '공중그네'가 먼저, '인더풀'이 나중에 나왔지만 실제로 작가가 쓴 순서는 반대였다. '공중그네'가 속편이라는걸 알고나니 이 작가 더 마음에 드는걸~ 진짜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다. 이렇게 글을 쓰려면 분명히 평생 긍정적인 태도로 살았을테니까. 자기 삶을 속일 수는 없는 것 같다. 나도 좋은 글을 쓰려면 제대로 살아야지!

아무래도 연극에는 배우가 많이 나오고, 소설에는 작가가 많이 나온다. 소설 속 작가들을 통해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런 작품들 중에서도 '여류 작가'는 얼마 전에 이병훈 선생님께서 번역 초안을 보여주신 '백지'와 더불어 글쓰는 사람의 애환을 제대로 묘사한 걸작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이라부 같은 사람이 어떤 형태로든 내 곁에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밥에 마요네즈를 뿌려먹고 아내한테 교복을 입히니, 그냥 조금 친한 동료 정도가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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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카페 산책 - 사교와 놀이 그리고 담론의 멋스러운 풍경
이광주 지음 / 열대림 / 2005년 12월
품절


고민이 있으면 카페로 가자.
그녀가 이유도 없이 만나러 오지 않으면 카페로 가자.
장화가 찢어지면 카페로 가자.
월급이 400크로네인데 500크로네 쓰면 카페로 가자.
바르고 얌전하게 살고있는 자신이
용서되지 않으면 카페로 가자.
좋은 사람을 찾지 못하면 카페로 가자.
언제나 자살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카페로 가자.
사람을 경멸하지만 사람이 없어
견디지 못한다면 카페로 가자.
이제 어디서도 외상을 안해주면 카페로 가자.
-알덴베르크 -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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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카페 산책 - 사교와 놀이 그리고 담론의 멋스러운 풍경
이광주 지음 / 열대림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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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비오는 토요일, 신촌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인 '미네르바'에 갔다. 마침! 비가오고, 마침! 무반주 첼로곡을 틀어주고, 사람과 커피와 첼로와 빗소리가 있으니 누구보다도 행복했고, 그곳이 내 집이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한번이라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을 위한 책이다.

젊고 여행 좋아하는 사람이 썼을 줄 알았는데, 지긋한 서양사학 교수님이 쓰신 책이다. 같은 '카페 플로르'에 대해서 '스노우캣의 파리 여행기'와 비교해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물론 그 카페가 좋다는 의견은 일치한다.

주관적인 느낌보다는 카페의 역사와 그곳을 거쳐간 예술가들의 일화가 다소 산만하지만 그대신 지루하지 않게 펼쳐진다. 책값이 아깝지 않은 대신 가볍게 읽어야지 했다면 조금 딱딱하다는 느낌이 들지도. 뭐 그래도 빠르게 술술 읽힌다.

책을 읽는 내내 커피냄새랑 맛이 진하게 떠오르는데, 잡힐듯 말듯한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일부러 참고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아울러 5년 전 갔던 유럽의 모습이 함께 떠오른다. 나와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 살았던 커피광들과 맞장구를 치며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행복한 느낌. 물론 이 책이 좋은 탓도 있겠지만, 유럽과 카페라는 저 제목만으로 설레임을 느끼는, 그 느낌의 확대.

완전한 만족감을 주지는 않았어도, 읽으면서 즐거웠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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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꽃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6
노발리스 지음, 김재혁 옮김 / 민음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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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온통 시인처럼 사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딱딱한 정의를 내리는게 아니다. 여행하고, 노래하고, 이야기하고, 사랑한다. 모든 것이 낭만적이고 행복해 보이는, 슬픔조차도 영원을 위한 예비로 보이는 한 편의 동화 같다. 액자식으로 이어지는 많은 이야기가 독일판 아라비안 나이트를 보는듯.

낭만주의 소설은 집중해서 읽으면 행복하지만, 어딘가 엉성해 보이기도 하고, 시대의 현실을 너무 외면하는듯한 느낌과 자연친화적인 척 하면서 극도로 인간중심적인 모습이 가끔 불편하다. 그래도 낭만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나조차 '이게 낭만주의구나' 할 정도로 신비롭고 환상적인 낭만주의의 극치를 보여준다. '푸른 꽃'이 19세기 낭만주의의 극치라고 할 정도로. 하인리히와 마틸데의 사랑의 속삭임은 10대의 셰익스피어가 쓴 작품을 보는 것 같을 정도로 유치하지만, 영원하고 자연마저 축복해주는 숭고한 사랑에 대한 숭고한 믿음에 공감하지 않는걸 보면 나도 늙었나 싶기도 하고.

노발리스는 이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1801년에 세상을 떴다. 나도 애매한 결말은 좋아하지만 그래도 미완성이라니 '문학의 숲을 거닐다'에서 이 책을 소개받지 않았으면 안 읽었겠지. 작가의 폐렴 때문에 꿈같은 동화가 어이없이 끝나버린 후의 이야기는 이 소설에 나오듯이 끝난다. 세상 일은 때로는 시작했나 싶은 순간에 끝나기도 하잖아요. 웬지 훨씬 많은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아서 아쉽다.

웬지 졸업하기 전에 중도에서 책 빌려보고 싶어서 (누군가 졸업생 환송회 때 똑같이 말했다.) 빌린건데, 결국 '크눌프'랑 '푸른꽃' 둘 다 사고 말았다. 사 보기 아까울 것 같은 책이 아니면 빌려보지 말아야지. 갖다주기만 귀찮고. 라고 써놓고 보니 이제 빌릴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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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눌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1
헤르만 헤세 지음, 이노은 옮김 / 민음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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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소설 중에 장면의 요소가 가장 강했다. 그의 소설은 영화나 연극으로 만들지 못할 것 같았는데, 이건 조금은 가능해 보인다고 해야하나. 게다가 헤세 소설 읽으면서 처음 웃은 것 같은데. 어쨌든 회화적이고, 독일에 가고 싶어지고, 즐겁고, 쓸쓸한, 아름다운 이야기.  

크눌프에 비하면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남기려고 하면서 살았다. 기억, 사진, 인간관계, 글... 내가 살았다는 증거에 집착하던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두 번 다 난 이 사랑은 영원한 것이고 오직 죽음으로써만 끝낼 수 있으리라 확신했었지. 그런데 두 번의 사랑이 모두 끝났고, 난 죽지 않았어. 내겐 고향에 친구도 하나 있었어.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서로 연락도 없이 살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지. 하지만 우리는 오래 전에 연락이 끊겼다네." - 70p

사람의 관계에 숨어있는 고통은 참 무서운 것이다. 그 아픔을 잊은채 살지만 누구에게나 프란치스카가 있고, 리자베트가 있다. 문제는 살면서 어떻게 극복하느냐인데... 나 역시 크눌프와 같은 열세살 때 프란치스카 같았던 - 그래, 그들에게는 의미없었을!- 사람들 때문에 고장난 어딘가를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는걸까. 아니. 다르게 말하면, 내 삶 전체를 통해서 극복하고 있는 것 같다.

크눌프의 꿈 이야기와 함께 그 의미를 스스로 깨닫는 순간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왜냐하면 사람의 관계는 고정되어 있어서 바꾸기 힘들다고 믿었고 그것 때문에 힘들던 까닭이다. 예를 들면, 부모님께 아무리 잘 해드리려 해도 부모님이 나에게 늘 더 많이 해주시는 것처럼. 하지만 사람 관계는 주고 받는 것이고, 보이는 것을 주고 보이지 않는 것을 받을 수도 있는, 흐르고 흐르는 그 성질이, 그냥 나는 기분이 참 좋았다.

남의 면도기를 빌려서라도 늘 면도하는 남자, 끊임없이 떠나면서도 돌아오고 싶어하는 남자, '불을 끄지도 않고 창문을 닫았다'는 남자... 좀 더 어렸다면 웬지 끌렸겠지만 난 이제 이런 사람과 친구는 될 수 있어도 사랑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이미 내 삶의 증거에 안달하니까.

"이제 곧 알게 되겠지. 샤이블레, 하느님은 아마 날더러 너는 왜 판사가 되지 않았느냐? 하고 묻지는 않으실거야. 아마도 그 분은 그냥 이렇게 말씀하시겠지. 네가 다시 왔구나, 이 철부지야? 그러시면서 저 위에서 애를 보게 하시거나, 뭐 그런 쉬운 일을 맡기실거야." - 127p

잠들고 싶은 의지만 강해지는 크눌프의 종말처럼, 어느 순간에, 끝나버리는 우리 인생은, 원래 남는 것은 없고 과정 자체가 소중한 것이거늘. 알면서도 매번 잊어버리고 산다. 도대체 무엇이 남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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