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눌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1
헤르만 헤세 지음, 이노은 옮김 / 민음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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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소설 중에 장면의 요소가 가장 강했다. 그의 소설은 영화나 연극으로 만들지 못할 것 같았는데, 이건 조금은 가능해 보인다고 해야하나. 게다가 헤세 소설 읽으면서 처음 웃은 것 같은데. 어쨌든 회화적이고, 독일에 가고 싶어지고, 즐겁고, 쓸쓸한, 아름다운 이야기.  

크눌프에 비하면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남기려고 하면서 살았다. 기억, 사진, 인간관계, 글... 내가 살았다는 증거에 집착하던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두 번 다 난 이 사랑은 영원한 것이고 오직 죽음으로써만 끝낼 수 있으리라 확신했었지. 그런데 두 번의 사랑이 모두 끝났고, 난 죽지 않았어. 내겐 고향에 친구도 하나 있었어.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서로 연락도 없이 살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지. 하지만 우리는 오래 전에 연락이 끊겼다네." - 70p

사람의 관계에 숨어있는 고통은 참 무서운 것이다. 그 아픔을 잊은채 살지만 누구에게나 프란치스카가 있고, 리자베트가 있다. 문제는 살면서 어떻게 극복하느냐인데... 나 역시 크눌프와 같은 열세살 때 프란치스카 같았던 - 그래, 그들에게는 의미없었을!- 사람들 때문에 고장난 어딘가를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는걸까. 아니. 다르게 말하면, 내 삶 전체를 통해서 극복하고 있는 것 같다.

크눌프의 꿈 이야기와 함께 그 의미를 스스로 깨닫는 순간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왜냐하면 사람의 관계는 고정되어 있어서 바꾸기 힘들다고 믿었고 그것 때문에 힘들던 까닭이다. 예를 들면, 부모님께 아무리 잘 해드리려 해도 부모님이 나에게 늘 더 많이 해주시는 것처럼. 하지만 사람 관계는 주고 받는 것이고, 보이는 것을 주고 보이지 않는 것을 받을 수도 있는, 흐르고 흐르는 그 성질이, 그냥 나는 기분이 참 좋았다.

남의 면도기를 빌려서라도 늘 면도하는 남자, 끊임없이 떠나면서도 돌아오고 싶어하는 남자, '불을 끄지도 않고 창문을 닫았다'는 남자... 좀 더 어렸다면 웬지 끌렸겠지만 난 이제 이런 사람과 친구는 될 수 있어도 사랑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이미 내 삶의 증거에 안달하니까.

"이제 곧 알게 되겠지. 샤이블레, 하느님은 아마 날더러 너는 왜 판사가 되지 않았느냐? 하고 묻지는 않으실거야. 아마도 그 분은 그냥 이렇게 말씀하시겠지. 네가 다시 왔구나, 이 철부지야? 그러시면서 저 위에서 애를 보게 하시거나, 뭐 그런 쉬운 일을 맡기실거야." - 127p

잠들고 싶은 의지만 강해지는 크눌프의 종말처럼, 어느 순간에, 끝나버리는 우리 인생은, 원래 남는 것은 없고 과정 자체가 소중한 것이거늘. 알면서도 매번 잊어버리고 산다. 도대체 무엇이 남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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