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의 세계 - 양장본
루돌프 키펜한 지음, 김시형 옮김 / 이지북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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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기적절하게 양장본으로 거듭난 장르적 역사서. 예제를 충분히 곁들이며 단계적으로 초심자들을 끌어들이는 적당한 입문서다. 출퇴근길을 이용해 읽느라 제대로 소화했다고 생각되진 않지만,,, 그래도 나같은 까막눈조차 이젠 다른 독자들의 리뷰 중간중간에 덧없이 뒤섞인 숫자의 덩어리들이, 혹 못다 이룬 복호의 흔적이 아닐까 하는 기특한 의심을 하게 되었음에 스스로 놀라며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는 중. 이책이 머물고 있는 개론적 수준을 가늠해보자면, 이슈에 민감한 독자들의 금융보안시스템에 대한 결과론적 궁금증보다는 말못할 커플을 꿈꾸는 음지의 청춘들이 환영할만한 부록이 흥미롭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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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데 - 고양이 추리소설
아키프 피린치 지음, 이지영 옮김 / 해문출판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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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작가의 개인적인 미련이었음에 틀림없고, 네발짐승은 그 핑계에 불과하며 이따위 대활약은 이제 눈감고도 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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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양선아 옮김 / 강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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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바로 그 아이로군. 

부잣집에 하녀로 팔려가는, 영리하지만 가난한 소녀. 가난하지만 예쁜소녀. 예쁘지만 누구도 완전히 가질수 없는 소녀. 뻔한 메뉴지만 작가의 손맛이 일품이다. 소녀의 자의식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한 긴장감의 도구로 쓰여졌을 장치들에 여러 번 입맛을 다셨다. '위기의 하녀’를 부각시키기 위한 통속적 보조갈등의 주체인 외간 남자들의 등장도 더럽거나 저질스럽지 않았다. 심술궂은 주인집 둘째딸의 모함도 도를 넘어서지 않았다.  

 

구름이 무슨 색이지? 

그림을 배웠거나 남다른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베이직’한 이 대사에 솔깃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화가들이 늘상 경험하고 고민하는 바로 그것을 그 최초의 질문으로 보여주는, 기본적이면서도 동시에 특별함 때문이다. 베르메르는 하녀 그리트를 창가로 인도하여 '보는 방법’을 나누어준다. 카메라 옵스큐라속의 또다른 창문도 보여준다. 하지만 붓을 쥐어주지는 않는다. 

 

날 꿰뚫어 보고 있군요. 

소설은 그리트가 베르메르의 화실을 청소하는 것으로부터 안료를 제작하다가 결국 그림의 구도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과정을 통해 베르메르의 세계를 파헤치는 형식을 취한다. 그러나 그리트의 입을 빌어 고백했듯, 베르메르가 아니다. 작가의 시선은 줄곧 그리트를 만지고 있다. 독자는 안료를 빻는 그리트가 양배추와 당근의 미적 질서를 이야기하는 그녀의 데자뷰임을 느낀다. 오감이 하나씩 열리며, 신비의 명화를 둘러싼 미시사적 실타래도 같이 풀려나가는 걸 느낀다. 느끼면 느낄수록 빠져든다. 그러나 욕망이라기엔 너무나 섬세하다. 

 

왜 당신은 나를 한번도 그린 적이 없죠? 

베르메르의 아내는 불같은 질투로 남편의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차분한 손놀림의 베르메르는 욕망의 가격을 붓질하는 불구자일 뿐이다. 그의 아내가 잔인하도록 잦은 임신을 하는 것은 그녀의 자궁이 욕망의 쓰레기통인 이유인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귀고리를 한 하녀의 초상화 속에서 남편이 더 이상 숨기려 하지 않는 것을 본다. 그리고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만다. 부부의 시선은 초상화 위를 불안하게 떠돈다. 

 

이십 길더. 

감탄스런 존경보다는 세련된 침묵이 어울리는 화실과 그 관계자들의 묘사는 잔잔한 베르메르의 명화들이 오히려 자극적일만큼 은은하고 향기로웠다. 그리트는 분명 자신의 분에 넘치는 맛과 위험스런 정갈함을 겪었다. 그러나 위대한 예술혼과 얼룩진 인생역정 같은 거대한 드라마는 아니었다. 모델과 하녀와 여자가 한몸 안에 부딪혀 박살나는 파국도, 화해도, 질곡이랄 것도, 마음을 붙잡아두기 위한 그 어떤 조급함도 없다. 그녀에게 남겨진 건 진주귀고리의 액면가-이십길더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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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 폭탄 만들기 2
리처드 로즈 지음, 문신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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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하는 중성자의 거인은 램프 뚜껑을 연 자의 명함을 묻지 않아요'

사막의 노동자들이 죽음의 방정식으로부터 이끌어냈다던 지식인의 윤리란 알고 보니 중성자 사용의 매뉴얼을 부록으로 제공한 것에 불과했다. 이는 물론 대량살상자들에게 위대한 자연법칙을 떨이로 팔아넘긴 장물아비들의 정치적 제스쳐였다. 아쉽게도 '미스터 중성자'가 미국시민임을 확신하던 루즈벨트 및 연합국 지도자들은 그것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무식한 정치선배들은 보어와 실라르드, 오펜하이머로 줄줄이 편입된 새내기 정치인들의 입을 틀어막고 재갈을 물렸다. '모두 해산. 중성자씨가 '무조건 항복'이라는 일본어를 익혔으니 이제 상황 끝이야'

생전에 온갖 영광만을 골라 들고 무덤까지 기어들어갔던 그들 중성자의 주인들에게, 그 영광의 수혜권 밖에 태어난 나로서는 향후 궁극에 이르도록 귀 가려운 비난을 약속할 수밖에 없다. 신의 힘을 나누어가진 그들 역사속의 천재들이 기껏 창조해낸 미래란 것이 레드 콤플렉스에 홀린 채 람보따위의 저질영화나 마구 찍어대던 졸렬하기 짝이 없는 냉전의 시대요, 중성자의 상속인들에게 남겨진 것이 고작 무지몽매한 군비경쟁의 그림자, 공멸의 공포증, 결국에 가서는 깡패국가의 탄생에 불과한 것이냐,,,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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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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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내가 봤던 백과사전 중 가장 제목이 긴, 그러나 가장 두께가 얇은, (그래서) 끝까지 다 읽어본 유일한 것. 여타 '동종?의 사전'들처럼 필요에 의해 다시 펼쳐볼 일은 없을 듯하다. 나는 그저 현실같은 관념을 살아갈 뿐 이책은 환상을 노래하는 구체의 지식이기 때문이다.

가볍게, 그리고 재탕에 가깝게 다루어졌지만 마치 야생의 사고를 연상케 하는, 자기색이 분명한 지식을 갖춘 저자가 여전히 대단하게 생각된다. 상대적이면서도 절대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얇아진건지 모르겠으나 지식을 좀 더 '모은' 뒤에 일단락의 마침표를 찍었더라면 더 좋았을 듯하다. 부담스럽고 돌출적인 삽화도, 예컨대 '동종?의 사전'들에 실린 보기좋은 도판처럼 정리정돈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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