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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평점 :
m.s. 포그는 할아버지의 유언을 돕고, 아버지 바버와 자신의 뿌리를 함께 풀어헤친다.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와중에 모든 '아버지'들의 생명이 소비된다.
여자란 존재는 엄마고 애인이고 할 것 없이 모두 트러블 메이커다. 엄마는 출생에 얽힌 쓸데없는 비밀의 창시자이며 중국인 애인은 포그의 아이를 유산함으로써 모성을 거절한다. 남자들은 상처받은 희생양, 세상이 슬픈 돼지새끼, 끝내 외면당한 정자가죽이 된다.
달의 궁전이 자리한 60년대의 뉴욕은 사회부적응자가 자신의 부적응을 제대로 깨닫기엔 너무나 풍요로운 사회다. 부자들은 그들이 부자인 한 한없이 이물감에 관대하다. 잉여물자는 넘쳐나고 돈은 필요할때면 얼마든지 생긴다. 노숙자의 잠자리는 세계에서 가장 넓고 유명한 공원의 덤불이며 익명의 후원자들이 십시일반으로 헌금한 식품민주주의가 주변의 쓰레기통마다 가득하다. 포그는 생산성 제로의 무한소비를 통해 스스로를 추락시킨다. 돈이건, 시간이건, 휘발류건, 컨텐츠건, 여자건, 혹은 독자의 시간이건. 그러나 아무리 처먹어도 입에서 항문으로 귀결되는 물질대사의 메커니즘엔 잃어버린 가족이나 유산의 기억이라는 이름의 장기는 없다. 따라서 그 상실감을 메꿀수도 없다. 사회부적응 프로젝트는 실패다.
끝내 선문답과도 같은 깨달음이 찾아온다. 오리엔트를 향한 해변에서 포그는 기원을 담은 신비의 이미지에서 이젠 천문학을 넘어 지질학적 현실로 떠오른 달을 본다. 달은 문명으로 다다를수 있는 최초의 의미있는 미래이며 포장이 뜯기지 않은 최후의 상품이 된다. 그 균열의 틈으로 과거와 그것이 불발시킨 자신의 미래를 묻는다. 배부른 몽상가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새로운 시작의 눈길을 느낀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