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와 중세의 개념들이 완전히 역전되면서 근대에는 순수 음악이 이상적으로는 목소리보다는 악기적인 것으로서, 낱말 없는 노래로 여겨지게 됐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막 제기한 질문은 다음과 같이 바꾸어 말할 수 있다. 도대체 어떻게 노래의 핵심적인 음악성이 언어적 요소에서 선율, 화성, 리듬이라는 비언어적 요소로 이전됐는가? 그리고 반대로, 어떻게 소리는 언어에서 빠졌는가? - P40
다윈은 선을 따라가는 삶을 그리지 않고 각각의 점 안에 있는 삶을 그렸다. (중략) 근대적 사고는 공간적인 위치에 장소를 고정시켰고 사람들의 삶을 일시적인 순간에 묶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이러한 수순을 뒤집고, 다윈의 도식에 나타난 것처럼 점선 예찬자로서가 아니라, 존재들로 자은 무수한 실들로 짜인 다양체로서 삶 그 자체를 상상할 수 있다면 진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완전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바뀔 것이다. - P27
장소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모든 어떤 곳들이 하나 이상의 길에 놓여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은 다른 어떤 곳으로부터 이어진 길이고, 어떤 곳으로 향하는 움직임의 길이다. 나는 삶이 장소 안에서 살아질 뿐만 아니라 길들을 따라 살아진다고 추론한다. 이때 길은 일종의 선이다. - P26
우리에게 전해진 형식 안에서 언어와 음악 사이의 구별은 쓰기의 탄생 속에 기원이 있지 않고 쓰기의 종말 속에 있음을 제시하는 다량의 증거가 있다.(중략) 그러니까 나는 모든 쓰기 역사가 보다 포괄적인 표기법의 역사 중 일부여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 P43
음악적 측면에서만 보자면 작품을 (장엄함을 함축하며 신축적 형식을 지닌) 구성된 인공물로 보는 바로 그 발상은 18세기 말 즈음 음악이 자주적인 순수예술로 분리되면서 그와 동시에 생겨난 적곡, 퍼포먼스, 표기법이란 개념 속에 기인한다. 그 시기 이전에 실제 음악 작품이란 사전의 작곡에서가 아니라 퍼포먼스 속 노동에 있다고 이해됐다. 모든 퍼포먼스가 표기법에서 사전 제시된 상세설명서에 따라야 한다는 발상은 그야말로 존재하지 않았다. - P47
이 시점에서는 고대와 중세의 독자가 운항사가 아니라 행려(wayfarer)였다는 결론을 내는 것으로 충분하리라. 그들은 종이면 위에 있는 글을 이미 그 자체로 완벽하게 구성되어 있는 진공의 상세설명서로 이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글을 기억의 경관 속에서 길을 찾게 해줄 수 있는 위치표지판과 디딤돌, 이정표의 집합물로 보았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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