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이 볼 때, 관념은 기존 계급 관계와 경제 시스템을 촉진하거나 아니면 와해시키는 갖가지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낸다. 반면에 아날 역사가들이 중요시하는 것은 관념이 아니라 관념보다 더 변화에 무딘 그 어떤 것, 곧 망탈리테(mentalites, 심성 구조)이다. 아날 역사가들이 말하는 망탈리테는 세계를 정당화하지도 왜곡하지도 않고 그냥 고스란히 드러내 주는 일종의 집단 무의식 같은 것이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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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그러나 그런 설명으로 이 세상을 설득하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덫은 자기도 모르게 덜컥 걸려드는 법입니다‘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많은 사람이 잘 실감하지 못하죠. 그런 구문을 이야기라는 차원으로 이행시키지 않으면 본질이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 책을 쓰면서 실감했어요.

무라카미: 트럼프 대통령이 그렇죠. 결국 힐러리 클린턴은 집의 1층 부분에 해당하는 이야기만 했고, 트럼프는 사람들의 지하에 통할 만한 이야기를 마구 던져서 승리한 셈이에요.
가와카미: 그렇게 볼 수 있겠군요.
무라카미: 뭐랄까, 선동가라고까진 할 수 없어도, 트럼프는 고대 사제처럼 사람들의 무의식을 건드리는 요령을 체득했지 싶어요. 그리고 그런 데서는 트위터 같은, 개인 대 개인의 디바이스가 강력한 무기가 되죠. 그가 구사하는 논리와 어휘는 상당히 반지성적이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지하에 안고 있는 부분을 매우 전략적으로, 교묘하게 집어낼 수 있어요.

가와카미: 예를 들어 종교 교의는 가장 막강한 이야기죠. 우리에게는 이 이야기가 매우 중요하게 만듦으로써 이야기가 실제로 움직이게 됩니다. 무라카미 씨가 만드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혹은 시대가 낳는 갖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일상은 이 ‘무의식‘의 쟁탈전인데, 다들 그것에 큰 문제를 느끼지 않아요. 자신들이 만드는 이야기는 막연히 선한 것을 낳는다고 생각하죠.

무라카미: 물론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말투에 매력이 없으면 사람들은 귀기울여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보이스, 스타일, 말투를 매우 중요시하죠. 제 소설은 너무 쉽게 읽힌다는 말을 곧잘 듣는데, 당연합니다. 그게 저의 ‘동굴 스타일‘이니까.
가와카미: ‘동굴 스타일‘...!
무라카미: 네, 일단 눈앞의 사람에게 말을 거는 거죠. 그러니 늘 하는 말이지만, 뭐가 됐든 알기 쉬운 말, 읽기 쉬운 말로 소설을 쓰려 해요. 최대한 쉬운 말로 최대한 어려운 이야기를 하자. 마른오징어처럼 몇 번이고 곱씹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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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정책에 대한 쓸데없는 조언을 받을 때가 많다. 이는 주로 학계나 여타 전문가들로부터, 필요하지만 인기가 없는 정책들을 시행할 용기를 갖고 있지 않다는 힐난을 받는 형태를 띤다. 때로는 그런 쓸데없는 조언은 (중략) 하기 쉬운 일치고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없다는 식의 주장을 담은 ‘고행‘ 정치의 형태로 나타난다. (중략)

미시정치학은 확실히 다르다. 대개의 조언들이 정치 현실에 드러내놓고 무감각한 데 비해 미시정치학의 스타일은 정치가들보다 더 정치적인 것 같다. 그것은 이익집단을 구별해내고 그들이 그들의 이익으로 여길 것이 무엇인지를 구별해낸다 그리고 그 집단들이 그 이익을 지키기 위해 체제를 어떻게 이용할지를 지적해낸다. 그리고서 미시정치학은 그 집단 각각에 대해 더 매력적인 제안을 함으로써 그 집단들의 협력을 확보할 방안들을 제시한다.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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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나는 세 가지 소비현상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 과시적 소비의 민주화는 중간계급에게 훨씬 더 많은 물질적 재화를 제공했지만, 이런 변화는 그들에게 손해로 작용한다. 중간계급이 물질적 지위 상징에 더 많은 돈을 지출하게 됨에 따라 세대 간 상향 이동성을 증대하는 길을 닦는 영역에서는 지출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과시적 소비가 주류화된 결과, 야망계급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은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중략) 이 새로운 엘리트들은 전통적인 과시적 소비 품목은 덜 소비하며 그 대신 과시적 생산과 비과시적 소비를 통한 더 미묘한 지위 표시에 눈길을 돌린다. (중략) 요가를 배우고, 아이에게 축구보다 하키를 가르치고, 일반 우유 대신 아몬드 우유를 마시고, 매주 마트 종이봉투를 재사용하는 선택은 모두 지위를 드러내는 다른 방법들보다 비싸지는 않지만 식견이 있다고 여겨지는, 본질적으로 지위를 드러내는 기표다.

마지막으로, 베블런이 ‘과시적 유한‘이라고 지칭한 많은 행동-가령 대학 졸업장과 스포츠 즐기기-이 지금은 계급 상승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야망계급에게는 유한(여가)도 대부분 생산적인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 P46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돈을 쓰고, 어떻게 행동하며, 무엇을 높이 평가할지 등에 관한 야망계급의 미묘하고 점점 더 비과시적으로 달라지는 선택이 자신과 자녀들의 사회적 문화적(그리고 종종 경제적인) 특권을 강화하면서 나머지 모두를 배제한다는 사실이다. 야망계급 성원들은 자신의 결정에 대한 확신과 자신들이 누리는 사회적 지위가 정당하다는 인식에 기반해 사회 전체에서 점증하는 불평등을 무시할 수 있다. 최소한 이들은 자신들이 비난받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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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는 월스트리트 경영자들에게 강연을 하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뇌는 대충 말하면 확실성을 최대한 제공하도록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주어진 상황에서 모든 불확실성을 표현하기보다 주어진 해석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경우를 찾도록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어요."

불확실한 상황에 대처하는 인간 정신은 스위스 군용 칼과 같다. 거의 모든 작업을 할 수 있지만 어느 것에도 딱 들어맞지는 않아서, 완벽하게 ‘진화‘했다고 보기 힘들다. "진화심리학자의 이야기를 한참 들어보면 , 진화를 더 이상 믿지 않게 될 것이다." 아모스의 말이다. - P385

결정 이론은 알레 역설의 중심에 있는, 언뜻 모순처럼 보이는 것을 기술적 문제로 보았다. 대니는 그 점이 어리석어 보였다. 모순 따위는 없다. 단지 심리만 있을 뿐이다. 결정을 이해하려면 금전적 결과뿐 아니라 감정적 결과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대니는 이 주제로 아모스에게 짧은 글을 계속 써보냈다. "물론 후회 그 자체가 결정을 내리지는 않아. 결과를 보고 느끼는 실제 감정이 그보다 앞서 어떤 행동을 할지 결정하지 않듯이.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후회 예상>이야, 물론 다른 결과 예상과 함께." 대니는 사람들이 다른 감정이 아닌 오로지 후회만을 예상하고 거기에 적응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또 이렇게 썼다. "<일어났을 수도 있는 일>이 괴로움의 핵심 요소지. 여기에는 비대칭성이 존재해. 왜냐면 <상황이 얼마나 더 나빴을 수도 있는가>를 생각한다고 해서 특별히 더 즐겁거나 더 행복해지는 건 아니거든." 행복한 사람이 불행을 상상하는 방식은 불행한 사람이 어떻게 달리 행동했으면 행복할 수 있었는지를 상상하는 방식과 다르다. 후회를 피하려는 욕구는 다른 감정을 피하려는 욕구보다 강하다. - P295

도박을 할 때는 기댓값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기댓값이 마이너스인 도박에도 참여한다. 그렇지 않다면 카지노가 왜 있겠는가. 사람들이 지불하는 보험료 엿기 예상되는 손실을 넘어선다. 그렇지 않다면 보험회사 또한 어떻게 살아남겠는가. 합리적인 사람은 잠재적 위험을 어떻게 떠안아야 하는가를 설명하는 이론이라면, 적어도 보험에 가입하려는 흔한 욕구를 비롯해 기댓값 극대화와는 거리가 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설명해야 한다. - P285

(인간은) 이처럼 시나리오, 해명, 해석을 만들어내는 데는 탁월한 반면에, 그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가늠하거나 그것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능력은 심각하게 떨어집니다. 일단 특정한 가설이나 해석을 갖다 붙이면, 그 가설이 실현될 가능성을 심각하게 과장하고,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기가 아주 힘들어지죠.(아모스 트버스키, 1972년 미국 뉴욕주립대 버펄로캠퍼스 강의) - P231

복잡한 현실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사람들은 대개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기억을 토대로 지어낸 이야기는 확률 판단을 효과적으로 대체한다. 대니와 아모스는 이렇게 썼다. "그럴 듯한 시나리오를 만들면 생각이 더 이상 진전되지 않는 때가 많다. 불확실한 상황을 특정한 방식으로 인식하거나 해석하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는 많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에게 하는 이런 이야기에는 이야기 소재를 얼마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느냐에 따라 편향이 나타났다. 대니와 아모스는 "미래의 모습을 과거 경험에서 나온다"고 썼다. 조지 신타야나가 역사의 중요성을 언급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과거를 되풀이할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뒤집은 것이다. 두 사람은 과거에 대한 기억이 미래에 대한 판단을 그르칠 수 있다고 했다. - P219

그(아모스 트버스키)는 미국인과 이스라엘인의 차이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루곤 했다. 어떻게 미국인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을 거라 믿고 이스라엘인은 내일이 더 나쁠 거라 확신하는지, 어떻게 미국 학생들은 항상 예습을 하고 수업에 들어오는데 이스라엘 학생들은 책 한 번 안 읽는지, 그런데도 대담한 아이디어를 내는 쪽은 왜 항상 이스라엘 학생인지 등등. - P102

그런가 하면 분야가 다른 전문의들이 똑같은 병을 두고 정반대의 진단을 내렸다.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증상을 두고 비뇨기과 교수는 신장암일 확률이 높다고 했고, 신장학과 교수는 신장에 염증이 생긴 사구체신염일 확률이 높다고 했다. 레델마이어는 :둘 다 자기 전문 영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과도한 확신을 보였다"고 했다. 자신이 배운 것에만 주목한 결과였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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