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라인 1
마이클 크라이튼 지음, 이무열 옮김 / 김영사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아무런 생각없이 ‘재미’와 ‘궁금증’만 가지고 책을 읽었다. 독서의 호흡이 길지 못해 한꺼번에 네다섯 권의 책을 동시에 읽어대는 습벽을 지닌 내가 책 한 권에 몰두해 끝을 본 일도 새삼스럽다. 마이클 크라이튼은 <쥬라기 공원>을 쓴 작가이다. 파리의 혈액에서 공룡의 유전자를 찾아내 부활시킨다는 발상은 재미있었지만 그 점 외에는 이렇다할 호기심도, 아름다운 책략도 없었던 지라 <타임라인>도 만화적 상상력만 가득한 것이면 어쩌나, 하는 우려를 털어내기 힘들었다. 그런데 이건 <쥬라기 공원>보다 백 배는 재미있다.

양자 역학을 토대로 한 시간 여행에 초점을 맞춘 크라이튼은 백년전쟁이 한창인 중세의 프랑스로 주인공들을 날려 보낸다. 우리가 ‘시간 여행’이라고 할 때 흔히 생각하는, 일직선상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것,에서 벗어나 ‘웜홀’이라 불리는 우주에서 또 다른 우주로 이동할 수 있는 구멍을 통해 수평 이동을 시도한다(이것은 일전에 말한 <거미여인의 집>에서도 나타난다. 이제 작가들은 수직선을 오가기보다는 수평선을 오가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 것일까?). 그러니까 크라이튼은 이 우주에서 평범한 셀러리맨으로 살고 있는 내가 다른 우주에서는 천재적인 작가일 수도, 테러리스트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건 좀 이상하다. 각기 다른 존재 가치를 지니고 있는 인물을 과연 동일하게 볼 수 있는가. 하지만 이 책에서 어떤 이해나 납득을 찾으려 한다면 책읽기는 골치 아프고 허무맹랑하며 짜증나는 것이 될 수 있다. 내로라 하는 과학자들조차 선명한 결과를 내놓지 못한다는 양자역학을 이해하자고 덤비는 것처럼 무모한 짓이 또 어디 있겠는가?

여튼 이런 의문점들을 넘겨버릴 수 있을만치 이야기는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중세로 넘어간 이들이 겪는 우여곡절(이곳에서 주인공들은 단련된 기사들보다 더 기술적이고 늠름하며 영웅적으로 그려진다. 다분히 헐리우드 적이다.)과 귀환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 37시간의 귀환 데드라인이 주는 긴장감, 거기에 아련한 예감으로 진행되는 사랑까지, 어느 것 하나 재미를 놓을 수 없다. 읽는 내내 영화로 만들면 딱 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이미 영화화되어 우리나라에서도 개봉이 되었다고 한다. 근간의 우리 영화의 활약에 힘입어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본문도 훌륭했지만 말미를 장식한 옮긴이의 말도 걸작이다. 덕분에 아주 가뿐하게 잠들 수 있었다.

- 아 참, 모처럼 만의 고감도 서스펜스와 스릴 속에 푹 빠져 잠도 못 자고 있었을 독자의 소중한 수면 시간을 시답잖은 이야기로 1분이나마 더 뺏어 버린 것 같다. 작가를 용서하는 마음의 100분의 1만 할애하여 옮긴이의 실수도 용서해 주시고, 어서 발 뻗고 주무시기를.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떠올라 있을 테니. 

* 참, 이 책 두 권 짜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