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밭 엽기전
백민석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 전, 그러나 그리 오래는 아닌 어느 날, ‘연쇄엽기살인행각’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그때 난 어렸고 누군가 잽싸게 채널을 돌렸기 때문에 자세한 내막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들의 둥지에서 시체 소각장이 발견되었다는 대목에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기억 뿐. 다른 범죄와는 다르게 살인은 인간의 우발적 행동의 결과물이라 생각했던 내게 그들의 ‘시체 소각장’은, 살인도 사전 계획에 따라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을 자각케 함으로써 내 정신 일반에 치명타를 날리기에 손색 없었다. 그러고도 유괴와 살인의 이중주는 현대의 한 테마로 자리매김했지만 한번의 경악과 분노로 그에 대한 기억은 번번이 소멸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것이 일단락된 살인의 결과물에 대한 건조한 보도일 뿐, 끔찍하고 잔학한 살인의 과정에서는 (다행히) 배제되어 있었던 탓일 것이다. 그런데 백민석의 <목화밭 엽기전>은 독자로 하여금 살인의 도정에 직접 참여하게 함으로써 섬뜩한 공포에 그대로 직면하게 한다. 꾸역꾸역 치밀어오르는 구역질과 뒷골 당기는 서늘함에서 벗어날 방도가 없다.

한창림은 ‘만드릴 원숭이’의 야생적 습성에 매료된다. 만드릴 원숭이의 수컷이 보여주는 단세포적 기질과 포악성은 한창림 자신의 그것과 그대로 닮아있기 때문이다. 야생의 세계를 지배하는 위계 질서는 펫숍 삼촌과 한창림의 관계에서 형상화된다.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힘의 논리이며 살아남기 위해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복종하거나 또 다른 것을 제물로 삼는 방법밖에는 없다. 펫숍 삼촌의 도착을 위해 한창림은 여성성이 남아있는 사내아이를 납치하고 아내 박태자와 포르노그래피를 찍고 사체를 앞마당에 묻는 과정을 반복한다. 여기에서 납치된 ‘작은 수컷’들이 ‘거름’으로 묘사되는 것은 주목할만 하다. 납치된 아이들은, 한창림과 박태자에게 있어 존엄성을 지닌 인간의 객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폭력의 진원이자 욕망의 발화를 부추기는, 그러한 폭력과 욕망의 대상일 뿐인 물화된 존재로 전락한다. 익명의 사내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자신의 아내를 세일하고, 유괴와 감금과 린치가 판을 치는 ‘목화밭’은 도덕적 가치는 부재하고 욕망만 극대화된 부조리의 공간이다. 가족의 해체와 인간성의 말살,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이 야생의 법칙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이번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실린 박민규의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에서 그려지는 너구리는 인간성을 파괴하는 것이자 인간성 파괴의 산실인 현대의 거대 메커니즘에 알몸으로 항거하는, 이중적 메타포를 지녔다. <목화밭 엽기전> 또한 마찬가지다. 한창림은 권력에 순응하고 권력의 폭력성에 도취되어 있으나, 권력이 휘두르는 야수성에 전면 대항을 도발하는 인물이다. 그것이 전폭적 지지를 얻지 못하고 무능하게 일그러지고 마는 것이 현대의 불행이라면 불행일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츤토쿠 2005-01-31 0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헌데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는 백민석이 아니라, 박민규의 작품입니다. 둘 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라....

마녀물고기 2005-08-03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야 보고 고쳤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