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199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왜 요즘 차 안 갖고 다녀? 라는 질문에 뒤늦은 자각이지만 나까지 교통 지옥에 합류할 게 뭐 있습니까? 게다가 서울 시내 공기 좀 보십쇼, 대중교통 이용해야지, 라며 어깨를 으쓱하지만 사실 내가 차를 모셔두기로 한 것은 순전히 기름값 때문이다. 맘 먹고 카드 명세서를 훑어 보았더니 한 달 기름값이 이십만 원을 상회한다. 이십만 원이다! 하루에 만 원 돈을 교통비로 날리는 셈이다. 뒷골이 띵할 수밖에.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기로 마음 먹은 후 얻은 것이 많아졌다. 햇빛 내리는 거리를 활보할 때의 유순한 청량감, 사람들의 지저귐 속에서 맛보는 타인의 삶, 육체가 깨어있다는 느낌, 반은 졸고 반은 책 읽는 지하철 안에서의 나른함 등. 오늘 하루 오며가며 읽은 것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어제>다. 149쪽으로 짧은 데다가 여백도 많고 행간도 넓어 한 시간이면 족히 읽을 수 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5년 전쯤 친구에 의해 알게 된 작가다. 그는 그녀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3부작에 매료되어 틈만 나면 읽었니? 하며 나를 괴롭혔다. 그녀의 어떤 점이 너를 그렇게 들쑤셔 놓은 거야, 물었지만 그는 번번이 읽고 나서 얘기하자 했다. 난 그의 태도와 수선스러움이 못마땅했으므로 일부러 피해가며 읽지 않았다. 그 후 우린 둘 다 사는 것에 바빠졌고 자연히 뜸해졌다. 그리고 봄, 교향곡처럼 아름답게 분열하는 햇빛 속에서 그가 그리워졌고 그리움의 대가로 그녀를 읽어보리라 작정했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시리즈를 읽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절판되었으니 <어제>라도 읽을 수밖에. 그런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요즘 읽게 되는 책들마다 고통이다.

토비아스의 어머니는 몸을 팔아 밥을 산다. 어머니의 몸을 유곽으로 삼은 농부들은 토비아스라는 존재에 대해 무감하다. 그들은 문을 걸어잠글 생각도 하지 않고 어머니를 능욕한다. 선생만이 예외다. 그는 어머니의 방문을 넘으며 문을 잠그고 방문을 나서며 토비아스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그가 자신의 아버지임을 알게 된 날, 토비아스는 어머니의 몸 위에서 잠든 그의 등에 칼을 꽂고 국경을 넘는다. 그는 낯선 나라의 이방인으로, 기계와 같은 삶을 꾸리는 공장노동자로 살아간다. 그런 그에게 ‘린’은 유일한 구원이자 해방구이다. 자신은 알고 린은 모르는, 린은 자신의 배 다른 여동생이다. 린의 출현은 토비아스를 또다른 비극으로 몰아간다. 유부녀를 사랑하는 일은 일상의 퇴화를 가속시키는 일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체는 간결하다. 그녀는 자신과 등장 인물 사이에 심리적 거리를 둠으로써 그들의 고통 속에 저자 자신이 함몰하는 과오를 범하지 않는다. 그녀의 등장 인물들은 운명에 지치고 고독하고 폭력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으며 정신 분열에 시달리지만 그녀는 그들을 향한 차가운 시선을 견지하며 무덤덤하게 서술한다. 그녀는 풍경화 한 장 걸어놓고 그곳에서 숲의 역사를 찾으라 한다. 홀씨 하나 바람에 날려 뿌리내리게 된 날의 황홀, 새와 짐승들의 노님, 폭우와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키 큰 소나무들, 그 자리를 대신한 단풍나무, 떡갈나무, 물푸레나무들이 바람에 사각대는 소리,를 몸소 느껴보라고 한다.

문학이 스스로 울지 않고 그 눈물의 몫을 독자에게 남겨 놓는 것이라면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그러한 문학의 바람에 착하게 조응하는 작가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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