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거북 두 마리 - 글로바다 어린이문고 9 글로바다 어린이문고 9
강정규 지음, 이나미 그림 / 국민서관 / 1998년 3월
평점 :
절판


몇 해 전부터 '게으름의 미덕'을 찬양하는 목소리가 낯설지 않다. 현대의 '발전'과 '발달'의 패러다임은 인간을 부품화 시키고 삶에 대한 사고방식 자체를 변화시켜 어떻게든 바쁘게 살아야만 의미 있게 사는 것이란 환상 속에 빠지게 한다. 이러한 '바쁨의 중독'은 '인간성 상실'이란 위기를 초래한다. 점점 강퍅해지고 메말라 가는 현대인에게 경종이라도 울리려는 듯 근래의 서점가에는 때아닌 '느림'의 바람이 불고 있다. 가벼운, 또 때로는 무거운 톤으로 들려주는 느림의 미학이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기도 한다. 주위를 돌아볼 만한 틈도 없이 바쁘게만 살아 온 지난날을 반성하고 삶의 의미를 재조명해 보자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는 이러한 서적들이 '인간성 회복'이란 주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청거북 두 마리>도 이러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느림의 미학' 사전이라고 하면 좋을까? 총 12편의 단편동화로 묶인 이 책은 각기 다른 소재, 주제를 택하고 있기는 하지만 글들은 모두 '인간성 회복'이란 커다란 주제를 관통하고 있다. 하루에 4, 5개의 학원을 전전하고 여유 시간엔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느라 인간 관계의 부재를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자연과 타자와의 어울림이 얼마나 따뜻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일깨운다.

이 동화집의 글은 크게 세 가지의 주제로 묶을 수 있다. 첫째, 자연 사랑이다. '아빠와 함께 춤을'에서 주인공 '나'와 동생 '태완'인 엉뚱한 실수로 간혹 웃음을 사긴 하지만 마음이 따뜻한 아이들이다. '나'는 미꾸라지를 잡아서 사이다병에 넣어 가지고 뛰어가는 경기를 하는 도중 운동장에 떨어진 미꾸라지가 불쌍해서 그것들을 집어서 다시 양동이에 넣어주다 경기가 끝나는 것도 모른 채 주위의 면박을 사기도 하고 동생 태완이 또한 외갓집에서 잡아온 개구리를 엄마 개구리에게 돌려줘야 한다며 고집을 피우는 통에 밤중에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외갓집으로 가는 소동을 피우기도 한다.

'청거북 두 마리'는 이사 간 이웃의 청거북을 키우게 된 이야기로 평소에 내성적이고 움직이는 것은 절대 그리지 않던 형이 거북이에게 묵묵히 애정을 쏟기 시작하면서 가족과 세상을 향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 과정을 그려보이고 있다. '아기게 두 마리'에서는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아기 게를 한 마리 얻은 가족이 그 아기 게를 고향으로 되돌려주기 위해 버스를 갈아타고 소래포구로 향한다는 이야기다.

지갑을 잃어버려서 모처럼의 휴일에 제대로 구경도 하지 못하고 되돌아오다가 작은 게 한 마리 때문에 돈을 구해 다시 발길을 돌린다는 이야기... '우리 강아지'는 강아지를 제 아이 대하듯 지극정성으로 돌보다가 아내의 임신으로 할 수 없이 다른 집에 맡겨 부부가 짬을 내서 강아지들을 만나러 가는 이야기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수록된 '화분, 그리고 어항'은 아버지를 잃고 실의에 빠진 가족이 물고기를 키우게 되면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희망을 찾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야기들은 모두 생명의 고귀함과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인 지를 잔잔히 그려내고 있다.

둘째는 가족사랑이다. 집안일로 바쁜 어른들 때문에 심심해진 기명이가 이웃 아저씨를 따라 삼촌을 찾아 나섰다가 되돌아오는 길에 길을 잃어 헤매다 지친 몰골로 가족의 품에 안긴다는 '기명이의 외출', 학교에서 늦은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을 늘 등잔불을 밝히며 버스 정류장에 서 계셨던 할머니를 떠올리며 등잔을 만드는 할아버지의 그리움이 애잔한 '등불', 성적으로만 평가되는 학교 제도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도태되려는 아들의 방황 을 감싸 안고 '풀무 학교'라는 시험도 없고 자연과 친화하여 살아갈 수 있는 학교로 전학을 시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다시 건강해진 아들의 졸업식을 담고 있는 '거꾸로 가는 학교'가 그렇다. 가족간의 화해와 사랑이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자양분이 될 수 있다는 새삼스런 자각을 갖게 한다.

마지막 이웃사랑. 자신의 행복이 타인의 행복을 토대로 한 것이 아닐까하는 스스로의 질문 앞에서 행복을 나누기 위한 일환으로 장기 기증이라는 방법을 선택한 엄마의 숭고함을 이야기하는 '촛불', 열차 안에서 만난 병든 딸과 늙은 어머니에게 보내는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의 따뜻한 사랑 이야기인 '마음으로 여는 길'. 자선남비 옆에서 시주 받은 돈을 모두 자선남비 안에 털어 넣고 발길을 돌리던 스님의 모습이 전편을 훈훈하게 했던 '스님과 사관님', 이는 '가족이기주의'에 물들어 있는 현대인에게 이웃과 나누어 가지는 사랑이야말로 더할 수 없는 행복이며 가치 있는 일이란 것을 깨닫게 한다.

'청거북 두 마리', 이 단편 동화집은 경쟁의 악다구니 속에서 자칫 잃기 쉬운 사랑이란 감정을 전면에 부각시켜 빠름의 속도를 조금 줄이고 느긋하게 세상을 걷다 보면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우리를 향한 사랑, 우리의 손을 필요로 하는 사랑이 얼마나 많은 지, 그런 것들을 거두어 가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의미 있는 것인 지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삶의 풍경이 되어 펼치는, 따뜻한 아랫목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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