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 반양장본
마크 해던 지음, 유은영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컨디션이 지랄같다. 폭설을 전후로 해서 내가 한 일은 이렇다. 왼쪽 볼에 난 뾰루지 네 개 심심하면 쥐어 뜯기, 중천에 해 차오를 무렵 일어나서 허겁지겁 밥 벌러 가기, 김정호 추모 앨범 들으면서 침대에 땅굴 파기, 요상망측한 강박으로 꾸역꾸역 책 뜯어 먹기, 혼자 극장 가서 졸다 오기.

김정호는 70년대 중반 포크를 대중화시키는데 한몫한 인물이다. 그의 노래는 시적 메타포로 풍성하다. 뿐더러, 결핵으로 죽었지만 그를 앗아간 것은 병이 아니라 그 한의 노래라 할 만큼 그의 노래를 메우는 정서는 한이다. 이번 추모 앨범의 수록곡들 대부분은 어쿠스틱 기타 하나만으로 연주된다. 그래서일까, 온통 서글프고 온통 그렁그렁하다. 듣고 있으면 채 삼키지 못한 한들이 쿨렁쿨렁 게워진다. 김의철, 이성원, 김두수 등 우리나라 포크의 대표 주자라 할 인물들이 대거 참여하여 귀 호강도 이만저만 아닌데, 에라이 배 부른 투정이지. 아무튼 김두수, 이성원은 끔찍하게 좋다. 음악이 독서의 효율을 떨어뜨리기는 했어도 이 앨범 들으며 책 읽는 행사는 얼마간 더 지속될 듯 싶다.

오늘의 주인공은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이고 소개 형식은 횡설수설이다.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림과 도표와 수식과 글자가 뒤섞인 짬뽕이지만 글자가 훠월씬 많으니 일단 안심해도 좋다.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 이후로 이런 식의 소설을 간혹 만나게 되는데 난 뭐 그닥 친절해 보이지도 않고 재미가 뽕빨나게 느껴지는 것도 아니라서 심드렁.

밤 12시 7분, 시어즈 부인의 개 한 마리가 쇠스랑에 꽂혀 죽은 채 발견된다. 웰링턴을 발견한 것은 ‘나’이다. ‘나’는 자폐아다. 나는 이 살해사건을 소설로 완성하리라 마음 먹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웰링턴에게 쇠스랑을 꽂은 범인을 잡아야만 한다. 나, 크리스토퍼는 비록 자폐아이기는 하나 무지막지 천재적인 소년이다. ‘4살 이전에는 사물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어서 제대로 녹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그 이후의 일들은 모두 기억할 수 있다. 또 나는 소수를 7507까지 알고 있으며 노란색과 갈색을 싫어하고 빨간색을 좋아한다. 음식에 노란색이 섞이면 빨간 식용 색소를 뿌리고서야 먹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나는 굶는 쪽을 택하겠다. ‘나’는 과연 범인을 밝혀낼 수 있을까?

며칠 전 8명의 여성이 나오는 영화를 봤다, 제목은 까먹었다. 책을 읽으며 그 영화가 생각났고, 우연치고는 참 좁은 거리에 있군그래, 중얼거렸다. 영화의 시작도 살해(살인)사건이었고, 사건을 해결하는 와중에 인간의 저열함과 비겁함과 아오~ 골치 아프게 얽히고설킨 관계들이 속속 드러난다. 아무튼 인간들이란, 하는 순간이다. 어쨌건 저쨌건 책은 재미있다.

책 읽는 족족 감상문 쓰기로 작정한 것이 엊그제인데 벌써 게으름이다. 에이고오, 여기까지 쓰는데도 주뢰를 트네그랴. 후안 룰포의 ‘뻬드로 빠라모’랑 ‘나는 훌리오 아주머니와 결혼했다’랑 정영문의 소설 몇 권이라앙은 어느 세월에. 하지만 불끈! 니들도 언젠가는 잘근잘근 씹어주고 사리살짝 쓰다듬어주고 벙긋벙긋 예뻐해줄게, 기둘리이이이이.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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