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임스 미치너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일중독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 중의 하나가 연휴증후군이라고 한다. 연휴가 시작됨과 동시에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해서 급기야 병원 신세까지 질 정도였다가도, 그 지긋지긋한 연휴가 대단원의 막을 내릴 때면 또다시 기운 찬 천하장사로 돌변한다는 것이다. 정확한 소식통에 의한 것은 아니다. 연휴 때만 되면 아프다고 투덜대는 내게 자칭 만물박사이신 친구분께서 주절거리신 내용이니 말이다. 나처럼 틈만 나면 땡땡이 칠 요량보가 하나 더 붙으신 분께 workaholic이란 병명을 갖다 붙이다니 천만부당하다. 그렇긴 하더라도 지난 연말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던 내게 정월 초하루부터 입술 양쪽에 물집이 잡히고 기면증에 시달리게 한 것은 가혹하다. 신이 죽은 건 확실하다.

백악관의 만찬 초대를 은사님 뵈러 간다는 이유로 불응한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했던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 ‘소설’은 문학을 존재케 하는 구성원인 작가, 편집자, 비평가, 독자, 4인의 다각적 시각으로 진행된다. 그렌즐러 연작 시리즈 중 4부까지의 참패를 딛고 급기야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작가 요더, 쓰레기 산의 일부가 되었을 지도 모를 요더의 원고를 구원하고 그의 가능성에 대한 확신으로 끝까지 그를 후원한 편집자 이본 마벨, 냉철한 직관과 뛰어난 이성으로 비평가로서는 명망을 떨치지만 소설가로서는 참패한 비평가 스트라이버트, 진정 책을 사랑하고 작가를 이해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독자 제인 갈런드, 4인의 시선은 제각각이지만 때로 중첩되기도 하고 첨예하게 엇갈리기도 하며 소설을 끌어간다.

‘지루하며 감상적이고’, ‘등장인물들은 생기가 없고’, ‘액션은 축 늘어지며 플롯은 응집력이 떨어진다’는 스트라이버트의 혹독한 비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고전적 글쓰기에 전력을 다하는 요더는 자신이 탄생시킨 인물들과 별다를 것 없이 너무나 진부하고 평면적이다. 잠깐의 휴식으로는 최적이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지루하고 또 지루해서 돌멩이라도 하나 던져넣고 싶은 충동 일으키는 잔잔한 호수같다고나 할까. 반면에 스트라이버트는 현대소설의 인물상을 여실히 나타내는 매우 입체적인 인물이다. 그처럼 고양된 정신의 소유자가, 자신에게 있어 최고의 선생이자 은밀한 애인이기도 했던 데블런 교수의 죽음으로 엄청난 상실감을 느끼고, 요더가 자신보다 먼저 그렌즐러 이야기에 착수한 것과 그보다 자신이 더 나은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오만으로 요더에 대해 악감정을 품기도 하고, 자신의 수제자인 티모시가 제니 소이킨이라는 매력적인 여성과 사귀는 것을 알고 묘한 질투심으로 둘을 떼어놓기 위해 고뇌하기도 하는 등, 인간의 심리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성격을 제대로 형상화한다.

이본 마벨은 일에 있어서는 혀를 내두를 만큼 철두철미하고 주도면밀하며 활화산같이 열정적이고 냉철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덜 자란 아이같다. 번득이는 기지로 말은 잘하지만 사상을 언어로 형상화시키는데 번번이 실패하고 마는 베노와의 동거는 이본에게 있어 하나의 장애다. 사랑에 빠진 여성들은 왜 모두 백치가 되는 것일까. 대체 그들의 활기 넘치는 이념과 날카로운 직관과 경이로운 유머들은 어디 가고 비실거리는 굴종만 남게 되는 것일까. 베노가 삶을 포기하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내가 이상한 것만은 아니다.

스트라이버트와 그의 선생인 데블런과의 대화는 일면 타당하기도 하지만 어쩐지 수긍하고 싶지 않은 반감을 일으킨다. 소설은 유형적 인물에 대해서가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물에 대해서 써야 한다는 것, 비평가와 작가의 의무란 사회와 반대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라는 점에는 백 번 동의하지만 ‘진정한 예술이란 고양된 수준에서 동등한 사람들끼리 의사 소통하는 것’이라든가 일반 대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엘리트들을 위한 소설을 써야 한다는 식의 파시즘적인 사고 방식을 대하는 순간에는 번번이 심장이 딱딱하게 굳는다.

소설에 사회적 리얼리티가 살아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꼭! 문학작품이 사회참여적인 주제로 쓰여야 한다거나, 현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거나, 심오한 철학을 다루어야 한다거나, 개인의 감상이나 고전적인 취향에 대해 노래한 것들은 쓰레기일 뿐이라거나 하는 사고방식은 갓 쓴 양반처럼 고지식하고 편협하여 지양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자신의 생각을 미처 가치관이 정립되지도 않은 이들에게 강요한다면 그것은 파시즘을 재생산하는 꼴이 아니고 무엇이랴. 누군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글을 보내온다면, 그리고 그것에 대한 평을 요구해 온다면 나는 말해줄 테다.
- 예, 나는 그것을 읽었습니다. 이것이 나의 감상입니다 (P45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