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갭의 샘물 - 눈높이 어린이 문고 5 눈높이 어린이 문고 5
나탈리 배비트 지음, 최순희 옮김 / 대교출판 / 199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극심한 환경오염과 쾌속으로 발전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느끼게 되는 정신적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평균수명은 1900년의 47.3세에서 30년 가량이 늘었다고 한다. 과학과 의학의 발달은 각종 항생제와 치료제의 개발로 이어졌고 이러한 약품들이 인간의 주된 사망요인이 되었던 폐렴, 결핵, 장염과 매독이나 임질 등의 성병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보인 탓이다. 이렇듯 평균수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영생에 대한 욕망은 '게놈 유전자 지도'를 연구, 완성하기에까지 이른다.

대교출판사가 펴낸 '트리갭의 샘물'은 죽음과 영생이라는, 아이들이 읽기엔 조금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언제 어느 때 직,간접적으로 죽음과 맞닥뜨릴 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죽음이 그다지 두렵고 공포스러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넌지시 일러줄 수 있어 의미있다.

이 책은 숲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샘물을 마신 뒤 영원불멸의 삶을 살게 된 '터크' 가족과 그 가족과 조우하게 된 열한 살 짜리 위니가 겪은 일들을 주되게 다루고 있다. 이렇듯 허황한 소재를 채택하여 동화적 요소가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고 난 후 잠깐동안이라도 사색의 시간을 갖게 하는 건, 작가 나탈리 배비트가 제시와 터크라는 두 인물을 통해 영원한 삶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두 가지 견해를 내밀어 보이며 육체적 고통도 없고 그 어떤 움직임이나 변화도 없이 영원히 사는 것이 과연 행복한 삶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제시는, 인생은 이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온갖 것을 구경하고 즐기는 것이며 그러한 삶이 얼마나 근사한 것인가에 대해 열일곱 살의 희망찬 어조로 말한다. 반면 제시의 아버지 터크는 자연의 이치란 것은 항상 새로운 것이 오고 자라나고 변화하며 움직여가다가 또 다시 태어나는 새로운 생명에게 자리를 내어 주는 수레바퀴의 움직임 같은 것이고, 진정한 행복이란 바로 그 질서의 일부, 수레바퀴의 조각이 되어 흘러가는 것일진대 그 순환의 고리에서 빠진 채 돌멩이처럼 세상에 놓여진 삶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에 대해 고통스럽게 토로한다.

인생이 끝도 없이 길기만 하다면 과연 우리는 하루하루를 의미있는 것으로 채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갈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삶은 유한하고 되돌릴 수 없으며 두 번 다시 올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좌절을 극복하고 빛나게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재충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노란 옷의 남자'는 영생과 생명연장의 도구를 상품화시켜 물질적 풍요를 이루고자 하는 욕망으로 가득한 인물로 대변된다. 그는 터크 가족의 비밀을 알아채고, 위니를 납치했다는 혐의를 씌워 샘물의 위치를 알아내려고 하지만 터크의 아내 '매'의 일격으로 결국은 영생의 문턱에서 죽음을 맞는다. 배비트는 남자를 죽이는 것으로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헛되고 간악한 것인지에 대해 은근슬쩍 짚고 넘어간다.

'트리갭의 샘물'은 성장도 변화도 죽음도 없이, 고여 있는 물처럼 늘 반복되는 일상은 얼마나 지리멸렬하고 덧없는 것인가? 순환이라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인간을 불사의 신으로 만들려는, 유전자 혁명이라고도 불리는 게놈의 발견, 이러한 생명공학의 발달이 과연 인류에게 행복하고 유익하기만 한 삶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반문을 갖게 한다. 이러한 반문에 작가는 터크의 목소리를 빌어 대답한다.

"끝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야. 우리 가족처럼 영원히 사는 것은 아무 쓸모가 없어. 죽는 것 없이는 사는 것도 없어.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것, 이것은 그러니까 사는 것도 아닌 거야. 우리 가족은 그저 있는 거야. 길가에 놓인 돌멩이처럼 그저 존재할 뿐이야."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며 단순히 '있을 법 하지 않은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이나 상상력만 충족시키는 것이 된다면 아쉬운 책읽기가 될 것이다. 미성숙의 아이들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어른의 몫이다. 좋은 책을 사주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함께 읽고 읽은 후의 감상을 서로 나누는 것이 아닌가 한다.

혹 아이들이 주제를 비껴가더라도 "그게 아니고..." 식이 아닌 "난 이렇게 생각했어..." 식으로, 슬며시 아이의 생각에 책갈피 하나를 꽂아두는 것이 좋으리라. 내 존재가 유성처럼 스러지고 난 뒤에도 내 존재의 일부가 세상과 하나되어 호흡하고 미소짓고 탄탄한 걸음을 걷는다니, 죽음이 절멸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지는, 수레바퀴처럼 돌고 도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될 아이들, 얼마나 가슴 뛰고 황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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