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 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황보석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2년 만에 만난 친구들과 이런저런 쓰잘데기 없는 수다들로 맥주잔을 비우던 게 꼭 보름 전이다. 뭉치자 빠샤! 구호를 외치며 강화도 행을 결정한 것이 새벽 1시쯤이었고, 일어나? 말어? 이불 속에서 한 시간 남짓 뼈를 옭죄는 고뇌 끝에 자는 게 남는 거다 결심을 굳힌 건 아침 8시였으며, 겨우 겨우 침대에서 몸을 빼낸 건 해가 중천을 넘어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오후 무렵이었다. 핸드폰을 확인했지만 부재중 전화는커녕 메시지 한 줄 남겨있지 않은 터라 은근히 부아가 솟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모닝콜을 하지는 못할지언정, 갈 거냐 아니냐 가타부타 말 한 마디 없는 녀석들이 괘씸하기만 했다. 그렇게 5분을 괘씸해하다가 난 눈 뿌옇게 친구들이 고마워졌다. 우린 서로를 너무도 잘 알았던 것이다! 가지 않기로 결정했을 놈에게 괜히 전화 걸어서 겸연쩍음과 미안함으로 몰기 싫었던 게지, 기특한 녀석들. 아무튼 요즈음의 귀찮음병은 대책이 없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다는 말은 실로 명언이다. 이런 와중에 그래도 근근이 책읽기가 이어진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나는 무위를 견딜 수 없는 것일까? 귀찮음병으로 시작된 일상의 무미건조와 나태와 방종에 대한 책임을 책읽기에 전가하려는 것일까?

페루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궁둥이인지 궁뎅이인지 하는 책이 요사스럽기 그지 없다는 평에 혹해 인터넷 서점을 뒤졌으나 절판이란다. 롤랑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를 친구에게 줘버리고 절판 당한 이후 최고로 갑갑하다. 읽고 싶은 때에 읽지 못하게 하는 건 얄미운 당신이다. 어쩔 수 없지,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한 사연이라도 읽는 수밖에.

일단, 이 책은 무진장 재미있다. 구성도 탄탄한데다 요사의 장난질이 어찌나 깜찍한지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다. 책 읽는 간간이 요사의 요사스런 눈빛(정말이다!)을 넘겨다 보며 잔잔한 소름 쓸어내리는 일도 즐겁다. 갈 수록 서사에 주목하게 된다. 물론 문체의 매혹을 떨칠 수는 없다. 하지만 일군의 우리나라 여성작가들에게 식상해진 건 사실이다. 그들에겐 비틂이 없다. 발가벗겨진 살덩어리만 보일 뿐 움직일 때마다 살짝 살짝 드러나는 은밀한 유혹이 없다. 지루할 정도로 심각하고 짜증날 정도로 아름답다. 너무 촘촘해서 좀체로 뇌의 한 부분을 툭 끊어놓고 흐느적거릴 짬이 없다. 변화가 필요하다.

이 책은 실제와 허구가 샌드위치식으로 정렬되어 있다. 그러니까 요사가 훌리아 아주머니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기까지의 자전적 이야기와 라디오 방송작가인 페드로 카마초가 쓴 드라마 대본을 윤색한 허구가 하나의 챕터를 건너 뛰면서 진행된다. 하지만 이 미련 곰탱이는 그것을 1권의 끄트머리 쯤에야 눈치를 챘다는 것인데, 이쯤이면 정말 날라리 독자라 자부해도 될만하지 뭔가. 요사의 장난 놀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카마초의 드라마 대본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뒤섞기도 하고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내기도 하면서 카마초가 혼동하는 부분이란 친절한 설명 하에 주석을 달거나 방점을 찍어두기도 한다. 깜찍하기도 하여라. 읽는 중간중간 작가의 재기발랄함에 코가 막힌다. 덕분에 휴지를 한 다라이 정도 풀어냈다. 고 하면 거짓말이고, 아무튼 유쾌한 작가인 건 분명하다. 요사의 다른 소설들도 챙겨봐야겠다는 다짐으로 불끈!

그런데 그 날, 친구들은 강화도에 다녀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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