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은 모두 12시가 넘은 새벽에 나가서 순두부찌개를 먹었다. 저녁까지 한끼밖에 안먹었다는 핑계를 꼭 말하고 싶다. (사실 난 밤에 먹는걸 참 좋아한다. 아주 행복하다) 이 동네는 거의 모든 가게가 밤이 되면 술집과 고깃집을 겸하기 때문에 회식손님들이 몇몇 있었다. 회식이 없는 삶은 정말로 좋은것이다. 한번도 직장생활을 해본적이 없다는 하루키는 모르겠지만이라고 쓰고보니 그는 회식을 하는 술가게 주인이었으니 역으로 더 잘 알겠다.
어제 본 회식팀은 중소기업 사장으로 보이는 인물과 영업사원으로 보이는 다양한 연령대의 대여섯명이 해바라기처럼 사장만을 바라보는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사장은 정말이지 쉴새없이 떠들어댔는데 내용을 요약해보면
- 노무현은 나쁜 놈. 강남사람 죽이려함.
- 노무현은 상고출신이라 열등감 있음.
- 나도 서울대 못나왔지만, 서울대 출신들이 10시간씩 일 할때 나는 14시간씩 해야지. 이런 자세로 살고 있음. 니들도 이러면 못할게 없음.
- 한국 짱. 최고. 세계가 우리를 주목함. 이렇게 성장하는 나라가 어디있음?
- 자본주의 짱. 소련은 공산주의라 망하고 중국도 자본주의 해서 잘 삼. 그래서 노무현 나쁜 놈.
라는 대략 정신이 멍해지지만, 우석훈이 말하는 <도곡동 길거리에 가면 치이는 수 많은 우파 부자계의 장삼이사>들의 인생철학과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볼 수 있겠다. 모든 중소기업이 이렇진 않겠지만, 나는 어제 작은 회사의 단점을 하나 추가했는데, 소기업엔 나름대로 골목대장이 된 사장이 있고 그 사장과 물리적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가끔은 사원들이 이러한 개똥철학을 소화해내야 하는 것이다. 큰 회사에선 부장님도 회사원이기 때문에 그냥 다들 살기가 힘들지… 수준이라 그나마 정신건강에 좋은듯 하다.
나는 똑같은 논리를 연구실 회식에서 (정말이다) 가끔 들었는데, 우리 교수님은 이념(저 따위 논리에 이 단어는 너무 과분하지만)적인 발언을 안하시는 분이었고 주로 같이 회식을 하던 옆 방 교수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학생들이 노무현이를 찍어서 나라가 이 꼴이라고.
우리들은 그 교수가 없을때 주로 '김사장' 이라고 불렀는데 – 어느학교나 공대엔 사장님들이 꼭 있다 – 김사장도 강남에 살고 (여기서 가깝기 때문에 가끔 나는 식당 등에서 김사장 닮은 사람을 보면 긴장한다) 아들이 서울대에 못갈까봐 걱정하며 외제차야 기본으로 두 대 있지만 학교에는 노교수님들도 있으니 국산중형차를 세컨차로 타고 다니시는, 나름대로 고생하시는 분이다.
(근데 김사장은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다. 진심으로, 내가 대학에서 본 교수들 중 가장 똑똑한 사람이었다. 이것이 안타까운 점이다. 김사장은 정말 똑똑하기 때문에 노무현 운운하는 개똥철학을 읊지 않고 머저리처럼 권위를 내세우지만 않으면 – 그는 자주 권위를 내세웠다 – 조국…정도는 무리라도 드라마 카이스트의 천재교수처럼 보일수도 있었다. 왜 머리좋고 능력 있는 쿨한 교수를 차버리고 사장님이 되버린걸까? 그는 이미 테뉴어였고 돈은 똑같이 벌텐데)
다시 순두부찌개집에서 본 사장님에게로 돌아와서. 사장님 논리 중 내 이목을 끈 것은 마지막 발언이다. 바로 자본주의 짱과 공산주의 소련의 몰락. 왜냐면 저 정도 병신인물은 아니더라도, 저 정도로 무식하진 않더라도 자본주의 짱과 공산주의 몰락은 더 흔히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중년을 지나 황혼기까지, 자기 인생을 실패라곤 생각하지 않는 어른들의 절반 이상은 (죄송하지만, 우리 아버지도, 아버지 친구들도, 김사장도, 이념적인 언급을 안하는 우리 교수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다. 노무현 운운, 한국이 짱인지는 각자 다르지만 자본주의-공산주의 논리는 대략 쉽게 정리할 수 있다.
- 자본주의를 아주 쉽게 정의한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다 자기가 잘 살고 싶다.
- 똑같이 나뭐먹자는게 공산주의. 근데 소련은 망했음.
- 공산주의 망했는데 공산주의 할꺼야? 하자는 거야 뭐야?
역시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 공산주의의 스펙트럼이 아주 넓다. 그리고 소련이 망했다는데 큰 의미를 둔다. 내가 그 시절에 안 살아봐서 모르겠지만 소련이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 알 수 있다. 마치 소련만 망하지 않았으면, 공산주의가 해볼만 한 것 같이 들릴 지경이다. 하루 14시간 일하자는게 자본주의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그 논리를 설파하는데 무려 소련까지 들먹여야 한다니 사장님도 하기 어렵다.
그런데 어른들은 소련과 미국을 꽤 쉽게 들먹이는걸 보면 – 지금 보기에 이건 논리의 적합성을 떠나서, 국제 정세를 논하는것도 아니고 이민이나 유학생활을 논하는것도 아닌 개개인의 대화에 소련이나 미국이 등장하는건 좀 손발이 오그라드는 일이다. 아 몰라 그냥 창피해 – 옛날엔 우리보다 더 큰, 국가적인 삶을 살았나보다.
결론은 두 가지. 사장님. 노무현 나쁜놈까진 그래 그렇다치고, 한국 짱은 좀 창피하지 않나효? 어차피 돈 있는데 우아하게 이 나라는 글러먹었어도 나름 시크한데…
야식먹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