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가 살고자 했던 이유는 크게는 어머니처럼 아직도 써야 할 것이 너무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사이드도 그러기 위해서 얼마나 큰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는 문제삼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가 받았던 고통이란..... 사이드는 마지막 2년 동안 받은 치료로 위가 임신 말기 여성의 배만큼 부풀어 올랐다. 통증은 말로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어머니가 수 없이 말했듯이 (사이드는 어머니가 골수이형성증후군 판정을 받기 몇 달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렇게 연장한 기간 동안 그가 해낸 작업을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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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는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니체의 일기 가운데 햇빛 환한 분주한 거리를 걸으면서 떠들썩하게 길을 메운 인파의 활기찬 모습을 한편으로는 부러워하고 한편으로는 언젠가는 죽어 없어질 텐데 저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용감하다고, 심지어는 기특하게 여기는 대목이 나온다. 이 일기가 나에게 어떤 위안을 주었는데, 왜 그랬는지는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어머니는 유방암으로 슬로언-캐터링에서 화학요법을 받던 시기에 쓴 일기에 "명랑하라. 그리고 감정에 휘말리지 말라. 차분하라"고 다짐했다. 그러고는 바로 덧붙였다. "슬픔의 골짜기에 이르렀을 때는 날개를 펼쳐라."
어머니의 죽음은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결국 어머니의 이 말이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저 케케묵은 진리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슬픔의 골짜기에 이르렀을 때는 날개를 펼쳐라.-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