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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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을 맞추느라 고생했다. (정말이다.)

언제나 나에게 빨간 책 만을 좋은 책 만을 추천해주는 좋은 지인들은, 꽤 오랬동안 나에게 이 책을 권해왔다. 그런 추천을 군말없이 잘 받아들이는 편임에도, 왠일인지 이 책에는 특별한 이유없는 완고함을 보이며 시간을 끌어왔는데, 난 지난 겨울이 되어서야 이 책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옳았다. 그 이후로 난 모든 사람을 볼 때 스밀라를 기준에 넣는 버릇이 생겼으니까.

   
  그 외에 다른 도와줄 일은 없냐고 물었다.

  "있어요."
 
  나는 말했다.

  "잘 먹고 잘 사세요."
 
   

 

'독립적인 사람이 좋아' 라고 꽤 오랬동안 주장해 왔다. 하지만 나의 이 '독립성' 이란 기준은 참으로 애매모호하고 들쭉날쭉 한데, 경제적인 독립성을 의미할때도 있고 연애나 인간관계 혹은 학력이나 직장에 대한 독립성으로 변모할 때도 있다. '자신이 의지하고 있는 자신이 아닌 모든것' 이라고 말하면 거창하겠지만, 실제로 이 성향이 내가 사람에게 (비)호감을 느끼는데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함을 스스로 알고 있다. 난 조금도 독립적이지 않은 사람에게도, 조금도 독립적이지 않은 면에서 호감을 느끼는 자신을 자주 본다.

 

이 '독립성' 은 점점 교묘하고 유치한 멜랑콜리로 변모한다. 나는 저 사람이 좋아, 그런데 너무 회사에 목매고 있잖아. 음. 뭐 어때. 그래도 좋아. 저 분은 다 좋은데 부모님에 너무 의지하는군. 그래도 난 저 사람이 좋은걸.  

스밀라는 나에게 이러한 멜랑콜리를 허용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만이 납득하지 못한 한 아이의 죽음에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판단으로, 자신의 결정으로 행동한다. 자신과 상대방을 몰아붙이고, 약을 올리며 수를 쓰고, 협박을 받고, 긴장하면서도 사냥을 위해 총을 흔들고, 물에 빠지고, 싸운다. 그리고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냉담해질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긴장할 수는 있겠지만 냉담해질 수는 없다. 삶의 본질은 온기다.  
   

 

사람은 독립적이면서도 사랑에 빠질 수 있고, 우울하면서도 - 아니, 우울하기 때문에 - 열정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Zooey Glass 의 "좌절감에 빠질 수 있으면 그 힘을 사용하여" 는 옳다.) 우리가 스밀라 만큼 충분히 인간적이라면.

이 책이나 스밀라에 대한 나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리얼리티가 있어 보이고 하드보일드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환상과 허구일 뿐이라는 - 필립말로와 마찬가지로 -  얘기를 들은적이 있다. 하지만 스밀라를 보다보면 '마땅히 누구라도 이러하지 않겠는가' 라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사실, 원래, 당연히 이만큼 인간적이고 독립적인 온기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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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07-06-22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립적이라거나 자기 세계가 분명하다고 해서 꼭 온기가 없는 건 아니겠지요. "이만큼 인간적이고 독립적인 온기"라는 말씀이 마음에 남네요. 저도 이 책이 좋아요. : )

비로그인 2007-06-22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추천받았는데 꾸역꾸역 안 읽는 책이죠 ㅋㅋ
잘먹고 잘사세요!
제가 얼마전 누구에게 했던 말인데...
읽고 싶어지네요 :)

다락방 2007-06-24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이 책보다는 주이님의 리뷰가 훨씬 근사한데요. 전 재미없게 읽었거든요. 어쩌면 책을 읽기 훨씬전에 영화를 먼저 봤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스밀라가 '줄리아 오몬드'라니, 아, 정말 미쓰캐스팅이지요? 제겐 늘 우울했던 영화였고(늘 겨울이었으니) 몇년후에 읽었던 이 책은 그래서인지 다른 여성캐릭터를 넣을수가 없어서 고정된 이미지를 줬어요.

그나저나 주이님.
리뷰, 참 잘쓰시는군요!

에디 2007-06-24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세상에 스밀라가 '줄리아 오몬드' 라니!!!


...............우선 구글에서 좀 찾아보구요.
..이렇게 생기셨군요. 영화를 안봐서 모르겠는데 (봐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말씀하신것 처럼 영화로는 너무 우울할 것 같아서)
음. 미스캐스팅이 맞을 것 같아요.


좋은 말씀 고마와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