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8:15-17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

영국에 사는 어떤 청년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청년은 재산을 다 털어 뱃삯을  지불하고 남은 돈으로 식품을 구입했습니다. 드디어 배가 힘찬 뱃고동 소리와 함께 대서양을 향해 물살을 헤치고 나갔습니다. 청년은 드넓은 바다를 볼 때마다 새로운 희망이 솟아올랐습니다. 그러나 식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릴 때는 기분이 침울해졌습니다. 다른 승객들은 여유가 있어 식당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사먹었으나 청년은 돈이 없어 한쪽 구석에 가서 말라비틀어진 빵으로 허기를 달랬기 때문입니다. 청년은 그럴 때마다 지금은 비록 가난하지만 나중에는 크게 성공하리라 다짐했습니다. 마침내 배가 미국 동부해안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승무원이 청년에게 다가와 배를 승선해 준데 대해 감사를 표시하고 혹시 항해 중에 기분 나쁜 일이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청년은 없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승무원은 안심하며 “그런데 왜 식당에 오셔서 함께 식사를 드시지 않았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청년은 힘없이 “뱃삯을 지불하고 나니까 음식을 사먹을 돈이 없어서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승무원은 깜짝 놀라며 “손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손님이 사신 뱃삯에는 하루 세끼 식사비용이 다 포함되어 있는데요.” 라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청년이 뱃삯에 식사비용이 포함 된지를 몰라 맛있는 식사를 하지 못했듯이 우리도 구원은 받았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를 몰라 누리지 못하며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는 언제 주어질까요? 하나님은 요한복음 1장 12절을 통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모시는 순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를 받으셨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마귀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포항시장의 아들이 있다면 포항에서는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포항시장인데 누가 건드리겠습니까? 우리는 포항시장보다 높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입니다. 왕자요 공주입니다. 우리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인데 이 세상에서 누가 우리를 건드리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시시한 사람이 아닙니다. 대단한 사람입니다. 존귀한 사람입니다. 옆 사람보고 이야기 합시다. 당신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존귀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인데 그렇다면 목사님은 누구일까요? 목사님은 하나님의 종이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니까 목사님을 부려먹어도 될까요? 아닙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하나님의 대사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20절을 통해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라고 말씀합니다. 영어로는 Now then we are ambassadors for Christ 입니다. 사신은 영어로는 ambassador 입니다. 대사입니다. 대사는 한 나라를 대신해 외국에 파견된 최고급 외교사절입니다. 목사님은 하늘나라에서 파견된 외교사절입니다. 외교사절은 치외법권을 가집니다. 그 나라 법의 지배를 받지 않아요. 만약 대사를 건드리면 그 나라와 외교문제가 일어납니다. 마찰이 생깁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세상의 법으로 판단 받지 않는 하나님의 대사인 목사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면 하나님과의 외교문제가 생겨서 하나님과 사이가 나빠지게 됩니다. 하나님과 사이가 좋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아시겠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는 무슨 권세일까요? 말의 권세입니다.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무엇으로 창조하셨지요?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창1:3) 하나님은 요한복음 1장 14절을 보면 o o 이 o o 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라고 말씀하지요? 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입니다. 성광교회는 수준이 높네요. 예수님은 말씀이셨는데 사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성난 바람이 그치고 사나운 물결이 잔잔해졌습니다.(막4:39) 말씀으로 제압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양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친자는 누구죠? 예수님입니다. 우리나라는 친자와 양자를 차별하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양자도 친자와 똑같은 권리를 가졌습니다. 똑같은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친자인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양자인 우리도 말의 권세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말의 권세를 받았으니 서로를 축복해 주십시오. 우리 옆 사람을 축복합시다. 당신은 축복의 사람입니다. 당신은 우리 교회의 골치 덩어리 아니 축복 덩어리입니다. 여러분 가만히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의 입에서 긍정적인 말이 많이 나오나 부정적인 말이 많이 나오나? 부정적인 말을 하면 우리는 말의 권세를 받았기 때문에 부정적인 결과가 나옵니다. 우리 아들 떨어지면 어떻게 해! 그러면 떨어지게 됩니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자녀에게 망할 놈이라고 욕하지 말고 흥할 놈이라고 욕하세요. 그러면 흥하게 됩니다./ 우리의 말에도 권세가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대사인 목사님의 말씀에는 얼마나 많은 권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창세기 12장 3절을 통해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을 축복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복을 내리시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저주를 내리십니다. 목사님이 축복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복을 내리시고 목사님이 저주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저주를 내리십니다. 목사님은 저주를 안 하시지만 어떤 교인은 사사건건 시비를 일으켜서 목사님을 기도하게 만드는 교인이 있고, 어떤 교인은 주님의 몸인 교회를 잘 섬겨서 목사님이 기도해주고 싶은 교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목사님을 기도하게 만드는 교인입니까? 아니면 목사님이 기도해주고 싶은 교인입니까? 여러분은 말씀의 권세를 받으신 목사님의 입에서 축복 기도가 절로 나오게 신앙 생활하십시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인 말의 권세를 어떻게 누리며 살까요? 첫째, 마귀를 대적하며 사십시오. 하나님은 요한일서 4장 4절을 통해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그들과 세상에 있는 자’는 사탄입니다. ‘너희 안에 계신 이’는 하나님입니다.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를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이 사탄을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사탄을 이겼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탄을 이긴 줄도 모르고 겁내고 있으니까 마귀가 도망가지 않고 공격하려고 기회를 엿보는 겁니다. 어떤 목사님이 길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아파트에서 나오고 이어서 작은 개 한 마리가 졸졸 따라오더랍니다. 아주머니가 집으로 돌아가라고 나무라도 개는 꼬리를 흔들 뿐 돌아가지 않더랍니다. 그 사이 버스가 도착했고 아주머니가 버스를 타려는데 개도 버스를 타려하자 아주머니가 발로 뻥 차며 고함을 치자 개가 깨갱거리며 돌아갔다고 합니다. 우리가 담대하게 꾸짖으면 마귀는 도망가게 돼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고보서 4장 7절을 통해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을 자꾸 낙심시키려는 마귀를, 여러분의 가정을 교묘하게 해체하려는 마귀를 쫓아내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를 가졌기 때문에 마귀야 물러가라고 명령하면 도망갑니다./ 둘째, 병이 나았다고 믿고 선포하십시오. 모든 병을 마귀가 주는 것은 아니지만 마귀는 병을 통해 장난칩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서 53장 5절을 통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습니다. 분당 풍성한교회를 다녔던 서기석 성도님의 간증을 보니 바이러스성 콧물감기를 앓아 콧물을 닦아내느라 화장지 한두 통을 금방 허비했는데 베드로전서 2장 24절 말씀처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라는 말씀에 의지해 병이 나았다고 믿고 병아 떠나라고 선포했더니 회복됐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를 가졌기 때문에 그동안은 하나님 고쳐주세요 하고 애원했지만 이제부터는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므로 나의 병은 나았다고 믿고 입으로 선포하면 하나님이 낫게 해 주십니다./ 셋째, 물질이 마르지 않도록 기도하십시오. 저는 개척교회 목사다 보니까 돈을 수중에 쥐고 살지 않고 돈이 필요할 때마다 성경구절 4 구절을 암송하며 살아갑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부요하신 예수님이 가난해 진 것은 가난한 나를 부요하게 하심이지, 빌립보서 4장 19절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풍성하신 예수님이 나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지, 로마서 8장 32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 하나님은 하나뿐인 예수님도 내주셨는데 다른 것은 당연히 주시지, 그리고 마태복음 6장 33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내가 하나님의 일을 먼저 하면 하나님은 내 생활을 책임져 주시지 하고 말씀에 의지하여 하나님을 압박합니다. 그러면 말랐던 샘에서 물이 다시 고이듯이 하나님께서 통장을 채워주시더라고요.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침에 나가 만나를 주울 때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않았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하지 않고 먹을 만큼만 거두었다고 하셨던 것처럼(출16:18) 쓸 만큼만 주시더라고요. 저의 목회는 아직 출애굽기 16장에 머물고 있나 봐요. 더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한다면 주께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23:5)라고 하셨던 시편 23편까지 진전될 것 같아요.

마크 트웨인이 쓴 세계명작 중에 [왕자와 거지]가 있습니다. 이 책은 영국 헨리 8세가 다스리던 시대에 백성들의 황폐한 생활을 그린 풍자소설인데 같은 날 태어났고 쌍둥이처럼 닮은 에드워드 왕자와 거지 톰이 옷을 바꿔 입고 왕자는 거지가 되고 거지는 왕자가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거지처럼 비참하게 살았으나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는 왕자처럼 존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거지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한쪽 귀퉁이에서 손으로 밤을 먹어서야 되겠습니까? 왕자처럼 품위 있게 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신분이 바뀌었으니 수준도 바뀌어야 합니다. 성광교회도 지하교회였을 때와 근사한 4층 교회 일 때가 다르지 않습니까? 우리는 왕자와 공주가 되었으니 말의 권세를 가졌으니 마귀가 유혹해도 말씀으로 쫓아내고, 질병이 생길 때도 말씀을 의지하고, 가난이 찾아와도 말씀으로 명령하면 하나님께서 들어 주십니다. 우리 성광 교인들도 흥해에 사는 다른 교인들은 나는 죄인입니다 하고 돈을 주우려고 고개를 숙이며 다니더라도, 썬 크림을 더 바르더라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를 외치며 목에 힘을 주고 다니십시오. 여러분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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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6:7-13 둘씩 보내시며 

서론
멘토링 전문가인 팀 엘모어 박사는 [위대한 멘토들]에서 학습 방법에는 그리스식 모델과 히브리식 모델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스식 모델은 선생님이 가르치고 학생들이 듣는 교실형 모델인데 정보를 전달하는데 효과적입니다. 학생들은 수동적으로 듣죠./ 히브리식 모델은 선생님이 시범을 보여주고 학생들이 따라해 보는 코치형 모델인데 현장 훈련을 중요시합니다. 학생들은 능동적으로 참여하죠. 선생님은 지식을 전달하는 그리스식 모델이 수월하겠지만 학생들은 현장을 경험하는 히브리식 모델이 효과적이라고 합니다.(13쪽) 

본문 접근
오늘 본문은 히브리식 모델의 전형적인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4장 23절과 9장 35절을 통해 회당에서 가르치시며(Teaching),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Preaching),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Healing). 예수님은 시범을 보여주시고 나서 열두 제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하고 병을 고쳐보라고 내보내셨습니다.

주제의 정의
예수님은 12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복음을 전하는 자세를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어떤 자세로 복음을 전해야 할지를 배우게 됩니다. 왜 자세가 중요할까요?

주제의 필요성
운동선수들은 기본기를 튼튼하고 배우고 나서 그 기초 위에 기술을 배운다고 합니다. 훌륭한 선수(Excellent athlete)는 기본기(basics)가 탄탄한 선수(athlete)입니다. 기본기(basics)가 없이는 참된 진보(progress)가 불가능(impossibility)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전도의 기본기를 배우고 나서 전도 현장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전도해야 할까요?

실천 방법론
첫째, 협력해서 전도해야 합니다.(막6:7) 예수님은 12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둘씩 짝지어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70명의 제자들을 보내실 때도 둘씩 짝지어 보내셨습니다.(눅10:1) 왜 둘씩 보냈는가 하면 유대인들은 두 명의 증인을 요구하였습니다.(신17:6) 한 명은 증인으로 성립되지 않았고 두 명이라야 증인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둘씩 다니면 힘들 때는 서로 격려해주고 어려울 때는 서로 위로해 줄 수 있습니다. 앞의 문맥(막6:1-6)을 보면 예수님이 고향인 나사렛에서 배척을 받으시고, 뒤의 문맥(막6:14-29)을 보면 세례자 요한이 헤롯왕에서 죽음을 당합니다. 전후 문맥을 보면 제자들이 전도할 때에 박해가 닥칠 것을 암시합니다. 둘씩 짝지어 갔기 때문에 핍박을 받더라도 나누게 되니 절반으로 줄어들고, 기쁨이 오면 더하게 되니 두 배로 늘어납니다. 두 사람이 전도할 때 한 사람은 전도하고 또 한 사람은 기도하고 이렇게 협력해서 전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로마서 8장 28절을 통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길 바라십니다.

둘째, 전적으로 신뢰하며 전도해야 합니다.(막6:8-9) 예수님은 12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걸을 때 쓰는 지팡이와 신고 다니는 신발 이외에는 아무 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여행을 다닐 때 짚고 다니는 지팡이와, 도중에 먹는 양식과 물건을 담는 배낭과, 돈을 넣는 전대와, 발을 보호하는 신발과, 밤에 덮는 두벌 옷을 가져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도하는 게 너무나 시급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준비물만을 가져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2제자들은 자신들이 가져간 게 없으니 하나님의 돌보심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유랑할 때 아침에는 만나를 내려주셨고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보내주셨습니다. 만나를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않았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알맞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를 그릿 시냇가로 보내 아침과 저녁으로 까마귀를 통해 떡과 고기를 날라다 주셨습니다. 그릿 시냇가가 마르자 사르밧 과부에게 보내 공궤를 받게 하셨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통의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았고 병의 올리브기름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마태복음 6장 33절을 통해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전도하는데 전념한다면 생활을 책임져 주십니다. 우물을 퍼내도 새로 솟아나듯이 하나님은 우리가 쓰더라도 통장의 잔고를 채워주십니다.

셋째, 지혜롭게 전도해야 합니다.(막6:10-11) 예수님은 12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제자들을 영접하면 거기를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들어가서 유숙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손님을 정성껏 대접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 세 명을 환대했는데 그 중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창18:1-15)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롯도 나그네 두 명을 환대했는데 그들은 천사들이었습니다.(창19:1-22) 천사들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다고 롯의 가족을 피신하라고 알려주었습니다. 크리스틴 폴 교수는 [손 대접]에서 대부분의 교회 역사에서 손 대접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의 중심이었으나 오늘날은 많이 사라졌다고 안타까워하면서 하루속히 회복해야 할 전통이라고 역설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빈손으로 전도 여행을 떠났지만 합당한 사람들을 통해 숙식을 제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논쟁하지 말고 거기를 나가면서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맨발에 신발(샌들)을 신다보니 먼지가 많이 묻었습니다. 먼지를 떨어버리는 것은 다시는 상종하지 않겠다는 상징행동이었습니다. 이방인처럼 취급하겠다는 모욕이었습니다. 복음을 거부하면 모든 책임은 그 사람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실천 결과
12제자들은 나가서 회개하라고 전파했습니다.(막6:12) 세례자 요한도(막1:4), 예수님도 회개하라(막1:15)고 설교했습니다. 회개는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겁니다. 제자들은 회개하라고 설교도 했을 뿐만 아니라 능력도 행했습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제압하는 권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막6:7) 제자들은 많은 귀신을 쫓아냈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쳤습니다.(막6:13) 유대인들은 올리브기름을 병을 치료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전도는 하나님과 사탄과의 영적 전쟁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가지고 나가면 마귀는 굴복하게 됩니다.

결론
윌리엄 부스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 주위 사람들에게 전도를 했는데, 한번은 술에 취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사람은 빈정거리면서 “여보시오, 내가 정말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면, 당신처럼 이렇게 소극적으로 전도하지는 않겠소. 나라면 더 열정적으로 전도할거란 말이오.” 라고 말했습니다. 윌리암 부스는 이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윌리암 부스는 그 사람 말대로 더 열정적으로 전도하기 위해 구세군을 창설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열정적으로 전도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세상에 위축돼 입을 다물고 계십니까? 예수님은 오늘도 죽어가는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고 전도현장으로 내보낼 일꾼들을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나가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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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목 단원평가 5-2 - 전국 초등학교 단원평가 모음집, 2009
천재교육 편집부 엮음 / 천재교육 / 200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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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와 예체능이 없어 아쉽지만 국수사과를 총정리하기에는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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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목 단원평가 3-2 - 전국 초등학교 단원평가 모음집, 2009
천재교육 편집부 엮음 / 천재교육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문제만 나와 있어 시험 앞두고 총정리하기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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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5:35-43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지금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활동하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액션 배우로 잘 알려진 아놀드 슈월츠 제너거가 주연한 [주니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남자, 그것도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남자가 여자의 전유물인 임신을 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을 그려낸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처럼 남자가 임신을 하는 동물이 있습니다. 바로 해마입니다. 해마 수컷은 육아 주머니가 있는데 암컷은 그 속에다 알을 낳습니다. 그 속에서 수정된 새끼들은 아빠 해마의 육아 주머니에서 나오는 분비물을 먹고 자랍니다. 새끼들이 자라는 동안 아빠 해마의 배는 점점 부풀어 오르고 2주 정도가 지나면 아빠 해마는 새끼들을 부화합니다. 해마는 수컷이 암컷의 출산을 일부분 담당하는데 엄마 해마는 산란을 하고 아빠 해마는 산출을 합니다. 해마는 부성애가 강한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야이로는 딸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갔다.
해마처럼 부성애가 강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회당 장 ‘야이로’이었습니다.(막5:22) 유대인들은 회당에 모여 기도도 하고, 성경도 읽고, 랍비의 가르침도 받았습니다. 회당은 마을 사람들의 구심점이었고, 회당 장은 이런 회당을 관리하고 감독하였습니다. 야이로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원로로 존경을 받았지만 집에 돌아오면 어린 딸을 간병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12살 밖에 안 된 어린 딸이(막5:42) 그것도 외동딸이 시름시름 앓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눅8:42) 야이로는 딸을 살리기 위해 유명하다는 의사는 다 모셔봤지만 어떤 의사도 병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몸에 좋다는 약은 다 먹여봤지만 어떤 약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딸은 갈수록 상태가 악화되었습니다. 야이로는 딸을 그냥 죽게 둘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살리고 싶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야이로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비춰왔습니다. 병든 자도 고치고 귀신도 쫓아내시는 예수님이 야이로가 사는 마을에 오신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야이로는 예수님이라면 죽어가는 딸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야이로는 딸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야이로가 딸을 고치기 위해 사회적인 지위를 벗어버리고 예수님을 찾아갔듯이 우리도 간절한 기도제목이 있으면 장애물들을 모두 벗어버리고 예수님을 찾아가야 합니다.

야이로는 딸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도 예수님을 집으로 모시고 갔다.
야이로는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간곡히 부탁하였습니다.(막5:22-23)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야이로는 사회적인 지위가 높았지만 예수님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야이로는 겸손하였습니다. 야이로는 예수님이 안수해 주시면 죽어가는 딸이 살아난다고 고백했습니다. 야이로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야이로의 눈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뜨거운 부성애를 보시고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예수님이 야이로의 집으로 가고 있는 동안 열두 해를 혈루 증으로 앓는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고 병이 나으면서 시간을 지체하였습니다. 야이로는 애가 탔습니다. 딸이 죽지나 않을까 조바심이 났습니다. 야이로가 집 근처에 이르렀는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했습니다.(막5:35)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사람들은 딸이 죽었으니 더 이상 예수님은 필요치 않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병든 자는 고칠지 몰라도 죽은 자는 어쩔 수 없다고 단정했습니다. 야이로는 딸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온 몸에 힘이 쫙 빠졌습니다.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지경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에게 용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막5:36)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예수님은 흔들리지 말라고 야이로를 격려하셨습니다. 야이로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사람들은 딸이 죽었으니 예수님을 돌려보내라고 말하고, 현실적으로 그 말이 옳았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을 가지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말씀하시고. 믿음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믿어야 했습니다. 어려웠습니다. 야이로는 장례식을 치를 준비를 할지 아니면 예수님을 모시고 갈지를 망설였습니다. 야이로는 이왕 믿은 예수님을 끝까지 믿기로 결심했습니다. 믿으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박필 목사님은 말이 기적을 만든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믿고 고백하고 선포하고 명령하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켜 주신다고 말합니다. 기적은 하나님의 능력이란 성냥갑에 사람의 믿음이란 성냥개비를 그을 때 일어납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고 지면에 있는 양전하와 구름에 있는 음전하가 만나야 번개가 치듯이 하나님의 능력에 사람의 믿음이 결합해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는 하나님은 언제나 가능성을 열어두셨는데 사람이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제목이 있어 예수님께 찾아갔으면 너무도 그럴싸한 시험이 찾아오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마귀는 자꾸만 파도를 보게 하지만 물 위를 걸으려면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비가 온 후에 땅이 다져지듯이 시험을 이겨내야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야이로가 끝까지 믿음을 가지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야이로의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야이로의 집은 벌써부터 장례식 모드로 전환되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큰 소리로 우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기 때문에 상가에는 돈을 받고 전문적으로 울어주는 여자들로 넘쳤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나무라셨습니다.(막5:39)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예수님은 아이가 잔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성경은 죽음을 잠으로 묘사합니다. 잠자는 사람이 다시 일어나듯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다시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이가 죽었는데 무슨 소리냐며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다 내보내셨습니다. 아니 내쫓으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기적의 현장을 목격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부모와 세 제자를 데리시고 아이의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아이의 얼굴이 창백했습니다. 예수님은 아이의 손을 잡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죽은 사람을 만지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으시기 위해 손을 잡으시고 힘차게 선포하셨습니다. “달리다 굼” 달리다 굼은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아람어입니다.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소녀는 잠자던 사람이 일어나듯이 가볍게 일어나더니 언제 아팠냐는 듯이 힘차게 걸었습니다. 사람들은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자 크게 놀라고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경계하셨습니다.(막5:43a) 예수님은 사람들이 기적에 관심을 갖기보다 말씀에 귀 기울이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지시하셨습니다.(막5:43b) 예수님은 아이가 완전히 회복됐다고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아이를 살리시면서 예수님도 다시 살아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도 다시 살아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기도제목이 있으면 예수님께 나아가고, 기도했으면 어떠한 시험이 오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기적을 보았으면 기적을 자랑하지 말고 그 기적을 일으키신 하나님을 높여드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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