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5:35-43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지금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활동하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액션 배우로 잘 알려진 아놀드 슈월츠 제너거가 주연한 [주니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남자, 그것도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남자가 여자의 전유물인 임신을 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을 그려낸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처럼 남자가 임신을 하는 동물이 있습니다. 바로 해마입니다. 해마 수컷은 육아 주머니가 있는데 암컷은 그 속에다 알을 낳습니다. 그 속에서 수정된 새끼들은 아빠 해마의 육아 주머니에서 나오는 분비물을 먹고 자랍니다. 새끼들이 자라는 동안 아빠 해마의 배는 점점 부풀어 오르고 2주 정도가 지나면 아빠 해마는 새끼들을 부화합니다. 해마는 수컷이 암컷의 출산을 일부분 담당하는데 엄마 해마는 산란을 하고 아빠 해마는 산출을 합니다. 해마는 부성애가 강한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야이로는 딸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갔다.
해마처럼 부성애가 강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회당 장 ‘야이로’이었습니다.(막5:22) 유대인들은 회당에 모여 기도도 하고, 성경도 읽고, 랍비의 가르침도 받았습니다. 회당은 마을 사람들의 구심점이었고, 회당 장은 이런 회당을 관리하고 감독하였습니다. 야이로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원로로 존경을 받았지만 집에 돌아오면 어린 딸을 간병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12살 밖에 안 된 어린 딸이(막5:42) 그것도 외동딸이 시름시름 앓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눅8:42) 야이로는 딸을 살리기 위해 유명하다는 의사는 다 모셔봤지만 어떤 의사도 병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몸에 좋다는 약은 다 먹여봤지만 어떤 약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딸은 갈수록 상태가 악화되었습니다. 야이로는 딸을 그냥 죽게 둘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살리고 싶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야이로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비춰왔습니다. 병든 자도 고치고 귀신도 쫓아내시는 예수님이 야이로가 사는 마을에 오신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야이로는 예수님이라면 죽어가는 딸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야이로는 딸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야이로가 딸을 고치기 위해 사회적인 지위를 벗어버리고 예수님을 찾아갔듯이 우리도 간절한 기도제목이 있으면 장애물들을 모두 벗어버리고 예수님을 찾아가야 합니다.

야이로는 딸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도 예수님을 집으로 모시고 갔다.
야이로는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간곡히 부탁하였습니다.(막5:22-23)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야이로는 사회적인 지위가 높았지만 예수님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야이로는 겸손하였습니다. 야이로는 예수님이 안수해 주시면 죽어가는 딸이 살아난다고 고백했습니다. 야이로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야이로의 눈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뜨거운 부성애를 보시고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예수님이 야이로의 집으로 가고 있는 동안 열두 해를 혈루 증으로 앓는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고 병이 나으면서 시간을 지체하였습니다. 야이로는 애가 탔습니다. 딸이 죽지나 않을까 조바심이 났습니다. 야이로가 집 근처에 이르렀는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했습니다.(막5:35)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사람들은 딸이 죽었으니 더 이상 예수님은 필요치 않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병든 자는 고칠지 몰라도 죽은 자는 어쩔 수 없다고 단정했습니다. 야이로는 딸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온 몸에 힘이 쫙 빠졌습니다.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지경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에게 용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막5:36)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예수님은 흔들리지 말라고 야이로를 격려하셨습니다. 야이로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사람들은 딸이 죽었으니 예수님을 돌려보내라고 말하고, 현실적으로 그 말이 옳았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을 가지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말씀하시고. 믿음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믿어야 했습니다. 어려웠습니다. 야이로는 장례식을 치를 준비를 할지 아니면 예수님을 모시고 갈지를 망설였습니다. 야이로는 이왕 믿은 예수님을 끝까지 믿기로 결심했습니다. 믿으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박필 목사님은 말이 기적을 만든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믿고 고백하고 선포하고 명령하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켜 주신다고 말합니다. 기적은 하나님의 능력이란 성냥갑에 사람의 믿음이란 성냥개비를 그을 때 일어납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고 지면에 있는 양전하와 구름에 있는 음전하가 만나야 번개가 치듯이 하나님의 능력에 사람의 믿음이 결합해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는 하나님은 언제나 가능성을 열어두셨는데 사람이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제목이 있어 예수님께 찾아갔으면 너무도 그럴싸한 시험이 찾아오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마귀는 자꾸만 파도를 보게 하지만 물 위를 걸으려면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비가 온 후에 땅이 다져지듯이 시험을 이겨내야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야이로가 끝까지 믿음을 가지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야이로의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야이로의 집은 벌써부터 장례식 모드로 전환되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큰 소리로 우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기 때문에 상가에는 돈을 받고 전문적으로 울어주는 여자들로 넘쳤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나무라셨습니다.(막5:39)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예수님은 아이가 잔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성경은 죽음을 잠으로 묘사합니다. 잠자는 사람이 다시 일어나듯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다시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이가 죽었는데 무슨 소리냐며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다 내보내셨습니다. 아니 내쫓으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기적의 현장을 목격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부모와 세 제자를 데리시고 아이의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아이의 얼굴이 창백했습니다. 예수님은 아이의 손을 잡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죽은 사람을 만지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으시기 위해 손을 잡으시고 힘차게 선포하셨습니다. “달리다 굼” 달리다 굼은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아람어입니다.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소녀는 잠자던 사람이 일어나듯이 가볍게 일어나더니 언제 아팠냐는 듯이 힘차게 걸었습니다. 사람들은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자 크게 놀라고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경계하셨습니다.(막5:43a) 예수님은 사람들이 기적에 관심을 갖기보다 말씀에 귀 기울이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지시하셨습니다.(막5:43b) 예수님은 아이가 완전히 회복됐다고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아이를 살리시면서 예수님도 다시 살아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도 다시 살아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기도제목이 있으면 예수님께 나아가고, 기도했으면 어떠한 시험이 오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기적을 보았으면 기적을 자랑하지 말고 그 기적을 일으키신 하나님을 높여드려야 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