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찾은 영성 - 현대인을 위한 영성훈련
토니 존슨 지음, 최요한 옮김 / 죠이선교회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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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성의 역사와 방법론을 설명한 책입니다. 입문서와 훈련서로 사용하기에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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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3:17-19 하나님을 향한 사랑


무지개는 빛이 조금 떨어져 있는 물방울을 비출 때 나타나는 반원 모양의 일곱 줄입니다. 흔히 비가 그친 뒤 태양과 반대 방향에서 나타나는데 바깥쪽에서부터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의 차례로 나타납니다. 무지개가 일곱 빛깔을 가졌듯이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레노바레 운동의 설립자인 리처드 포스터 교수와 그의 제자인 게일 비비 교수는 기독교 역사를 보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일곱 가지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무지개에도 각각의 색깔이 있듯이 영성에도 각각의 길이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 지은 [영성을 살다(IVP)]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일곱 가지 길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첫 번째 시간으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서의 영성을 다루려고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예수님이 어떻게 신앙 생활하셨는지를 알면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역할모델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대명사였습니다. 아니 사랑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시면서 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우리를 대신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의인을 위해 죽을 사람은 더러 있을지 몰라도 죄인을 위해 죽을 사람은 예수님밖에 없을 겁니다. 스승인 예수님이 사랑을 실천하셨으니 제자인 우리도 사랑을 실행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43-45절을 통해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고,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저주 기도하지 말고 축복 기도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나님의 자녀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햇빛을 악인과 선인에게 골고루 비춰주시고 단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골고루 내려주시니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선대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아무런 상도 없습니다. 세리와 이방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9장 16절 이하를 통해 부자 청년이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냐고 질문하자 계명을 지키라고 대답하셨고 어떤 계명이냐고 구체적으로 질문하자 19절 하반 절을 통해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에게 이웃은 동료 유대인들을 가리켰지만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10:25-37)를 통해 이방인에게까지 확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가족만 사랑할 것이 아니라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이 계명을 지켰다고 이웃을 사랑했다고 자신만만해 하자 21절을 통해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실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과성 구호로 그치지 말고 지속적으로 실천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2장 34절 이하를 통해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모세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크냐고 질문하자 37-39절을 통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요약하셨습니다. 우리는 전 인격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도 자신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을 향한 수직적인 사랑과 사람을 향한 수평적인 사랑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어느 한쪽이 없다면 막대기이지 십자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요한일서 4장 20절을 통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와 자매를 미워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눈에 보이는 형제와 자매부터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과 형제와 자매 사랑은 사랑을 표현하는 두 날개입니다. 두 날개로 날아야 하늘을 날 수 있듯이 두 개의 조화를 이뤄야 완전한 사랑이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사랑을 실천해야 할까요?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12장을 통해 성령님의 은사를 설명하고 31절 전반 절을 통해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더욱 큰 은사는 사랑의 은사입니다. 사랑의 은사는 고린도 교인들이 크게 생각하는 방언의 은사보다도 그리고 우리가 부러워하는 병 고치는 은사보다도 더욱 큰 은사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전서 13장 4-7절을 통해 사랑의 은사를 설명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 말씀하였습니다. 사랑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할까요? 새번역으로 보면 사랑은 시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뽐내지 않아야 합니다. 교만하지 않아야 합니다. 무례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 이익을 구하지 않아야 합니다. 성을 내지 않아야 합니다. 원한을 품지 않아야 합니다. 불의를 기뻐하지 않아야 합니다. 반대로 사랑은 해야 합니다. 무엇을 해야 할까요?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친절합니다.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모든 것을 덮어줍니다. 모든 것을 믿습니다. 모든 것을 바랍니다. 모든 것을 견디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지 않아야 할 것 보다 해야 할 것을 기억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사랑은 먼데 서부터가 아니라 가까이에서부터 실행해야 합니다. 사랑의 파랑새는 먼데 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사랑의 은사보다 능력의 은사를 갈망하자 능력의 은사보다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은사는 일시적이지만 사랑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은사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만 사랑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은사보다도 사랑을 구해야 합니다. 아무리 일을 잘 해도 성격이 모나면 싫어하듯이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차갑다면 아무도 따르려 하지 않을 겁니다. 사랑이 없는 능력은 아무도 먹을 수 없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첫째, 우리가 사랑 속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뿌리를 내리느냐에 따라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가 결정됩니다. 우리가 사랑에 뿌리를 내릴 때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사람을 향한 사랑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둘째,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닫고 그리고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를 바라십니다.(엡3:17-19) 아는 것은 머리로가 아니라 손발로 나타납니다. 지식은 행동으로 표현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전기 코드를 플러그 인하면 전기가 흘러들어와 가전제품을 작동하듯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플러그 인하여 그 사랑을 공급받고 그 사랑을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데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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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을 살다 - 기독교 영성 회복의 일곱 가지 길
리처드 포스터.게일 비비 지음, 김명희.양혜원 옮김 / IVP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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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리처드 포스터의 열광하는 팬이다. 나는 그의 책을 꼼꼼히 읽고 성도들과 함께 나눈다. 그가 나의 영성 세계를 확립해 주었듯이 나도 성도들의 신앙적 세계관을 정립해 주기 위해서다. 나는 그를 통해 극단적이지 않고 균형 잡힌 영성을 배웠다. 양극단은 중심으로부터 멀다. 이번에 그가 그의 제자인 게일 비비 교수와 힘을 합쳐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일곱 가지 길을 내놓았다. 그는 어떤 재료를 가지고도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내는 일류 요리사처럼 하나님을 만나려는 2천 년간의 시도를 3년간의 작업을 거쳐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다. 그는 흩어진 퍼즐조각을 맞추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 그의 이번 작품은 [생수의 강]과 여러모로 흡사하다. 그는 전작을 통해 기독교 영성의 여섯 가지 위대한 전통을 말했다. 그는 하나의 영성 전통을 설명하고 고대와 성경과 현대의 모범적인 인물을 알려주고 그 전통의 장단점을 논하고 그 전통의 실천방안을 제시하였다. 이번 작품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하나의 길을 설명하고 그 길을 걸어간 대표적인 인물의 발자취를 알려주고 그가 그 길을 어떻게 갔는지 반추하고 반응하며 오늘의 의미를 되새긴다. 그러나 전작처럼 서문을 통해 그 길을 간단하게 요약하지도 않았고 본론에서도 그 길이 무엇인지 자세하게 설명하지도 않아 그들의 시도가 더 이상 신제품을 만들 수 없어 같은 제품을 포장을 달리해 파는 얌체 상술이 아닌 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왜냐하면 전작에서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듯이 주제와 내용이 선명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안개가 낀 것처럼 제목과 내용이 흐릿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쉬운 점은 두께는 비슷한데 전작은 신국판에 반양장으로 제본해 주머니를 가볍게 했는데 이번 작품은 변형판에 양장으로 제본해 책값이 물가오름세를 빛의 속도로 추월한 느낌이 들었다. 요즘은 고급스럽게 만들어 책값을 부풀리는 게 추세인가 보다. 어쨌든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하나님을 파트타임으로나 만나려 하는데 신앙의 선배들은 만사를 제쳐놓고 하나님과 함께하려고 풀타임을 몸부림쳤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중요하고도 시급하게 여겼는데 우리는 중요하지도 않고 시급하지도 않게 여기니 문제다. 하나님은 우리를 왕자처럼 여겨주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거지처럼 대하니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우리가 그들의 족적을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하나님께 한걸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니 이 책을 통해 하나님과의 접속을 시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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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매일성경 2009.9.10 - 저학년(1-3학년용)
매일성경 편집부 엮음 / 성서유니온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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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부터 우리집 막내도 저매로 큐티를 하려고 해요. 알기 쉽게 구성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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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4:6(1-14)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천 3백 년 전에 동양과 서양에서 대규모 토목공사가 벌어졌습니다. 중국은 이민족을 방어하기 위해 5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만리장성을 쌓았습니다. 중국은 길을 막고 이민족과의 왕래를 차단했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이민족을 공격하기 위해 15만 킬로미터에 이르는 도로를 건설했습니다. 로마는 길을 닦고 이민족과의 왕래를 촉진했습니다. 중국은 패쇄적이었고 로마는 개방적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길을 차단한 중국은 이민족의 침략에 시달렸지만 길을 건설한 로마는 세계를 제패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피가 심장에서 혈관을 타고 흐르듯이 모든 길은 로마로부터 시작해서 로마의 속국으로까지 연결된다는 말입니다.

로마 제국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생각했으나 예수님은 나는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는 여러 갈래 길을 통해 들어갈 수 있었으나 천국은 한 갈래 길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시면서 두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첫 번째 약속은 요한복음 14장 1-2절을 통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엄마가 시장에 다녀오겠다고 아이를 이웃집에 맡기듯이, 제자들에게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14:2) 여기서 ‘거처’는 ‘하늘나라’라는 장소적 개념도 있고, ‘하나님 안에서’라는 관계적 개념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하나님 안에서 살 수 있는 하늘나라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 약속은 3절을 통해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엄마가 시장에 다녀와서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하듯이, 제자들에게 다시 와서 너희를 영접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14:3)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재림하셔서 제자들을 하늘나라로 데려가시고 하나님 안에서 살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는 엄마가 왜 자신을 떼놓고 시장에 가는지 모르듯이, 도마는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셨다가 다시 오신다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14:5)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도마는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신다는 사실도 몰랐고 아버지께로 가는 길도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엄마가 아이에게 시장에 다녀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듯이, 도마를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알려주셨습니다.(14:6-7)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예수님은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께로 가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로 가는 일방통행로입니다. 다른 길로 가면 일방통행로 위반입니다. 승용차가 일방통행로를 위반하면 범칙금 6만원에 벌점 10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가면 안심하고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로 가는 일방통행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알려주는 진리입니다. 대자연은 하나님을 알려주는 일반계시입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대자연을 보며 창조주의 솜씨를 감탄합니다. 그러나 대자연보다도 창조주를 더 잘 알려주는 분이 계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알려주는 특별계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알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삶을 주시는 생명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종교는 모두 유익하지만 예수님이 없는 종교는 생명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길이신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고 영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린도전서 1장 18절을 통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멸망당할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어리석게 보고 거부하지만 구원받을 사람은 능력으로 보고 영접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누가복음 23장 39-43절을 통해서 예수님과 두 명의 행악 자가 십자가에 달렸는데 하나는 예수님에게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비방하고 거부했으나(23:39), 다른 하나는 비방한 행악 자를 꾸짖고 예수님에게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하고 영접하였습니다.(23:42)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은 영접한 행악 자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축복하셨습니다.(23:43) 예수님을 영접한 행악 자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행을 하더라도 예수님이 없으면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되지만 아무리 악행을 했더라도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영생과 영멸의 관건은 예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로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길을 막은 중국이 쇠퇴했듯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막으면 영원히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길을 열은 로마가 흥왕했듯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열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차를 타고 고속도로 요금소를 지날 때 표를 받고 통행료를 주느라 정체하게 되는데 하이패스 차량단말기를 설치하면 통행료가 무선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정차하지 않고 빠르게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으로 가는 하이패스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망설임 없이 천국 문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어 지옥으로 파기 환송하지 않고, 천국으로 ‘하이패스’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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